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하며 산 줄 알았는데 돌이켜보니 제가 받은 게 훨씬 많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조금 나눠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저로서는 이것이 세상에 진 빚을 갚은 방법입니다."
홀로 가꿔온 1만 제곱미터의 뜰과 서원을 사람들에게 내어주고 공유하는 일흔두 살의 노학자 전영애 씨. 세상을 향한 그녀의 뜨거운 사랑이 담겨 있는 여백의 뜰에서의 사계를 만나본다.
경기도 여주에 자리한 여백서원. 맑고 흰 빛이라는 뜻의 이곳은 꽃들의 정원이자 나무의 고아원이다. 버려지고 못 자라는 나무들을 옮겨 심어왔다는 뜰에는 수십 종의 맑은 꽃들도 피고 진다. 1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뜰을 돌보는 건 순전히 일흔두 살 전영애 씨의 몫이다.
그래서 자칭 '3인분 노비'다. 글을 쓰다 머리가 아프면 무조건 정원으로 나간다는 그녀. 정원 일을 하다 보면 잡념은 사라지고 땅 위에 몸으로 시를 쓰는 것처럼 벅찬 희열이 차오른다. 그녀가 땀과 세월로 가꿔온 여백의 뜰의 아름다운 1년을 영상에 담았다.
삽자루와 장화, 후줄근한 티셔츠. 평소 그녀의 복장은 영락없는 일꾼이다. 홀로 정원을 가꾸느라 거칠어진 손은 차라리 연장에 가깝다. 그러다 밤이 되면 삽자루 대신 펜을 쥐는 그녀. 수만 권의 장서가 보관된 서원 한 구석에서 밤새 책을 읽고, 번역하며, 글을 쓴다.
사실 그녀는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였으며 세계적인 괴테 연구가이자 '파우스트' '데미안' 등을 번역한 이름난 번역가이다. 정원에서는 3인분 노비처럼 책상 앞에서는 수험생처럼 시간을 부지런히 경작하는 일흔둘의 전영애 교수.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뜨겁게 움직이게 하는 걸까.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옆에 그냥 다가가서 가만히 서는 일인 것 같아요. 그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죠. 저 사람이 어디가 아프겠다. 그 마음을 안다는 건 어마어마한 감싸 안음이에요.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들로 아프고 외로운 이들 곁에 가만히 서 있고 싶을 뿐이에요."
그녀는 여백의 뜰과 서원을 일반인들에게 내어주고 공유한다. 누구라도 뜰을 거닐며 잠시 쉬어갈 수 있고 서원에서 책을 읽으며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어릴 적 그의 부모에게 받은 극진한 사랑 때문이다. 세상 풍파에 흔들릴 때마다 그녀를 붙들어준 건 몸이 기억하는 그 사랑이었다.
괴테의 '파우스트'에도 '사람을 마지막 실족에서 물러서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 했다. 그녀가 여백의 뜰과 서원을 애써 가꾸고 어린아이와 학생, 청장년 모두와 공유하는 건 그러한 사랑을 나누고 전하고 싶었던 까닭이다. 당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전하며 힘껏 박수치고 응원하는 그녀. 퍽퍽한 가슴에 여백을 내려는 것이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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