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집값·고용 지표 왜곡 논란이 핵심 쟁점…감사원, 문 정부 청와대와 통계청 간 ‘비공식 라인’ 주목
#감사원 감사 두고 여야 대충돌
감사원은 지난 9월 말부터 국토부·통계청·한국부동산원을 대상으로 ‘주요 국가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의 실지감사(현장감사)를 진행했다. 감사를 통해 부동산 가격 동향 조사를 할 때 집값이 덜 오른 지역에 치우치게 표본을 의도적으로 왜곡, 조사원이 숫자를 임의로 입력하는 등의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원은 소득과 고용 통계에서도 비슷한 조작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내용들이 발견되면서 감사 종료 시기는 당초 10월 말에서 7주 더해 12월 16일까지 연장됐다.
감사원은 국토부·통계청·한국부동산원 실무진의 업무용 컴퓨터, 이메일, 메신저 등을 대상으로 디지털 포렌식을 완료했다. 일부 실무진 컴퓨터에선 2018년 청와대 관계자들이 통계와 관련된 특정 내용을 담거나 빼달라고 지시한 흔적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원은 황수경 강신욱 전 통계청장 조사도 마쳤다. 황 전 청장은 통계 관련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의 압박이 있었지만 이를 거부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반면, 강 전 청장은 부당한 지시나 개입은 없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감사를 12월 16일 종료했다. 현재까지 확보된 자료를 분석하고, 감사 휴지 기간인 연말을 지나 2023년 이들 기관에 추가 감사 진행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경제수석과 일자리 수석을 각각 역임한 홍장표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황덕순 한국노동연구원장도 조사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둘은 7월 6일 감사원의 대대적 감사 예고와 여권의 전방위적 압박 끝에 공공기관장 사의를 표명한 바 있다.
감사원과 통계청 복수 관계자들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청와대와 통계청 간엔 비공식 라인이 존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이 통계 발표와 관련한 업무를 논의했다는 것이다.
특히 감사원은 통계청장조차 ‘패싱’된 사례들이 있었다는 전·현직 통계청 직원들의 진술에 주목하고 있다. 감사원 사정에 밝은 한 여권 고위 인사는 “통계를 있는 그대로가 아닌,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주먹구구식으로 발표했다는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당시 통계청 실세로 꼽혔던 한 인사가 청와대와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는지를 파헤쳐야 할 것”이라고 했다. 감사와 관련해 감사원 관계자는 “진행 중인 감사에 대해 어떤 것도 확인해드릴 수 없다”고 했다.
정부여당은 통계조작 의혹에 대해 “심각한 국기 문란”이라고 규정한 뒤 적극 대응키로 의견을 모았다. 12월 18일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페이스북에 “문재인 정권은 현실과 동떨어진 통계를 내세워 실패를 성공이라고 국민을 속였다. 문재인 정권의 ‘통계조작 의혹’”이라고 주장하며 “문재인 정부가 정권 유지를 위해 부동산 관련 통계를 인위적으로 조작했다면, 국민을 속이고 고통에 빠뜨린 ‘국정농단’이다. 국토부는 감사원 감사에 적극 협조해 철저히 진상을 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12월 19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문재인 정부 통계조작이 점차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감사원 결과를 보니 통계조작이 우리가 예상했던 바를 훨씬 뛰어넘는, 범죄행위가 개입됐다는 점이 드러났다”며 “소득분배와 비정규직 규모, 부동산 가격 등 분야를 조작하면서 자의적인 표본 교체, 임의적 숫자 입력 같은 짓도 저질렀다고 한다. 조작의 대가로 인사특혜까지 있었다는 내부 진술도 나오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에선 친문계를 중심으로 반발 기류가 거세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대변인 출신인 고민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12월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치감사, 표적감사로 윤석열 정권 앞잡이를 자처하고 있는 감사원이 이번에는 문재인 정부가 주택 관련 통계를 왜곡하는 것처럼 언론 플레이를 하는 치졸한 행태 보이고 있다”며 “감사원의 통계청 감사는 지난 10월까지 감사를 완료해야 했음에도 수차례 연장을 통해서 두 달을 더 끌어오고 있다. 문제가 있어서 조사하는 게 아니라 문제가 나올 때까지 조사하는 것 같다. 얼마나 많은 국토부 직원을 불러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을지 안 봐도 비디오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12월 20일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단언컨대 문재인 정부에서 통계조작은 없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조작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정치보복 시즌2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최재성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SBS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통계 및 조사방식의 변화를 조작이라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조작이다. 감사원이 권력으로부터 독립돼서 해야 하는데 막 찔러보는 것”이라며 “감사원이 의혹 및 정황을 제기하면 이게 검찰로 갈 것이다. 그래서 조작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 자체가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논란의 단초 ‘가계동향조사’
통계조작 논란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통계청은 폐지 예정된 가계동향조사를 소득과 지출 지표로 분리해 부활시키기로 했다. 가계금융·복지조사로 가계소득 통계를 일원화하기로 한 지 1년 만에 결정을 뒤집었다. 연간 1회 실시하는 가계금융·복지조사를 기반으로 한 소득통계와 분기마다 공표하는 가계동향조사를 토대로 한 소득통계 수치의 차이가 반복된 것이 폐지 결정 이유였다. 가계동향조사 부활을 주도한 건 당시 여당인 민주당이다. 정치권에선 문재인 정부 핵심 정책인 ‘소득주도성장’ 효과를 매 분기마다 확인하기 위해서 가계동향조사를 되살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런데 가계동향조사는 오히려 ‘소득주도성장’ 비판 근거로 활용됐다. 2018년 5월 24일 통계청이 발표한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소득하위 20% 가구인 1분위 소득이 전년도보다 8%나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5분위 배율은 5.95배로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5분위 배율은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기준으로 상위 20%(5분위) 소득을 하위 20%(1분위)로 나눈 것이다. 배율 수치가 클수록 계층 간 소득 격차가 심하다는 뜻이다.
여권에선 가계동향조사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졌다. 그 후 통계청장이 갑작스레 교체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황수경 전 통계청장은 2018년 8월 28일 이임식 내내 눈물을 흘리며 “통계가 정치적 도구가 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통계청장으로서 통계청의 독립성·전문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해왔다”며 “그것이 국가 통계에 대한 국민 신뢰를 얻는 올바른 길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후임으론 소득주도성장 밑그림을 그린 ‘학현학파’ 출신 강신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임명됐다.
강신욱 전 청장은 2019년 1월 가계동향조사를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분리했던 소득·지출 지표를 다시 합치고 표본과 조사 방식도 모두 바꿨다. 그러자 가계소득이 개선된 통계가 발표됐다. 5분위 배율이 5배에서 4배로 낮아진 것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9년 12월 16일 “지난 3분기 가계소득 동향에 따르면, 국민 가계소득·분배 여건이 모두 개선됐다”며 “1분위 계층 소득증가 폭이 확대되는 등 모든 분위에서 가계소득이 늘었고, 특히 분배지수를 나타내는 5분위 배율 개선으로 소득불평등이 심화하는 일반적 추세가 반전됐다”고 말했다.
당시 야당에선 통계조작이라며 반발했다. 2019년 10월 11일 추경호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지난해 5월 분배가 악화됐다는 가계동향조사 통계가 나오자 청와대가 외부에 공표되지 않은 관련 기초자료를 통계청에 요구해 받아갔다”며 “이는 불법 자료 유출이며 통계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홍장표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이 자료를 바탕으로 ‘최저임금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새로운 통계를 만들어 발표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이후 늘어난 실업자를 빼고 분석한 수치여서 ‘통계 마사지’라는 비판이 일었다.
2020년 10월 14일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통계청이 가계동향조사 표본에서 저소득층 비율을 줄여 소득분배지표인 소득 5분위 배율이 대폭 축소됐다”며 “가계동향조사 방식을 변경한 것은 정부에 유리한 통계를 생성하기 위한 꼼수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강신욱 당시 통계청장은 통계조작 논란은 사실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유 의원에 따르면, 가계동향조사 개편 이전 표본에서 32.9%(2019년 1분기 기준)를 차지했던 월 소득 200만 원 이하 저소득층 비율은 개편 이후 25.8%로 7.1%포인트 줄어들었다.
#집값·비정규직 통계
문재인 정부는 집권 3년 차까지 부동산 정책이 성공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9년 11월 19일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며 “전국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당시 한국감정원(현 한국부동산원)의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통계를 근거로 발언했다. 한국감정원 ‘주간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서울 집값은 2018년 9·13 대책 이후 그해 11월 둘째 주부터 32주 연속 하락했다.
그해 11월 20일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문 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개탄스럽다”고 비판하는 논평을 냈다. 경실련은 “부동산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할 뿐 아니라, 정부 정책의 실패도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라며 “국민은행 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집권 2년 반 동안 서울 아파트값은 한 채당 2억 5000만 원 상승했고, 경실련 조사에서도 강남 4구 아파트값은 한 채당 5억 원이 상승했다”고 밝혔다.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도 2020년 7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국)감정원 통계로 11%가 올랐다고 알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한국감정원 ‘월간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 대비 2020년 6월까지의 서울 주택종합 매매가격지수 변동률은 11.28%로 집계됐다. 김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 아파트 중위값이 52% 올랐다는 경실련 분석’에 대해선 “중위 매매가격은 국가 전체 통계로 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반박했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 목표도 내세웠다. 그런데 2019년 10월 통계에서 비정규직이 전년(661만 명)보다 87만 명 늘어난 748만 명으로 집계됐다. 통계 발표 직후 강신욱 당시 통계청장과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이 연이어 브리핑을 열었다. 이들은 이번 조사는 국제노동기구(ILO) ‘병행조사’ 탓에 기간제 근로자 약 35만∼50만 명이 추가 포착됐다고 강조했다. 통계 기준이 바뀌어서 과거 통계와 비교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방어에 나섰다.
2020년 10월 14일 유경준 의원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통계청은 조사 1년 전 ILO 병행조사 관련 문항에 대해 점검을 마쳤고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는데, 막상 비정규직 통계가 폭증한 결과가 나오자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이라며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자인하는 결과가 될까봐 황급히 본인들이 만든 통계를 부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
[단독인터뷰] 명태균 부인 “이준석 때문에 우리 일상 다 망가져”
온라인 기사 ( 2024.11.21 18:56 )
-
‘윤석열 OOO 단속도 못해서…’ 한동훈 가족 이름 국힘 당원게시판 글 파문
온라인 기사 ( 2024.11.15 21:34 )
-
‘검사 출신’ 김웅, 이재명 유죄 판결문 해석 눈길
온라인 기사 ( 2024.11.15 1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