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우승 이끈 류선규 단장 사실상 경질…정용진 구단주 “없다는 걸 어떻게 증명하나”
민 사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12일 류선규 단장이 사의를 표했고, 조직의 안정을 위해 빠르게 후임 단장을 선임했다”며 “구단은 정상적인 의사결정 과정과 의견 수렴을 거쳐 미래를 위한 적임자를 선임했다. 그렇기에 일부에서 제기하는 비선 실세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최근 쏟아진 보도들을 적극 부인했다.
‘일요신문’에선 류선규 전 단장의 자진 사퇴의 배경과 비선 실세로 꼽히는 A 씨의 실체, 그리고 구단 관계자, 선수, SSG 내부를 잘 알고 있는 야구인들과 인터뷰를 통해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살펴본다.
지난 11일 SSG 랜더스는 통합우승을 위해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팬들 중 4000여 명을 초청해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팬 페스티벌’을 열었다. 모든 선수가 참석해 팬들과 재미있고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인 12일 류선규 전 단장의 자진 사퇴 소식이 알려졌다. 구단의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일부 매체의 기사와 류 단장의 인터뷰를 통해 사실이 확인됐다.
류선규 전 단장은 정말 자진 사퇴했을까. 아니면 사실상 경질이었을까. SSG 구단 내부에선 후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왜냐하면 류 전 단장이 팀의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과 한국시리즈 우승에 자신의 ‘자리’가 걸려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미 시즌 중후반부터 소문이 무성했다. SSG가 우승하지 못할 경우 민경삼 사장, 류선규 단장, 김원형 감독이 교체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랬던 류 전 단장으로선 통합 우승을 이룬 후 내년 시즌에도 계속 SSG와 동행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정규시즌 우승을 마치고 사석에서 만났던 류 전 단장은 기자한테도 “만약 우승하지 못했다면 여러 사람들이 힘들어졌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우승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취재한 바에 의하면 12일 오전 류 전 단장은 민경삼 대표의 호출을 받고 사장실로 향했다. 민 사장은 그 자리에서 당시 퓨처스 R&D 센터장인 야탑고 감독 출신의 김성용이 신임 단장으로 내정됐다는 사실을 알렸다. 즉 류 전 단장한테는 경질을 통보한 셈이다. 류 전 단장 입장에선 소문으로 나돌던 내용을 눈앞에서 확인한 셈이었다. 민 사장은 구단 내 다른 보직을 권유했지만 류 전 단장은 그 자리에서 사의를 표명했다.
스토브리그 동안 FA 계약과 연봉 협상, 외국인 선수 선발 등 내년 시즌을 위해 바쁘게 움직였던 류 전 단장은 자신의 자진 사퇴(?) 소식이 알려진 후 기자들이 문의 전화를 할 때마다 “단장 부임 당시 세웠던 ‘2년 안에 팀을 다시 일으키겠다’는 목표를 달성해 고민 끝에 자진 사퇴를 결정했다”는 비슷한 내용을 전달하며 속마음을 감췄다.
류 전 단장의 자진 사퇴 형식의 경질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후폭풍을 몰고 왔다. 25년 동안 야탑고 감독으로 아마추어 야구에서 활약한 김성용 신임 단장이 SSG로 오게 된 배경에 A 씨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예정대로라면 SSG의 신임 단장 선임 발표는 13일이었다. 그러나 여론이 안 좋아지자 하루 더 상황을 지켜보다 14일 오전 7시 45분에 보도자료를 통해 공식 발표했다.
2021년 11월 5일 ‘한국일보’는 ‘김성용 야탑고 감독이 25년 아마추어 지휘봉을 내려놓고 KBO리그로 옮겨 새 출발을 한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당시 야탑고는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 참가 중이었는데 김 감독은 야탑고를 이끄는 대신 학교에 사의를 표하고 SSG가 신설한 R&D 센터장으로 발탁돼 학교를 떠났다. 봉황대기는 야탑고 야구부장이 임시로 팀을 맡아 대회를 치렀다.
‘박사 감독’ ‘공부하는 지도자’로 알려진 김성용 감독이 프로 팀 코치나 감독이 아닌 퓨처스 R&D 센터장을 맡게 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시 야구계에선 그 배경에 대해 말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김성용 신임 단장의 능력 유무와 관계없이 그가 어떻게 해서 프로 팀을, 그것도 SSG로 오게 됐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비선 실세’로 알려진 A 씨와 김 신임 단장은 오래전부터 깊은 친분을 맺었다. 김 신임 단장이 SSG로 자리를 옮긴 데 역할을 한 이가 A 씨라는 게 정설이다. 그렇다면 A 씨는 누구일까. 사업가인 A 씨는 정용진 구단주와 친밀한 관계다. 신세계그룹이 SK 야구단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정용진 구단주가 A 씨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고, 그 과정에서 A 씨는 자연스럽게 ‘자문’ 직함을 받고 구단 내부 운영에 관여할 수 있었다. A 씨는 KBO를 통해 AD 카드를 발급받고 수시로 경기장과 클럽하우스 등을 출입했다. 실제로 기자는 A 씨가 출입증을 목에 걸고 관중석에 앉아 카메라로 선수들을 촬영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적도 있다.
SSG 구단 내부를 잘 알고 있는 한 관계자는 A 씨에 대해 “정용진 구단주의 신뢰를 배경으로 선수단은 물론 구단 운영에 깊숙이 관여했다”며 “일부 선수들과는 호형호제할 정도로 친분이 두텁고, 정용진 구단주가 골프장이나 식사 자리에 선수를 초대할 때 A 씨가 가교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A 씨는 연예인 야구팀에서 선수로 활약했고, ‘천하무적 야구단’ 단장을 경험한 적이 있다. SSG 선수들뿐 아니라 타 팀의 주요 선수들과도 인맥이 두텁다. 그런 인맥을 자신의 SNS를 통해 공개했다.
위의 관계자는 A 씨가 이번 스토브리그에 FA로 나온 박동원을 영입하는 데 직접 나섰고, 1년 전 FA 시장에 나온 타 팀의 B 선수를 데려와야 한다고 구단에 강변했다는 내용도 귀띔했다.
이와 관련해서 SSG는 입장문을 통해 A 씨에 대해 “일부에서 거론하는 분 또한 자문 역할을 해주시는 분들 중 한 분일 뿐, 구단의 인사나 운영에 관여할 수 있는 어떤 위치에도 있지 않다”며 A 씨가 구단 운영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는 이가 거의 없다.
가장 대표적인 사안이 고교 감독에서 퓨처스 R&D 센터장으로 임명된 김성용 센터장이 1년 만에 단장으로 초고속 승진한 일이다. SSG 구단은 김성용 신임 단장에 대해 “폭넓은 현장 지도 경험을 쌓았고, 체계적인 육성 시스템을 통해 SSG가 명문구단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토대를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SSG의 한 관계자는 “A 씨가 선수들에게 구단주의 생각을 많이 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언론에는 ‘비선 실세’로 알려졌지만 그는 ‘자문’이란 공식 직함과 명함을 갖고 활동했다. 선수들도 그를 ‘자문’ ‘고문’ 등으로 부를 정도로 SSG 구단 조직의 일원으로 대했다”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SSG의 한 선수는 “처음에는 구단주님의 절친이라고 해서 약간 거리감을 느꼈는데 그분이 먼저 다가와서 자신을 ‘형님’이라고 부르라며 살갑게 대했다”고 말했다. 홈 경기가 있는 날은 어김없이 A 씨가 나타났고, 때론 지인들을 데리고 클럽하우스에 들어와 선수들과 인사를 시켰다는 내용도 전했다.
SSG 팬들은 새로운 단장 선임 과정에 등장한 ‘비선 실세’의 존재에 발칵 뒤집어졌다. 일부 팬들은 구단주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SNS로 달려가 정 부회장에게 해명을 요구했고, 트럭 시위를 벌였다. 정 부회장은 해당 게시물들을 삭제하며 침묵으로 대응하다 자신의 SNS 대문글에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 없다는 걸 어떻게 증명하는가. 주장하는 사람이 증명해야 하는 것’이라며 ‘비선 실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야구계에선 SSG가 올 시즌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으로 역사적인 기록을 올리고 통합우승의 시나리오를 작성한 아름다운 이력들이 단장 사퇴와 선임 문제로 퇴색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야구인 B 씨는 “SSG가 ‘세상에 없는 야구단’을 만들겠다고 해놓고 그 말을 제대로 실천하는 것 같다”면서 “구단주가 친한 지인을 야구단에 심어 놓고 운영 전반에 관여하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 A 씨의 존재가 감독한테 영향을 미친다면 선수단 컨트롤 면에서 큰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프로야구 역대 우승팀이 이듬해 어떻게 무너졌는지 살펴본다면 SSG의 이번 사태가 결코 예사롭지 않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정용진 부회장의 신임을 받고 있는 A 씨가 대표이사나 단장, 팀장 등 공식 직함이 아닌 자문역을 맡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야구를, 야구단을 잘 알고 있는 인사라면 공식적인 타이틀을 달고 떳떳하게 움직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야구인 B 씨는 “내가 알기론 처음엔 A 씨가 고사했다고 들었다”며 “A 씨가 왜 고사했는지는 모르지만 앞에 드러나기보단 뒤에서 정용진 구단주의 복심 역할을 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B 씨는 그런 A 씨의 존재를 SK 야구단 출신 인사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번 SSG의 ‘비선 실세’ 논란은 향후 SSG 팀 운영과 성적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선수단은 감독과 코칭스태프를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게 어긋날 경우 팀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올 시즌 관중 동원 1위를 차지한 SSG가 우승 이후 직면한 최악의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매우 궁금하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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