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채 정씨 900채 김씨 60채 송씨 연이어 숨져…피해자 모임 “그들은 바지일 뿐” 꼬리자르기 음모론도
오피스텔과 빌라 등 약 60채를 보유한 송 아무개 씨는 12월 12일 인천 남동구 자택에서 숨졌다. 경찰에 따르면 집에서 송 씨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가 발견됐다고 전해진다. 경찰은 송 씨가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사건을 종결했다.
“1995년생이 집 주인이 됐다고 해서 놀랐는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부모 권유로 투자 목적으로 산 줄 막연히 생각했어요.” 송 씨 소유 빌라에 살고 있는 임차인 A 씨의 말이다. A 씨는 처음부터 송 씨와 계약을 맺은 게 아니다. 전세 계약을 맺고 약 1개월 뒤 송 씨로 주인이 바뀌었다. 나중에 등기를 보고서야 바뀌었다는 걸 알았다.
송 씨와 계약을 체결한 수십 명 사례를 들어보면 80% 정도는 계약 체결 뒤 소유자가 송 씨로 바뀐 경우다. 대략 20% 정도만 송 씨와 집계약을 체결했다. 전형적인 전세 사기 패턴 가운데 하나인 ‘동시 진행’으로 보인다.
집주인이 송 씨로 바뀌었지만 송 씨는 집을 보러오지도 않았다. 일요신문이 파악한 피해자들 가운데 명의가 변경될 때 송 씨가 집을 보러온 적이 있다고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피해자들은 “집주인이면 한 번은 집을 보러 올 만한데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입을 모았다.
동시 진행은 전세 계약을 체결하고 그날 혹은 빠른 시일 내에 집주인을 바꾸는 방법이다. ‘바지’ 격인 명의 대여자에게 전세 사기를 친 매물을 넘기기 위한 작업이다. 전세 사기에 필요한 인원 가운데 명의 대여자는 200만~300만 원을 받고 사기 매물을 소유권 이전 등기로 받는다.
언론에서 흔히 수십 채, 수백 채, 많게는 1000채 이상 빌라나 오피스텔을 보유한 전세 사기 명의자를 ‘빌라왕’이라 부르지만 이는 잘못된 말이라는 게 피해자들 의견이다. 전세 사기 피해자 모임 운영자 B 씨는 “빌라왕은 없다”고 단언한다. B 씨는 “송 씨는 빌라왕이 아니라 명의를 대여한 바지일 뿐이다. 투자와도 거리가 멀다. 빚더미에 오른 빌라를 자기 명의를 빌려줘서 떠안은 사람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A 씨는 송 씨에게 연락할 때마다 연락이 닿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A 씨는 “입주하고 얼마 뒤 보일러가 고장 나 연락했지만 연락이 어려웠다. 이후 송 씨에게 문자로 ‘고치고 금액 청구하면 바로 송금해 주겠다’는 답장을 받았다”면서 “고치고 나서 한 달 동안 계속 전화를 했는데도 안 받다가 겨우 연락이 닿아서, ‘돈을 왜 안주냐’고 하자 송 씨가 ‘직업 특성상 문자도 많이 오고 광고도 많이 와서 확인을 못했다. 문자 보내라’고 했다가 또 연락이 안됐다”고 말했다.
A 씨의 전세 계약은 2023년 1월에 종료된다. 자꾸 연락이 안 닿는 송 씨가 미심쩍어 전세계약 갱신을 거절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송 씨에게 ‘네’라는 답변이 왔다. 계속 연락이 되지 않아 불안한 마음이 컸던 A 씨가 ‘보증금 전액 만기 날짜에 받을 수 있냐’고 묻자, 송 씨가 ‘근데 이걸 왜 자꾸 물어보냐’고 답변이 왔다.
다른 피해자와 달리 A 씨가 송 씨와 연락을 계속 시도하게 된 건 만기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송 씨가 피해자들과 집중적으로 전세 계약을 맺거나 명의가 변경된 건 2021년 1월부터다. 피해자들 가운데 A 씨는 가장 빨리 만기가 도래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2023년 1월부터 2023년 말까지 줄줄이 만기가 다가오고 있다.
송 씨는 2022년 12월 12일 사망했다. 피해자들의 전세 계약 만기가 다가오던 시점이었다. 12월 중순까지 피해자들은 송 씨와 연락이 닿기 위해 노력했다. 송 씨에게 갱신 거절을 얘기하기 위해서다. 갱신 거절 문자에 답변을 받아야 나중에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보증보험을 통해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12월 19일 송 씨 전화기가 꺼졌다. 피해자들은 ‘송 씨가 연락이 잘 안되긴 했지만 전화기가 꺼져 있는 건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A 씨가 송 씨가 사망한 것을 부동산을 통해 알게 되면서 피해자 모임이 만들어지게 됐다. 피해자 모임을 통해 송 씨를 직접 만나봤다는 사람도 알게 됐다.
C 씨는 송 씨와 다른 일 때문에 만났다고 했다. C 씨는 “송 씨는 문자로 대화할 때는 간단명료하게 똑 부러지게 얘기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직접 만났을 때는 말투가 좀 어눌해서 이상하게 느껴졌다. 대화 중 송 씨는 스스로를 임대업을 하는 금수저인 것처럼 말했다”고 설명했다.
송 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에 사실 확인을 위해 집을 찾은 피해자도 있었다. 집을 찾은 피해자에 따르면 집에는 엄청난 양의 재산세 고지서가 꽂혀 있었다고 했다. 전세 사기 명의 대여자는 어차피 파산을 예정했기 때문에 재산세 등을 내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송 씨 피해자 가운데 약 70%가 전세보증보험에 가입돼 있다고 전해진다. 다만 송 씨가 사망하면서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전세보증보험에서 보험금 수령도 불가능하진 않지만 어렵게 됐다. 임차권등기를 해야 HUG에서 보증금을 보험 가입자에게 주는데 망자를 대상으로는 임차권등기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송 씨가 가진 빌라와 오피스텔이 상속자에게 권리가 넘어가고 이를 상속 받을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재산세 등이 10억 원 이상 쌓여 있을 가능성이 높은 데다 빌라나 오피스텔에는 내줘야 할 전세금이 집값 가치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상속을 받아들일 사람은 없을 것이 확실시된다. 어쨌건 상속 의사가 있는지, 상속 포기 절차를 할지 여부를 사촌까지 확대해서 알아봐야 하는데 그 과정도 오래 걸린다. HUG에서 요구하는 임차권등기가 1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HUG에서 전세금을 반환 받는 것이 늦어지면 세입자들이 난감해진다. 전세계약 만기가 되면 은행에서는 전세금을 반환 받길 원하는데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전세 대출 연장이 안 돼 전세금을 돌려줘야 하는데 그럴 수 없어 저신용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송 씨 사망은 또 하나의 의문점을 낳는다. 소위 빌라왕이라 불리는 명의 대여자들 죽음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10월 13일 또 다른 ‘빌라왕’으로 불린 김 아무개 씨가 서울 종로구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 씨는 약 900채를 보유했다가 전세 사기를 벌인 혐의로 수사를 받는 중이었다.
7월에는 약 240채 이상 보유했다고 알려진 정 아무개 씨가 사망했다. MBC 보도에 따르면 정 씨는 심지어 사망 당일인 7월 30일에도 전세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정 씨가 사망 당일에도 전세 계약을 맺은 건 전세 사기 조직이 뒤에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피해자 모임 운영자 B 씨는 “통상 명의 대여자는 위임장을 뿌려 놓고 알아서 계약하라고 한다. 계약이 체결될 때마다 200만 원에서 300만 원 정도 명의 대여 비용을 받을 뿐”이라면서 “사망 당일에도 부동산에서 정 씨 명의로 된 위임장을 써서 계약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 같다”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전세 명의 대여자 사망을 두고 의혹이 나오고 있다. 전세 사기 피해자 D 씨는 “김 씨가 1980년생으로 40대 초반 남성이고, 송 씨는 1995년생 여성이다. 정 씨도 40대 남성으로 알려졌다. 아직 젊은 나이대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비슷한 시기에 단순 사망했다는 얘기를 믿을 수 없다”면서 “연쇄적으로 명의 대여자가 죽고 있다. 이 상황을 두고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이 김 씨에게 집중하자 전세 사기 총책이나 전세 사기 조직이 자신들까지 다칠까 봐 미리 꼬리 자르기를 한 것 아니냐는 소리도 들린다. 음모론 같지만 그만큼 피해자들이 당혹스런 상황”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수사기관에서는 빌라 건축주와 부동산 중개 브로커 등 전세 사기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를 대대적으로 이어갈 방침이다. 경찰은 송 씨, 김 씨, 정 씨 등이 사망했기 때문에 ‘공소권 없음’ 처리하는 한편, 빌라 건축주 및 부동산 브로커 등 다른 관련자를 상대로 수사를 이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검찰에서도 전세 사기 조직 총책을 잡기 위한 노력하고 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피해자들은 ‘가짜 빌라왕’인 바지 송 씨, 김 씨, 정 씨가 아닌 이들을 이용한 '진짜 빌라왕'까지 수사가 이어져 나가길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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