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쥐대왕의 저주와 호두까기인형
동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어느 크리스마스이브, 주인공 클라라가 대부 드로셀마이어에게 선물로 받은 호두까기인형을 오빠 프리츠가 망가뜨리고 만다. 망가진 인형을 안고 잠이 든 클라라의 꿈에 생쥐떼가 나타나 호두까기인형과 장난감 병정들이 한판 전쟁을 벌인다. 생쥐들을 물리친 호두까기인형은 왕자로 변신해 클라라와 함께 환상의 나라로 여행을 떠나고, 클라라는 왕자를 사랑하게 된다.
크리스마스 아침, 클라라는 조카를 데리고 찾아온 드로셀마이어에게 호두까기인형에 얽힌 전설을 듣는다. 한 왕국의 왕이 몹시도 사랑하는 공주가 있었는데, 어느 날 왕이 베푼 잔치에 생쥐들이 몰려와 잔치를 망쳐버렸고, 진노한 왕은 생쥐들을 궁에서 내쫓았다. 생쥐 대왕은 이에 앙심을 품고 공주에게 저주를 내려 천하의 박색으로 만들어버린다. 한 청년이 호두를 먹으면 저주에서 풀려난다는 사실을 알려주어 공주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지만 생쥐대왕은 이번에는 청년에게 저주를 건다. 청년은 진심 어린 사랑을 받기 전까지는 호두까기인형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야기를 듣고 난 클라라는 드로셀마이어의 조카가 자신이 지난밤 꿈에서 만난 왕자와 똑같이 생겼다는 것을 깨닫는다. 드로셀마이어의 조카는 저주에 걸린 진짜 왕자였고, 왕자는 진실된 사랑으로 자신의 저주를 풀어준 클라라에게 청혼한다. 동화의 결말은 클라라와 왕자의 행복한 결혼식이다.
발레로 옮겨지면서 동화 속에서 드로셀마이어가 클라라에게 들려주는 생쥐대왕의 저주 이야기는 생략된다. 2막으로 구성된 발레는 1막에서는 크리스마스이브에 호두까기인형을 선물받은 클라라가 꿈속에서 호두까기병정과 생쥐떼의 전쟁에 휘말리고, 2막에서는 왕자로 변신한 호두까기병정과 환상의 나라로 여행을 떠난 클라라가 각국 인형들의 춤을 감상하고 왕자와 결혼식을 올린다. 동화의 결말이 클라라와 왕자의 결혼식으로 마무리되는 것과 달리 발레의 결혼식은 클라라의 꿈 속이고 꿈에서 깨어난 클라라는 망가진 호두까기인형이 멀쩡해진 것을 발견하며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는다.
#미국에서 시작된 공연 흥행
‘호두까기인형’이 마린스키극장에서 초연된 것은 1892년. 훌륭한 음악에 비해 줄거리에 통일성이 없고 마임 위주의 1막과 춤 위주로 구성된 2막이 조화롭지 못하다는 것이 초연에 대한 평가였다. 그 후 수십 년간 잠들어 있던 작품은 1934년 키로프발레단(현 마린스키발레단)에서 바실리 바이노넨이 재안무하면서 되살아났다. 이후 마린스키발레단은 바이노넨이 재안무한 버전을 발레단의 레퍼토리로 안착시켜 오늘날까지 공연하고 있다.
러시아가 아닌 지역에서 ‘호두까기인형’이 공연된 것은 1934년 런던 공연이 처음인데, 이 공연도 성공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관객의 외면 속에 잊히는 듯했던 이 작품이 크리스마스 시즌 레퍼토리로 자리잡게 된 것은 이후 10년 뒤인 1944년 샌프란시스코발레단이 크리스마스이브에 샌프란시스코 전쟁기념관에서 당시 예술감독이던 윌리엄 크리스텐슨의 안무로 미국 초연을 올리면서다. 이 공연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발레단은 명성과 재정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발레단이 크리스마스이브에 ‘호두까기인형’을 공연한 것은 작품 속 배경이 크리스마스인 것과 무관하게 당시만 해도 크리스마스 시즌은 공연 비수기였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발레단의 성공을 지켜본 다른 발레단도 곧 이 작품의 크리스마스 시즌 레퍼토리화에 동참했다. 1954년 뉴욕시티발레단은 조지 발란신의 안무로 이 작품을 공연했고, 1957년 미국 TV방송사 CBS에서는 크리스마스 당일 저녁, 방송의 프라임 타임으로 일컬어지는 시간대에 발란신 안무의 뉴욕시티발레단의 공연을 미국 전역에 방영함으로써 ‘호두까기인형’이 크리스마스 시즌 레퍼토리라는 인식을 심는 데 크게 공헌했다. 작품의 원조 격인 마린스키발레단은 1954년부터, 로열발레단은 1963년부터 루돌프 누레예프 안무작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연말 총성 없는 전쟁 ‘호두대전’
우리나라에서 ‘호두까기인형’이 처음 공연된 것은 1946년 서울발레단에 의해서다. 하지만 6·25전쟁 발발과 함께 발레단이 해체되면서 이 작품을 무대에서 다시 보기까지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1977년 국립발레단에서 일본 안무가 버전의 ‘호두까기인형’을 마침내 초연했지만 일회성 공연으로 그쳤고 다시 10여 년이 지나 유니버설발레단이 1986년 바이노넨 버전을 레퍼토리로 도입하며 ‘호두까기인형’이 비로소 크리스마스 시즌 공연으로 정착될 수 있었다. 그리고 국립발레단이 2000년 볼쇼이발레단 예술감독이었던 유리 그리고로비치 버전의 ‘호두까기인형’을 공연하며 양대 발레단의 연말 ‘호두대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호두까기인형’이 레퍼토리화되며 발레단 캐시카우 확보라는 재정적 이유 외에도 새로운 주역 발굴을 위한 테스트베드로서 기능도 발휘했다. 대개 빠르면 11월 하순부터 시작해 12월 말까지 공연이 이어지는 이 작품은 발레단에서 하나의 레퍼토리로 가장 많은 공연장에서 가장 많은 횟수의 공연을 올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공연 기간이 길고 공연 횟수도 많은 만큼 발레단에서는 주역으로 도약하기 전의 신인 무용수들의 역량을 확인하는 기회로 삼으며 새로운 주역을 발굴한다. 무용 관객들은 12월이 다가오면 발레단의 공연 일정과 캐스팅을 기다리며 관람 계획을 세우고 티켓 오픈을 기다린다.
이뿐 아니라 ‘호두까기인형’ 공연이 지역 관객들에게는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공연인프라를 공유하는 의미 있는 현장이 되기도 한다. 국립발레단은 서울 공연에 앞서 김해·세종·천안 등을 순회했고, 유니버설발레단은 안성·대전·군포 등에서 관객들과 만났다. 와이즈발레단과 서울발레시어터는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으로 양분된 공연 무대를 더욱 확장했고, 광주시립발레단과 부산발레시어터에서도 각자의 거점도시에서 공연을 올렸다. 바르나국립발레단의 내한공연까지 더해진 올해 연말 ‘호두대전’은 가히 총성 없는 전쟁이었다. 게다가 올해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객석 거리두기에서 자유로워져 공연장에는 그 어느 때보다 활기가 넘쳤다.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는 ‘호두대전’의 열기 속에서 공연 관계자들과 관객들 모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는 모양새다.
윤단우는 주로 사람과 사랑과 삶에 관한 생각의 편린들에 대한 글을 쓰며, 댄서가 반짝이는 무대와 숨찬 마감이 기다리는 데스크를 오갑니다. 신간으로 여성주의 공연비평집 ‘기울어진 무대 위 여성들’과 무용현장 에세이 ‘여성, 신체, 공간, 폭력’이 나왔습니다.
윤단우 공연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