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숨쉬는 그릇에 느림의 미학을 담다
일반적으로 도자기는 흙으로 빚은 그릇을 구워내는 방법에 따라 도기(陶器)와 자기(瓷器)로 구분된다. 백토 등을 혼합해 높은 온도에서 구워낸 그릇을 자기(또는 사기)라 하고, 붉은 진흙으로 만들어 볕에 말리거나 약간 구운 다음 오짓물(잿물)을 입혀 다시 구운 그릇을 도기라 한다. 이 중에서 도기에 속하는 독과 항아리를 만드는 전통 기술, 또는 그 기술을 보유한 장인을 ‘옹기장’이라 일컫는다. 원래 ‘옹기’는 진흙만으로 반죽해 구운 후 잿물을 입히지 않아 윤기 나지 않는 그릇인 ‘질그릇’과 여기에 잿물을 입혀 구워 윤이 나고 단단한 그릇인 오지그릇을 총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독’은 선사시대부터 만들어져 음식물을 저장하거나 때론 시신을 넣는 관으로 사용되기도 한 역사성을 지닌 용기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고려시대를 거치며 독은 더욱 긴요한 생활용품으로 자리잡았다. 고구려의 안악 3호분 고분벽화에는 크고 작은 독을 늘어놓은 모습이 담겨 있고, 백제와 신라에서는 쌀과 술, 기름과 간장, 젓갈 등을 독에 저장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조선 초기에는 14개 기관에 옹기를 만드는 ‘옹장’ 104명이 소속되어 일했다. 또한 옹기에 대한 수요가 높아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던 사장(공기관에 소속되지 않은 장인)을 통해서도 옹기가 널리 공급되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서유구는 ‘임원경제지’에서 “도기 중에서 가장 크고 많이 쓰이는 것이 옹기”라며 “주로 술이나 장을 담거나 김치를 저장할 때 사용하는 그릇으로 송림이 우거진 곳곳에 가마가 있다”고 기록했다. 19세기 후반의 화가 김준근의 풍속도에는 도기 가마가 있는 옹기점과 옹기 제작 모습 등이 담겨 있기도 하다.
대한제국을 거쳐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도 옹기에 대한 수요와 공급은 꾸준히 이어졌다. 그러나 일제가 전선을 확대하던 1940년대를 분수령으로 인력난과 물자 부족, 기업 통제 등으로 옹기 산업은 고비를 맞게 되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시중의 옹기점들이 잠시 활기를 되찾았지만,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다시 급격하게 위축되고 만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쟁 이후 십수 년 동안 국내 옹기 업계는 때 아닌 호황을 누리게 된다. 전쟁통에 각 가정의 옹기가 거의 파손되고, 이를 대체할 만한 용기가 별로 없어 일시적으로 그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플라스틱 및 금속 용기들의 등장으로 옹기는 차츰 ‘필수품’이 아닌 ‘선택품’으로 바뀌고 만다.
새로운 현대식 용기에 비해 무겁고 깨지기 쉬워 사용하기 불편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발효음식에 대한 의존도가 예전보다 떨어지는 등 식생활 스타일이 변하면서 옹기의 수요는 빠르게 감소했다. 이로 인해 많은 옹기점이 폐점하고 장인들은 새로운 일을 찾아 일터를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빚어졌다. 결국 전통 옹기의 제작법마저 단절될 위험에 처하자 정부는 이를 후대에 전승할 수 있도록 1990년 옹기장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해 보존에 나섰다.
옹기의 전반적인 제작 과정은 어느 지역이나 유사하지만 성형 기법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성형 기법은 흙을 가래떡 형태로 둥글게 만든 흙가래(질가래)를 쓰는가, 흙을 넓게 펴서 만든 타래미(질판)를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구분된다. 주로 경기도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 지역에서는 흙가래 기법으로, 전라도와 제주도에서는 타래미 기법으로 옹기를 빚어 왔다. 현재는 김일만(경기), 정윤석(전남) 선생이 옹기장 기능보유자로서 전통기능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근래 들어 우리의 전통 용기인 옹기가 발효음식을 만들어 내는 건강 식기로 인식되면서 재조명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옹기는 어떻게 만들어지기에 ‘살아 숨쉬는 그릇’이라는 찬사를 받는 걸까.
옹기의 제작은 먼저 ‘적절한’ 흙을 채취해서 말리고 부수고 반죽해 가공한 후, 물레질을 통해 원하는 형태로 성형하여 시유(잿물 바르는 일) 및 건조 처리를 하고, 가마에 쌓아서 불에 굽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이 기나긴 과정에는 선인들의 지혜와 느림의 미학이 배어 있다.
마치 독에서 장류가 서서히 익어가는 것처럼 옹기를 만들려면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하다. 가령 흙을 구해서 제대로 말리는 데만 2~3개월이 걸린다. 게다가 옹기는 고운 흙으로 만드는 청자나 백자와 달리 작은 알갱이가 섞여 있는 점토(질)로 만들어지는데, 여기에 바로 ‘살아 있는 그릇’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가마에서 옹기가 구워질 때 점토가 녹으면서 미세한 구멍이 형성된다. 이 미세한 기공으로 공기는 물론 미생물, 효모 등이 통과할 수 있으며, 온도와 습도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전통 옹기로 만들어진 우리 장독에서 발효식품이 썩지 않고 오랫동안 숙성, 저장되는 비결이기도 하다.
자료 협조=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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