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다고 해서 생각보다 (주변 반응이) 크게 달라진 건 아니었고요(웃음). 아무래도 아직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끼고 다녀서 얼굴을 내보이진 않으니까요. 대신 주변에서, 특히 아이 친구 엄마들이 굉장히 반겨주시는 게 너무 고마워요. 또 가까운 지인과 친구들이 응원해주시고 좋아해주시니까 그게 또 소소한 행복이죠. 저희 아이들이 치킨을 좋아해서 먹으러 자주 가는데, 식당 사장님께서 ‘아이고, 시장님’ 하시면서 서비스로 콜라도 주시고 그러시더라고요(웃음).”
JTBC 금토일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속 순양그룹 회장 진양철(이성민 분)의 고명딸, 진화영(김신록 분)의 남편인 최창제는 시골 출신 고학생으로 묘사된다. 그냥 부자도 아니고 어마어마한 재벌가라는 처가의 기에 눌린 최창제는 진씨 일가의 모임이 있는 날이면 고개 한 번 제대로 들지 못하고 굽신거린다.
제 나름대로 능력과 야망을 갖추고 있지만 기회를 잡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그는 초반엔 아내인 화영, 중반부터는 막내 조카인 진도준(송중기 분)의 도움을 받아 꿈에 그리던 정계에 진출하게 된다. 부장검사를 거쳐 서울시장과 법무부 장관, 마지막엔 기어코 당대표의 자리까지 오른 그를 보며 묘한 대리만족을 느꼈던 시청자들도 적지 않았을 터다.

이름 앞에 ‘사위’나 ‘고모부’가 붙던 과거를 뒤로하고 ‘시장님’과 ‘장관님’이 되면서부터 최창제의 턱은 조금씩 하늘을 향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무시하는 두 손위 처남 진영기(윤제문 분)와 진동기(조한철 분)에겐 물론이고 아내인 진화영의 앞에서까지 한없이 처지고 쪼그라들었던 어깨도 으쓱으쓱 치켜세우며 한번쯤 이들을 준엄하게 꾸짖어 보기도 한다. 이런 최창제의 변화를 찾아내는 건 시청자들의 또 다른 재미가 됐다는 뒷이야기도 있었다.
“그런 걸 캐치해주시면 진짜 그 연기를 의도한 배우로서 너무 행복해요. 저는 창제의 변화 시점을 진양철 회장이 사망하고 난 뒤로 잡았어요. 마음의 변화는 그전부터 시작됐지만 태도는 장례식 직후부터 변화하죠. 창제의 무릎을 보시면 초반에는 무릎을 잘 펴지 않아요. 일종의 ‘굽신’이라 늘 무릎을 낮추고 굽히고 있는데 그 각도가 점점 펴지죠. 그리고 턱 높이도 달라져요. 이전까지는 진씨 사람들이 부르면 늘 고개를 숙이고 돌려서 봤는데 나중엔 치켜들고(웃음). 그러다 나중엔 더 갈 게 없으니까 주머니에 손까지 넣게 되는 거죠.”
직함이 늘수록 자신감이 붙었지만 그럼에도 장인어른 진양철은 무서웠다는 게 김도현의 이야기다. 극 중에서도 한 번씩 ‘잽’을 쳐 봤을 뿐 깊숙이 들어가는 한 방을 넣지 못했던 것처럼, 진양철과 그를 연기한 이성민은 최창제와 김도현에게 넘을 수 없는 산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진양철을 독대하는 신은 물론이고 다 모인 자리에서도 진양철이 호통을 치면 무서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고 귀띔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을 무시하는 순양가 사람들 중 유일하게 자신의 편을 들어준 화영과의 ‘티키타카’는 시청자들이 이 부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줬다. 진양철의 순양 창업기와 더불어 외전 요구가 빗발치는 이들의 러브스토리를 묻자 김도현은 “이미 저와 김신록 배우가 전사를 다 생각해 놨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과외선생과 고3 학생으로 만났는데 가르치다가 눈빛이 느껴져서 보면 화영이가 쳐다보고 있었을 거예요(웃음). 그런데 김신록 배우는 ‘내가 (사귀도록) 유도는 해도, 대시는 먼저 안 했을 거야!’ 그러더라고요. 대시는 제가 했겠죠(웃음). 그러다 정이 들어서 사귀게 됐을 땐 화영이가 아버님께 반쯤 진상 부리면서 자지러지고 가출 시도도 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아마 거의 포기하는 심정으로 교제를 허락했을 거예요(웃음). 저와 신록 배우는 화영과 창제가 진짜로 사랑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마 화영이는 재벌가 남자들이 지긋지긋했을 거고, 그러다 창제를 만났을 거예요. 티키타카 싸우는 것도 사실 진짜 부부들 중에서도 그 정도로 안 싸우는 부부가 어딨어요(웃음)! 저희는 ‘찐 사랑’을 했습니다.”
2022년 연말을 최창제로서 만족스럽게 장식한 김도현은 2023년을 달려 나가기 위해 운동화 끈을 한 번 더 세게 조여 맨 참이다. 1999년 연극 ‘오셀로’로 데뷔 후 약 10년 만에 뮤지컬 무대로, 그리고 2010년부터는 드라마로 ‘장영실’ ‘아스달 연대기’ ‘스토브리그’ 등 굵직한 작품에서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려온 그는 자신의 단점이자 강점을 ‘딱히 강렬한 인상이 없는 마스크’로 꼽았다. 특색이 없기에 작품에 더욱 자연스럽게 녹을 수 있다는 것은 배우에게 있어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을 터다. 최창제를 벗고 다시 새로운 캐릭터로 시청자 앞에 나설 김도현은 “해본 적이 없는 무대와 캐릭터라도 늘 그랬듯 똑같은 마음가짐으로 해낼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언젠가 연극 공연할 때 분장 선생님이 제 얼굴을 보고 ‘참 그리기 좋은 얼굴이다’ 그러시더라고요(웃음). 어떤 강렬한 눈빛이나 콧날 그런 게 없는 얼굴이라 어느 방향으로 가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지만 한편으론 기회가 주어지기 전에 어떻게 하면 시청자의 뇌리에 남게 할 수 있을지 아직도 고민이 많아요. 그래도 이렇게 계속 묵묵하게 작품을 하다 보면 제게 어울리는, 제가 잘할 수 있는, 김도현이란 배우가 맡았으면 좋겠다는 역의 범위가 점점 뚜렷해질 거라 믿어요. ‘재벌집 막내아들’에서도 내가 이렇게 연기할 수 있다는 걸 새삼 발견했으니까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