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 브로커 구 씨 구속되며 100명 수사선상에…그중엔 주전급 프로축구 선수와 20대 배우도
이번 검찰 수사의 핵심은 병역 브로커 구 아무개 씨다. 이미 구속 기소된 구 씨는 해경 출신으로 경장이던 2008년 해경을 떠났고 이후 공군 수사관으로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을 ‘병역의 신’으로 소개하곤 했던 구 씨는 5급 전시근로역 판정을 받은 의뢰인의 신체검사 결과지를 사진으로 올려가며 자신의 능력을 뽐내곤 했다. 구 씨는 온라인 전문직종 소개 사이트에 자신을 ‘병역판정, 재검, 현부심, 생감면 전문가’라고 홍보하며 활동해 왔다. 여기서 현부심은 ‘현역 복무 부적합심의’, 생감면은 ‘생계유지 곤란 사유 병역감면’이다.
현재 수사는 검찰과 병무청이 합동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현재 수사 대상은 70~100명 사이로 알려졌다. 프로 스포츠 선수와 연예인은 물론, 고위 공직자와 법조인 자녀 등도 수사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져 폭발력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
주된 수법은 허위 뇌전증(간질) 진단서를 발급받는 방식인데 뇌전증은 뇌 신경세포가 일시적으로 과도하게 흥분하면서 발작하는 신경계 질환이다. 20대 남성의 뇌전증 유병률은 1000명 당 3.88명 수준이다. 구 씨는 뇌전증 허위 진단서 발급으로 병역을 면탈하는 방법을 알려주며 사례금을 받아왔는데, 검찰은 최대 1억 원의 사례금까지 받은 것으로 확인한 상황이다.
서울남부지검 형사5부(부장 박은혜)가 12월 21일 병역 브로커 구 씨를 구속기소하면서 수사에 속도가 붙었다. 현재 검찰은 구 씨를 통해 병역 면탈을 받은 이들은 물론이고 또 다른 병역 브로커와 관련 의료진까지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미 남부지검은 12월 초부터 부장검사 1명과 검사 2명, 수사관 3명, 병무청 특별사법경찰 9명 등의 규모로 병무청과 함께 ‘병역면탈 합동수사팀’을 운영해 왔는데 최근 서울남부지검은 수사 검사와 수사관을 2배 늘리며 수사를 확대했다.
이미 수사대상에 오른 조재성 선수(27·오케이금융그룹 프로배구단)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허위 뇌전증 진단서를 발급 받아 사회복무요원(4급) 판정을 받은 사실을 인정했다.
조재성 선수가 화제를 집중시키면서 프로 스포츠계가 가장 먼저 긴장하는 분위기다. 벌써 23세 이하 대표팀 출신 프로축구 선수 한 명이 수사 대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는 K리그 1부 리그에서 200경기가량 소화한 주전급 선수로 알려져 혐의가 입증되면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프로스포츠 선수는 한창 전성기를 누릴 나이에 군에 입대해야 해 병역 브로커의 유혹에 빠져들기 쉽다. 한 프로축구계 관계자는 “어린 나이에 기량을 인정받은 선수는 아시안게임 등 병역을 해결할 기회가 주어지고 그런 기회를 놓칠지라도 유명세로 인해 허위 뇌전증 등으로의 병역 면탈은 힘들다”며 “반면 군 입대 연령이 다가오고 있지만 프로에서 제대로 자신의 기량을 입증하지 못한 선수들이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는데 그런 상황에서 병역 브로커의 제안에 흔들리곤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아무래도 비인기 프로 종목 선수, 잘 알려지지 않은 선수 등이 수사대상에 많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게 병역 문제를 불법적으로 해결한 뒤 비로소 프로 무대에서 기량을 만개한 선수가 결국 병역비리 수사에 휘말릴 경우 파장이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예계 역시 비슷한 반응이었다. 연예계 최대 병역비리 사건은 2004년에 있었다. 당시에는 병역 브로커를 통해 소변검사를 조작해 허위로 사구체신염 판정을 받는 방식이었는데 송승헌과 장혁, 한재석 등 톱스타들이 대거 연루됐었다. 2000만~3000만 원을 브로커에게 주고 병역 면제 판정을 받았던 이들. 결국 송승헌과 장혁은 현역 복무, 한재석은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했다.
앞서 스티브 승준 유(한국명 유승준)가 병역 논란으로 가장 화제가 됐지만 ‘병역 비리’는 아니었다. 그는 이중국적자의 국내 영리활동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병역법이 개정되자 2002년 1월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해 ‘병역 기피’ 논란에 휩싸였다.
2004년 사구체신염 논란 이후에도 몇 차례 병역 브로커가 검거되며 병역비리 사건이 크게 터지곤 했지만 스타급 연예인이 연루되는 사례는 거의 없었다. 점차 복무기간이 짧아지며 군 공백이 줄어들고 있고, 군 공백에 의한 손해보다 군복무로 인한 이미지 상승효과가 더 크다고 판단하는 분위기가 정착됐다. 그러다 보니 연예계에서도 군 입대 시점까지 소위 뜨지 못한 연예인들이 주로 병역비리 사건에 휘말렸다. 제대로 뜨지 못한 채 군 공백까지 갖게 되면 연예계를 영영 떠나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검찰 수사에서도 배우 한 명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영화와 드라마 등에 출연한 20대 배우가 수사 대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는데 화제성이 큰 스타급 연예인은 아닌 것으로 전해진다.
한 중견 연예관계자는 “요즘에는 스타급 연예인은 입대 전에 CF를 여러 편 미리 찍어 두고 군 복무 기간에 방영할 드라마나 개봉할 영화의 촬영을 끝내서 군백기를 최소화하는 방법에 더 집중하지 위험한 병역 비리를 시도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며 “이번 수사도 그렇지만 앞으로 연예계에서 병역비리가 문제가 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초고속 인터넷 보급으로 온라인 시대가 활짝 열린 2000년대 초반 가장 화제가 된 정보는 ‘연예인의 데뷔 전후 사진’과 ‘연예인의 병역 면제 사유’였다. 정신질환 등 연예인의 병역 면제 사유가 아예 표로 작성돼 돌아다닌 터라 거기 언급된 연예인들은 상당한 이미지 타격을 입었다”며 “이번 브로커의 수법은 뇌전증인데 발작을 일으킬 수 있어 운전면허 취득에도 제한이 뒤따르는 질병이라 연예인이 받아들이기에 다소 어려운 수법 아니었나 싶다”고 설명했다.
김은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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