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화차> 포스터와 스틸컷. 여주인공이 다른 사람의 신분으로 위조해 살아간다는 영화 속 내용이 실제 현실에서도 벌어졌다. |
현재 대법원 최종심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1심 법원은 피의자에게 살인죄 를 인정한 반면 2심 재판부는 살인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결한 상태다. 영화 속 이야기와 유사한 점이 많은 부산 ‘시신 없는 살인사건’의 전말 및 재판 과정에서의 비스토리를 들여다봤다.
2010년 9월 김 아무개 씨(여·26)와 그의 어머니 박 아무개 씨는 사망한 손 아무개 씨(여·41)의 보험금 2억 5000만 원을 수령하기 위해 보험회사에 들렀다. 손 씨는 박 씨의 딸로 2010년 7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보험금을 수령하려던 박 씨와 김 씨는 그 자리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조사 결과 죽은 줄 알았던 손 씨가 다른 사람의 시신을 자신이 숨진 것처럼 속여 거액의 보험금을 받아 챙기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죽은 사람이 자신의 보험금을 챙기려 했다니 이 무슨 미스터리한 얘기인가. 이는 CCTV 확인 결과 박 씨와 함께 온 김 씨가 바로 손 씨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들통났다. 심지어 손 씨는 죽은 김 씨로 위장해 살아온 사실도 드러났다. 이에 검찰은 정황상 손 씨가 김 씨를 살해한 것으로 보고 손 씨에 대해 살인혐의를 적용했다.
그렇다면 죽은 김 씨라는 여자는 대체 누구이고, 김 씨와 손 씨는 무슨 관계였던 것일까. 또 왜 손 씨는 김 씨로 위장해 살아온 것일까. 김 씨의 존재 뒤에는 더욱 충격적인 사실이 숨겨져 있었다.
우선 사건의 발단은 과거 손 씨의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서부터 시작된다. 1999년 3월 손 씨는 동거남의 인감을 도용해 차량할부구입계약을 체결한 뒤 다른 사람에게 이를 매도하겠다고 속여 매도대금을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명 ‘차치기’를 통해 손 씨는 수천만 원을 편취했고, 결국 사기죄로 경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이밖에도 손 씨는 우정사업본부와 A 생명사로부터 보험금 명목으로 1억 4000만 원 상당을 편취하고, 부산광역자활센터로부터 창업자금 2500만 원, B 금융재단으로부터 창업자금 2000만 원을 편취하는 등 총 1억 8500여 만 원을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손 씨는 이를 모두 채무변제 및 생활비와 유흥비로 탕진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또 손 씨는 2010년 1월 중순경 창업자금 명목으로 C 조합으로부터 5000만 원을 편취하고 부동산임대차계약서를 위조해 조합으로부터 고소를 당하기에 이르렀다. 과거 구속된 경험이 있던 손 씨는 이번에 또 구속되면 자신은 물론 가족 모두가 파멸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빠져들었다. 이와 관련 검찰 관계자는 “손 씨가 구속을 면하기 위해 새로운 신분이 필요했을 것”이라며 “과거 손 씨가 만났던 남자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돈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2003년 부산에서 학원 강사로 일하던 손 씨는 당시 대학생이던 13세 연하의 남성 김 아무개 씨와 교제 중이었다. 손 씨는 김 씨에게 “아버지로부터 20억 원 상당의 유산을 받기로 했다. 같이 해외로 나가 살자”고 말하는 등 김 씨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손 씨는 월 90만 원짜리 고급 승용차를 렌트해 타고 다니며 김 씨에게 값비싼 선물을 사주는 등 재력을 과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손 씨는 경제 사정이 그리 녹록지 않았고 갈수록 돈이 필요한 상황으로 내몰렸다. 여기에 2010년 1월 손 씨는 김 씨에게 과거 자신의 결혼 경력과 자식이 있다는 사실을 들키게 됐고, 김 씨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았다. 이에 손 씨는 김 씨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돈이 필요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손 씨가 선택한 것은 억대의 보험금과 신분 위장이었다. 실제로 손 씨는 자신 명의로 된 보험을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들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2010년 3월 A 보험사에 사망보험금 6억 5000만 원, B 보험사에 사망보험금 2억 5000만 원짜리 보험을 드는 등 손 씨는 그해 6월까지 7개 상품에 총 33억 5000만 원에 달하는 보험을 들었다. 보험청약 후 손 씨는 각 1회 보험료로 300여만 원을 납부하고 보험수익자는 어머니로 정했다.
대규모 보험청약과 함께 손 씨는 새로운 신분으로 위장하기 위한 희생양을 물색했다. 검찰조사 결과 손 씨는 2010년 3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여자 노숙자들이 모여 있는 대구의 A 쉼터에 회원등록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손 씨는 자신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보육교사를 모집하고 있다는 얘기를 쉼터 관계자에게 전했다. 이때 손 씨의 요구조건은 단 하나, 부모가 없거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사람이었다.
죽은 김 씨와 손 씨의 인연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손 씨는 쉼터로부터 김 씨를 소개받았고, 2010년 5월 말 쉼터를 방문해 김 씨가 연락하는 가족이나 지인이 없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했다. 이후 6월 16일 손 씨는 쉼터를 다시 찾아와 김 씨에게 “내가 운영하는 어린이집의 보모로 근무하면 월급 130만 원에 보육사 자격증까지 취득하게 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김 씨는 손 씨의 제안을 수락하고 그날 함께 부산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다음날 새벽 5시경 김 씨는 사망한 채로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게 된다. 손 씨는 병원에서 김 씨의 사망원인을 심장질환으로 인한 돌연사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진단결과 사인은 심근경색으로 진단됐고, 손 씨는 이 사실을 쉼터에 알리지 않은 채 김 씨의 시신을 화장했다. 놀라운 사실은 손 씨가 환자의 이름을 김 씨가 아닌 본인 이름으로 기재해 접수했다는 것이다. 결국 서류상으로 사망한 사람은 김 씨가 아닌 손 씨가 됐다. 김 씨가 사망한 6월 17일은 손 씨의 선고공판이 있는 날이었다. 이후 2010년 7월 손 씨의 어머니는 손 씨에 대한 사망신고를 하고 그달 말 보험금으로 600만 원을 수령했다.
이에 대해 손 씨는 “김 씨 사망 후 보험금에 욕심이 생겨 우발적으로 신분을 위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김 씨를 계획적으로 살해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조사 결과 손 씨는 김 씨를 만나기 전 2010년 4월부터 6월 사이에 인터넷을 통해 ‘질식사’ ‘음독살인’ 등 특정 약품에 의한 사망에 대해 검색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손 씨는 검찰 조사에서 A 물질에 대해 모른다고 답했지만, 조사 결과 손 씨가 과거 남자친구와 다툼 중에 A 물질을 먹고 죽어버리겠다며 자살소동을 벌였던 적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밖에도 손 씨의 진술 번복은 또 있었다. 손 씨는 검찰 조사에서 김 씨의 존재에 대해 “인터넷 자살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뒤 같이 술을 마신 것이 전부다. 그러다 갑자기 김 씨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당초 손 씨는 김 씨의 존재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하다 이내 진술을 번복했다”고 말했다.
▲ 영화 <화차>는 약혼녀가 결혼 한 달 전 갑자기 증발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
김 씨가 사망 후 곧바로 화장되는 바람에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또 손 씨와 함께 부산으로 떠난 뒤 김 씨의 행방에 대해서도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오직 손 씨만이 이 모든 의혹과 미스터리를 풀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
영화선 사채 탓 현실선 돈 노려
변영주 감독의 영화 <화차>는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영화 속 내용이 실제 사건과 유사해 주목을 받고 있다. 여주인공이 과거 결혼 경력이 있다는 점과 연고 없이 홀로 사는 여성을 노린 점, 타인의 신분으로 위장해 살아가려 했다는 점 등이 부산 ‘시신 없는 살인사건’과 유사하다.
다만 영화와 달리 부산 사건은 아직 대법원의 판결을 남겨두고 있어 최종 결론이 어떻게 날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