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임신중절에 대한 사회적 우려와 무관”…여성 건강권 침해 목소리도
지난 16일 식약처는 현대약품이 임신중절 의약품 ‘미프지미소정’의 품목허가 신청을 15일 자진 취하하면서 허가 심사 절차를 종료했다고 밝혔다. 미프지미소는 미페프리스톤, 미소프로스톨을 주성분으로 하는 임신중절 약이다. 해외에서는 캐나다에서 2015년 허가받았고 국내에서는 현대약품이 지난해 7월 영국 제약사 ‘라인파마 인터내셔널’과 ‘미프지미소정’ 공급계약을 맺고 수입 의약품 품목허가를 신청한 뒤 식약처 심사 중이었다.
식약처는 관계자는 “미프지미소정은 국내 처음으로 사용되는 신물질을 함유한 제품으로, 식약처는 신약의 심사기준에 따라 안전성‧유효성, 품질자료 등에 대한 일부 자료를 보완 요청했다”며 “현대약품은 보완자료 제출기한을 2회 연장해 자료보완 기간을 추가로 부여받았으나 일부 보완자료는 기한 내 제출이 어렵다고 판단해 품목허가 신청을 스스로 취하했다”고 밝혔다. 이어 “미흡한 자료가 정확히 어떤 자료인지는 업체의 개별 품목과 관련된 정보라 공개하기 어렵다”며 “향후 현대약품이 이 제품의 품목허가를 다시 신청하면 제출되지 않은 보완사항을 중심으로 심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대약품 관계자는 “일부 자료를 구비하지 못해 취하한 것은 맞지만 미흡한 자료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원개발사와 관련된 정보여서 공개하기 어렵다”며 “최대한 자료가 확보되는 즉시 품목허가를 재신청할 예정이며 개발사와 적극적으로 논의 및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서울여성회’, ‘시민건강연구소’, ‘한국여성민우회’ 등 33개 단체가 연대한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모임넷)’는 식약처 발표 직후 성명서를 내고 임신중절약 도입 지연과 신청 철회 모두 식약처의 책임이라며 보건당국이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빠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임넷은 성명서에서 “제도의 미비로 임신중지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유산유도제(임신중절 약)의 도입이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며 “수상할 정도로 허가 절차가 너무 오래 걸렸음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에게 허가 철회는 대단히 유감스러운 소식”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미프지미소는 WHO(세계보건기구)가 인정하고 주요 국가들이 접근 보장을 강조하는 핵심 필수의약품”이라며 “60여 개국에서 자료를 탄탄하게 쌓은 유산유도제는 안전성 자료 미비를 이유로 허가를 반려해온 것은 분명한 식약처의 책임”이라고 식약처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조속히 도입하고 의약품으로서의 처방 기준을 정하면 되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에도 종교계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임신중절과 관련한 반대 목소리가 높자 이를 우려해 관계당국이 임신중절약 도입과 관련법 개정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 헌재는 낙태죄 헌법불일치 판정과 함께 2020년 12월 31일까지 관련법을 개정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헌재가 제시한 일자까지 관련법 개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형법 관련 법조항은 2021년 1월 1일 효력을 상실했다. 국회와 정부는 낙태 허용 시점을 3단계로 구분해 임신 14주까지 전면 허용하는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종교계와 시민단체 등의 의견이 엇갈리자 지금까지 처리를 미루고 있다. 이로 인해 임신중절수술도, 임신중절 의약품 구매도 모호한 상황에 놓여 있다. (관련 기사 ‘드라마 속 일만은 아니다’ 임신중절 약 불법거래 실태 추적)
이 같은 지적에 식약처 관계자는 “금번 자진취하는 일부 보완자료를 기한 내 제출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사료되며, 임신중절에 대한 사회적 우려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현대약품 관계자는 “답변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결국 침해되는 것은 여성들의 건강권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경기도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A 약사는 “임신중절 의약품이 허용된 국가에서도 반드시 의료진이 임신 여부를 확인하고 약물로 유산 후 유산이 완전히 됐는지 확인하게 돼 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인 줄 모르고 온라인 게시판이나 카톡방에서 개인이 판매하는 등 미성년자에게도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전예현 우석대 객원교수(시사평론가)는 한 라디오 방송에서 “임신중절 관련 입법과 관련 약 도입이 늦어지면서 오히려 불법으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해외 직구를 해 미프진이라 알려진 가짜약을 복용하는 일이 늘어나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며 “여성 건강권 차원에서 관련 당국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자리에서 조을원 법무법인 원스 변호사는 “식약처에서 이 약품을 통과시킨다고 해도 약을 누가 어떻게 처방할 것인지 가이드라인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현재 낙태죄가 형법상 없어졌지만 모자보건법상 관련 기준이 남아 임신중절 수술을 의료 현장에서 꺼리고 있는 모호한 상황이 벌어진 것처럼 입법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약만 들여온다고 논란이 잠재워지진 않을 것”이라며 입법부의 책임을 강조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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