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본 부분은 송중기가 주식시장의 흐름을 바꾸겠다고 강행한 바이미라클 펀드가 대박을 친 장면이다. 이 장면의 직접적인 모티브가 IMF 외환위기 당시인 1999년에 출시된 ‘바이코리아 펀드’라는 점은 이론이 없는 듯하다. KB증권에 합병 전이었던 현대증권은 당시 이익치 회장의 주도 아래 ‘우리 손으로 우리 힘으로 한국을 삽시다 BUY KOREA’ 슬로건을 내세워 ‘바이코리아 펀드’를 출시했고, 출시 3개월 만에 12조 원이 넘는 자금을 끌어모았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인 1998년 4월부터 11월까지 약 8개월 동안 같은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이 현대전자(현 하이닉스) 주식을 대상으로 조직적으로 주가조작을 벌였다. '현대전자 주가조작'으로 불리는데, 사상 초유의 재벌그룹 주가조작 사건이었다.
1999년 4월 금융감독원 발표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이 주가조작에 동원한 자금은 2000억 원, 현대상선은 200억 원이었고, 그 결과 현대전자의 주가는 당초 1만 4000원대에서 3만 2000원대까지 상승했다. 주가조작 기간에 총수 일가인 정 씨 일가들은 보유주식을 팔아 수십억 원씩 차익을 얻었고 소액주주들은 피해를 보았다.
재벌그룹이 조직적으로 개입했고, 규모도 사상 최대인 2200억 원대에 이르렀으며, 기간도 장기간(8개월)에 걸친 엄청난 주가조작 사건이었다. 이 장면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이 사건의 규모와 성격에 비해 여러 의혹만 남긴 채 씁쓸하게 종결되었고,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바이코리아 펀드가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과 일부 현대증권 실무자만 형사처벌을 받았고, 이익을 얻은 총수 일가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에서 지속적으로 진실규명 촉구 집회를 했지만 검찰의 선택적 정의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도대체 당시 무슨 일이 벌어졌고 검찰 수사는 왜 그 모양 그 꼴이었는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진실은 아직 허공을 떠돈다.
당시 현대증권은 바이코리아 펀드와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은 무관하다고 주장했고, 드라마에서도 검사역을 맡은 신현빈 배우가 바이미라클 펀드가 뉴데이터 테크놀로지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사건을 종결하지만, 이번 드라마 제작 후원사가 KB증권이라는 점은 개운치 않다.
비록 송중기의 꿈으로 밝혀져 결론이 엉망진창이 됐지만, 현실로 돌아와서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나가야 한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과거의 기억을 소환했고, 그중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을 통해 드라마 내내 간간이 나오는 용어인 ‘금산분리’ 정책의 필요성을 간접적으로 설명한다. 금산분리 정책은 금융과 기업을 분리해서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최소화하고 이해 충돌을 미리 방지하자는 정책이다.
기업은 대부분 금융회사를 갖고 싶어한다. 은행과 보험사와 같이 예금이나 보험료를 모아서 보관하는 금융회사는 급할 때 모은 돈을 요긴할 때 사용할 수 있다. 증권회사도 회사가 직접 자금을 모을 경우나 발행 주식을 거래하는 2차 시장에서 유용할 때 활용할 수 있다.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에서 계열사인 현대증권이 동원된 것도 같은 배경이다. 현재 총수 일가가 삼성전자라는 거대 글로벌 기업을 삼성생명을 통한 국민들의 보험료로 지배하는 구조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비판하면서 삼성생명법 개정을 논의하는 이유도 같은 배경이다.
모으면 효율적이고, 흩어 놓으면 비효율적이다. 정치도, 경제도, 개인정보도 모두 비슷하다. 플라톤이 현명한 한 사람 또는 소수 엘리트에 의한 철인정치를 높이 평가한 것은 동의할 만하다. 그러나 모았다가 감당하기 힘든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권력화된 자본도 최소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기업) 범주로는 분리하는 것이 위험을 줄여서 좋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이다. 잠시나마 ‘금산분리’ 정책의 필요성을 생각해 보면 좋겠다.
이상훈 변호사(금융경제연구소장)는 기업 지배구조 발전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서울대 경제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과 대학원을 수료했으며, 사법연수원(27기) 수료 후 변호사로 활동(1998년)하고 있다. 현재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으로서도 힘을 보태고 있다. 그는 ‘상장기업법(2021)’ 공동저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상훈 변호사(금융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