친윤계 교통정리 안돼 ‘원톱’ 부재 속 온갖 설 난무…당원 100% 룰 개정해도 TK·2030 ‘변수’
#진짜 윤심은 어디에
윤석열 대통령이 한남동 관저에서 식사정치를 가동, 여당 내 여러 정치인들과 만나고 있지만 다가오는 국민의힘 전당대회와 관련해서는 뚜렷한 메시지를 내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윤 대통령과 가깝게 지낸 이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주목도를 높이고 있다. ‘윤심’이 전당대회 결과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떠오른 셈이다. 진짜 윤심이 무엇인지를 놓고 공방을 벌이는 장면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윤심 감별 논란의 신호탄은 윤 대통령 정치 멘토로 불려온 신평 변호사가 쏘아 올렸다. 차기 대선주자가 아니라 2024년 총선을 관리할 수 있는 당대표가 이번 전대에서 선출돼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신 변호사는 12월 14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모임 ‘새로운미래 혁신24’ 강연에서 ‘윤석열 정부에서 여당 대표가 어떤 리더십을 가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선주자로 나설 분은 이번 당대표 선거가 아니고 다음 당대표 선거가 맞지 않겠나. 2025년 당대표가 돼서 1년 하고 그다음에 대권주자로 나가는 게 맞지 않을까”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너무 강력한 대선주자급 당대표가 되면 국정 동력이 분산되지 않을까 우려한다”고 언급, 대선주자의 당권 획득 불가론을 공식화했다. 대통령 임기 초반에 여당 내부에서 미래 권력이 당권 획득을 할 경우, 국정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은 것이다. 이날 모임에서 ‘대통령 멘토’라는 소개에 대해 신 변호사는 “우선 제가 윤 대통령 멘토는 아니다. 대선 과정에서 많은 조언을 드린 건 사실인데, 멘토라고 하면 건방스럽고 부담스럽다”고 몸을 낮췄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그의 발언을 예사롭게 보지 않는다. 판사 출신인 신 변호사는 윤 대통령이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많은 조언을 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신 변호사 출판기념회에 직접 참석하기도 했고, 신 변호사의 과거 발언을 보면 윤 대통령의 의중과 일치하는 부분이 다수 발견됐다. 실제 윤 대통령은 신 변호사와 자주 통화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 변호사 말대로라면 이미 당권주자로 뛰고 있는 안철수 윤상현 의원이나 당권 레이스 도전 의사가 큰 것으로 알려진 유승민 나경원 전 의원 등은 ‘자격미달 후보’가 된다.
특히 신 변호사가 미래 권력이 아닌 관리형 주자가 적합하다는 주장을 내놓은 장소가 당권주자인 김기현 의원 주도의 공부 모임이었다는 점도 관심을 끈다. 김 의원이 주도적으로 “관리형 주자가 차기 당권 적임자”라는 주장을 해온 터라, “윤 대통령 정치 멘토가 김 의원을 관리형 대표로 점지해 놓은 것 아니냐”는 말이 정치권에서는 나왔다. 최근 부쩍 목소리를 키우고 있는 ‘윤핵관’ 장제원 의원이 김 의원과의 거리를 좁혀온 사실도 다시 상기되면서 김 의원은 ‘윤심 감별론’의 한가운데에 섰다.
그러나 ‘관리형 주자가 곧 김기현 의원’이라는 등식으로 직결되는 것은 무리라는 시각도 많다. 또 다른 윤핵관 권성동 의원 등판이 거의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권 의원은 12월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들의 ‘당대표 출마 여부’ 질문에 “윤석열 정부 성공을 위해 어떤 역할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라며 “여러분들로부터 많은 의견을 듣고 있다. 최종 결심이 서면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권 의원의 당대표 출마 선언이 임박한 것으로 본다. 실제 권 의원이 이미 몸을 풀고 있다는 말이 전해진다. 그는 매주 주중 또는 주말에 국민의힘 당원이 가장 많은 대구·경북(TK) 지역을 반복적으로 방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 의원은 최근 강성 보수 지지층에 기대는 강경 발언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는 12월 10일 자신의 SNS를 통해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를 거론하면서 “세월호와 같은 길을 가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윤심을 둘러싼 당내 갈등이 벌어지자 당내에서 쓴소리도 나온다. 하태경 의원은 12월 14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 인터뷰에서 “전당대회 때 제일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있을 때마다 ‘누구 심’과 ‘마음’을 팔았다”라며 “윤 대통령이 ‘윤심은 없다’ ‘나는 전당대회 개입 안 할 테니까 윤심 파는 후보는 찍어주지 마라’고 한 마디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하 의원은 “그런데 대통령이 가만히 있으면 그걸 즐기는 것”이라며 “어쨌든 윤 대통령이 전당대회 중립성을 좀 해 주셔야 당이 건강하게 잘 발전할 수 있다. 말 그대로 공정경쟁”이라고 했다.
#춘추전국 양상
국민의힘 당권 경쟁은 안철수 의원이나 나경원 전 의원 등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후보가 확실히 치고 나오지 못하면서 다자구도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더욱이 강력한 힘이 교통정리를 하는 움직임도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아, 원톱이 전혀 보이지 않는 춘추전국 양상이다.
현재 거론되는 당권 경쟁자는 이미 출마를 선언한 김기현 안철수 윤상현 조경태 의원 및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에다, 출마선언은 없었지만 유력 주자로 거론되는 나경원 유승민 전 의원, 주호영 원내대표, 권성동 의원 등 9명에 이른다.
친윤계 단일후보마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 특이하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이 전대 불출마를 선언했을 때만 해도 당권주자들 간 교통정리가 이뤄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하지만 윤핵관 투톱인 권성동 의원과 장제원 의원 사이에 불화설까지 나도는 등 정치권에서는 친윤계 후보 단일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게다가 정치 거물들이 맞붙는 전대라 여러 후보 간 단일화는 곧 ‘정치적 사망선고’라는 인식이 강하다. 단일화를 해주고 뒤로 빠지는 순간 “저 사람 끝났다”라는 소문이 확산하면서 다음 공천도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자리를 놓고 맞붙었던 주호영 원내대표와 나경원 전 의원 사례만 봐도 단일화가 쉽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당시 이준석 전 대표가 여러 여론조사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면서 두 후보 간 단일화가 점쳐졌지만, 두 후보는 끝내 단일화를 하지 못했고 ‘0선’의 이준석 전 대표에게 참패하는 굴욕을 맛봤다. 정치적 위상 격하를 우려한 두 후보가 지는 줄 알면서도 단일화를 해내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다자구도가 펼쳐지면 여러 여론조사에서 차기 당대표로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유승민 전 의원에게 기회가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고개를 들었다. 유 전 의원이 비록 보수 지지층 사이에서는 ‘배신자 프레임’을 여전히 갖고 있지만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 예상 밖의 바람이 불어줄 경우 다자구도 속 의외의 1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 전 의원을 향해 당내에서 거친 공격이 쏟아지는가 하면, ‘유승민 절대 불가론’이 당내에서 계속 나오는 것도 ‘유승민 어부지리론’을 염두에 둔 견제라는 해석이 있다.
유 전 의원에 대해 비판적 여론을 만들어온 홍준표 대구시장이 이런 분위기에 쐐기를 박고 나서기도 했다. 그는 12월 13일 자신의 소통채널인 ‘청년의꿈’을 통해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친윤 주자들이 대거 나설 경우 유 전 의원이 ‘어부지리’를 차지할 것으로 보여 걱정이 된다’는 지지자의 물음에 “그런 염려 안해도 된다”면서 유 전 의원을 평가절하했다.
#집토끼 TK의 선택은
국민의힘 내부에서 일반 여론조사를 배제하고 당심만으로 전당대회를 치르려고 하는 것은 돌발 변수를 없애려는 시도로 읽힌다. 일반 여론조사는 다른 정당 지지자들이 대거 참여하는 역선택 문제가 생기는 데다, 느닷없는 바람에 휩쓸려 여론조사 결과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지난해 6월 ‘0선’에 30대의 이준석 전 대표가 깜짝 당선됐던 것이 돌발 변수 돌출의 대표 사례로 여당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일부 언론 등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사석에서 ‘전대 룰을 변경할 거면 당원투표 비율을 100%로 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국민의힘에서 ‘당원 7-여론조사 3’인 현행 전대 경선룰을 ‘9 대 1’에서 ‘10 대 0’까지 조정하는 방안이 거론되면서, 일부에서는 “용산이 당심 100%를 원한다”는 말이 나돌았다. 실제 정진석 비대위원장이나 권성동 의원 등 친윤계를 중심으로 당원투표 100%로 가야 한다는 발언이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당심만으로 당대표를 뽑는다 해서 돌발 변수가 과연 사라지겠느냐는 회의적 시각도 많다. 우선 당원 숫자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많고, 당내 경선 투표 참여율 역시 높은 TK에서 의외의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는 관측이 나온다.
TK에서 주호영 원내대표가 나오지 않고 유승민 전 의원만 출마할 경우, 연고 의식이 매우 강한 TK 표가 당내 주류인 친윤계가 아닌 ‘고향 까마귀’ 유 전 의원을 지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TK 변수론 주창자들의 목소리다. 유 전 의원도 이런 가능성을 탐지하기 위해 TK 인사들로부터 여러 의견을 전해 듣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고를 중요시하는 TK 정서를 잘 이용했던 선행 사례가 있다. 유 전 의원과 가까운 이준석 전 대표다. 그는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부모의 고향이 TK라는 점을 앞세워 TK를 이준석 바람의 전초기지로 삼았다.
최근 부쩍 늘어난 20대와 30대 당원들의 표심을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최근 20·30대 당원 숫자가 많아져, 50대 당원 숫자와 비슷할 것이라는 분석도 당내에서 나온다. 20·30세대가 강한 목소리를 낸다면 ‘친윤’이라는 브랜드만으로는 먹히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친윤이라는 말 자체가 상명하복·꼰대 등 20·30대가 싫어하는 문화와 연결돼 거부감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한 수도권 의원은 “당원들도 모바일 투표를 하기 때문에 언론을 통해 비치는 여론에 굉장히 민감하다”며 “특정 세력이 당심을 한쪽으로 몰고 가기는 이제 어려워졌기에 갖은 소문이 난무하고 그때마다 여론이 출렁거리면서 이번 전당대회는 좀처럼 우열을 가리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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