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0일 개최된 참의원 선거에서 기시다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의석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압승을 거뒀다. 당시만 해도 “기시다 총리가 장기 집권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선거 직후 기시다 내각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50%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통일교(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와 자민당의 접점이 속속 드러나면서 지지율은 하락했다. 여기에 거액의 세금을 들여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국장을 치렀고, 물가 급등 대책이 겉돌자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통일교 피해자를 구제하는 법안’이 조기 통과되면서 다소 만회했지만, 이번에는 증세와 각료 비리로 내각 총사퇴 수준까지 지지율이 추락 중이다.
현지 언론에 의하면 “특히 지지율 추락에 기름을 부은 것은 방위비 증액을 위한 증세”라고 한다. 지난 12월 16일, 일본 정부는 외교·안보 정책 지침인 국가안전보장전략 등 3대 안보 문서를 개정해 ‘반격 능력(적기지 공격 능력)’ 보유 등을 포함한 방위력의 근본적 강화 방침을 결정했다. 이를 위해 “5년간 방위비로 43조 엔(약 408조 원)을 확보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현행보다 1.5배 이상 늘어나는 액수다.
기시다 총리는 “부족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법인세·소득세·담뱃세를 2024년 이후에 올리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일본 주간 ‘재팬비즈니스프레스(JBpress)’는 “증세를 둘러싼 총리의 설명이 충분하지 않아 국민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기시다 총리가 선거 때 자신의 장점으로 ‘듣는 힘’을 내세웠지만, 정작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뿐더러 국민을 설득하는 ‘말하는 힘’은 더더욱 없다”고 꼬집었다.
또한, 매체는 “총리가 밝힌 ‘방위력의 근본적 강화’는 결국 바꿔 말하면 ‘미국산 전투기와 순항미사일 토마호크 등을 구입하겠다’는 얘기”라고도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러한 일본의 결정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사히신문은 “방위비를 어떻게 늘려야 합당한지 고심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요컨대 “이것저것 욕심만 부린 ‘몸집 키우기’ 예산 증액으로 무조건 밀어붙이고만 있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반격 능력 확보를 위한 12식 미사일 개량, 음속의 5배 넘는 속도로 비행하는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과 양산, 차세대 전투기 개발, 사이버부대 2만 명, 다수의 소형 위성을 한 덩어리처럼 운영해 정보를 수집하는 ‘위성 컨스텔레이션’ 등이 예산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다 요지 전 해상자위대 사령관은 “과연 정말 다 할 수 있는지, 해도 되는 건지에 대한 검토가 전혀 보이지 않고 대국민 설명도 미흡하다”고 비판했다. 그에 의하면 “극초음속 미사일의 경우 미국이 2조 엔을 들여도 배치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한다. 인력 확보를 고민하는 자위대가 2만 명이나 되는 사이버부대를 모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처럼 기시다 총리가 충분한 공감대 없이 증세를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 여권 안에서도 반발이 나오고 있다.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정조회장은 “갑작스러운 증세에는 반대한다”며 “총선거로 국민의 신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기시다 내각 장관들의 잇따른 불상사도 지지율 하락을 가속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8월 전면 개각을 단행했으나, 최근 장관 4명이 통일교 연루 의혹 및 부적절한 발언으로 줄줄이 사임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기시다 총리는 성소수자 관련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스기타 미오 총무성 정무관도 교체할 예정이다.
마이니치신문은 “단기간에 4명의 각료가 차례차례 사임에 내몰리는 ‘도미노’ 상태가 됐다”며 “정권의 구심력은 더욱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교도통신도 “내각 지지율 부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잇따른 관료의 사임은 정권에 또 다른 타격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경화 젊은 층 ‘기시다 이탈’ 두드러져
요미우리신문은 “보수적 성향이 강했던 젊은 층의 ‘기시다 이탈’이 두드러진다”고 전했다. 자체 여론조사에 의하면, 2022년 기시다 내각에 대한 20대의 연평균 지지율은 53%로, 전체 평균 지지율(55%)을 2%포인트(p) 밑돌았다. 20대 절반 이상이 지지하고 있으니 언뜻 높은 것처럼 보이지만, 과거 데이터와 비교하면 크게 하락한 수치다.
제2차 아베 내각이 탄생한 직후부터 20대의 내각 지지율은 일관되게 전체 평균을 웃돌았다. 가령 2013년에는 평균보다 4%p를 웃도는 71%, 2014년에는 7%p 높은 63%였다. 2018년은 다른 세대의 지지율이 30%였는데도 불구하고, 20대만 64%를 돌파했다. 일각에서는 ‘젊은 층의 우경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그런 20대의 지지율이 10년 만에 처음으로 전체 평균을 밑도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20대의 ‘기시다 이탈’ 배경은 무엇일까. 마에다 유키오 도쿄대 교수는 “아베나 스가 전 총리에 비해 기시다 총리의 존재감이 매우 희박하다”고 언급했다. 일례로 20대들에게 인기인 동영상 공유 앱 ‘틱톡’을 보면 쉽다. 전 총리들의 인상적인 국회 답변이나 연설 등을 짧게 편집한 동영상이 인기다. 심지어 망언으로 종종 물의를 빚는 아소 전 총리마저도 조회수가 높다. 반면, 현역 총리인 기시다의 동영상은 애초 게시물 자체가 적다고 한다. 마에다 교수는 “기시다 총리가 일본을 어떻게 이끌려고 하는지가 젊은이들에게 전혀 전해지지 않고 있다”고 평했다.
청년층을 위한 매력적인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요인이다. 정권 출범 당시 기시다는 유권자의 조언을 꼬박꼬박 적어놓은 ‘기시다 노트’와 ‘듣는 힘’을 강조했지만, 경제정책과 관련해 구체적인 성과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아베노믹스라 불리는 경제정책을 밀어붙인 아베 전 총리, 휴대전화 요금 인하와 디지털청을 설치한 스가 전 총리는 청년층의 삶과 미래에 관련 깊은 정책으로 어필했지만, 기시다의 경우 뚜렷한 청년 대상 정책이 없을뿐더러 개혁 의욕마저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