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미세력이 조종” 왕 회장 정치적인 단어 선택에 주목…“물증 찾긴 쉽지 않아, 외교 이슈 불거질 가능성도”
중국 비밀경찰 거점으로 지목된 중식당은 서울시 송파구 한강변 선상에 위치해 있다. 이곳 실소유주는 왕하이쥔 중화국제문화교류협회장이다. 왕 회장을 소개하는 직함은 여럿이다. 서울 화조중심(OCSC) 주임, 서울 화성예술단장 등이다. 왕 회장은 자신이 소유한 중식당이 비밀경찰 거점으로 의심받자 2022년 12월 29일과 12월 31일 두 차례에 걸쳐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12월 31일 회견에선 참가자에게 입장료 3만 원씩 걷는 수완도 뽐냈다.
중국 공산당 당원인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왕 회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왕 회장이 주임으로 있는 화조중심이 납치기관이 아니냐는 의혹과 관련해선 “(화조중심은) 질병 등 돌발적 상황으로 죽거나 다친 중국인이 귀국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단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 송파구 소재 중식당이 비밀장소인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왕 회장은 “2017년 2월 첫 계약 이후 2017년 10월, 2020년 7월 두 차례 추가 계약으로 식당을 운영 중”이라면서 “중국 국무원이 최초로 허가한 ‘해외중식 번영기지’는 맞는데, 자금 지원은 전혀 없었다. 주로 기술지원을 위한 해외연수 기회를 제공받았다”고 했다. 2023년 1월부터 해당 중식당이 영업을 중단하는 것과 관련해선 “선박 안전문제 때문”이라고 답했다.
왕 회장은 중국 비밀경찰 관련 논란에 대해 “친미세력이 조종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한국과 중국이 그동안 쌓아 온 우정을 갈라놓는 행위”라고 규탄했다. 그는 “현재 경찰 등 한국 방첩 당국에 의한 어떤 조사도 받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복수의 전·현직 공작원은 왕 회장에게서 '특무의 향기'가 난다는 점을 주목했다. 상인보다 관료에 가까운 인상, 정치적인 발언 등을 이유로 꼽았다. 공작원들은 중국 특무요원들에게서 나타나는 주요 행동 패턴과 기법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줬다.
30여 년 동안 군 소속으로 국내외 공작 업무를 다방면으로 수행한 A 씨는 “이번 논란을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A 씨는 “전 세계적으로 중국이 진행하고 있는 정보전과 관련한 실체를 파헤치려는 움직임이 파도처럼 일고 있다”면서 “서울 송파구 중식당을 둘러싼 논란 역시 이 흐름의 일환”이라고 했다.
A 씨는 “이번 논란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선 공산권 국가 특무요원들이 어떤 공작 수법을 쓰는지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공산권 국가는 혁명을 목적으로 존재하는 국가인데, 이 혁명을 가로막는 적은 자본주의 국가다. 결국 자본주의 국가에 침투해 혁명을 완수해야 하는데, 여기에 쓰이는 교과서적인 수법들이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공산권 공작원들이 자본주의 국가에 침투해 정보전을 펼치기 위해선 해당 국가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한다. 스며드는 과정에서 필요한 건 결국 ‘자본’이다. 공금을 활용해 식당을 오픈하는 것이 일반적 방식이긴 하다. 전 세계적으로 점조직처럼 퍼진 식당들 사이 정보를 하나로 연결하면 거대한 정보 클라우드가 완성된다. 무협지에 빈번히 등장하는 정보 전문 문파인 ‘개방’처럼 점조직 방식으로 정보 수집에 나서는 셈이다. 레스토랑을 거점으로 자국인이 ‘딴짓’을 하지 않는지 감시하는 것 또한 주요 임무다. 북한이 전 세계에 퍼진 북한 식당에 보위부 요원들을 파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A 씨는 “공작원들이 교과서적으로 배우는 공작 기법 중 ‘로미오 기법’이라는 것도 있다”면서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미인계’와 비슷한 수법”이라고 했다. 그는 “실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소련군이 베를린에 있는 카페에 ‘블랙요원’을 여종업원으로 침투시켜 정보전을 펼친 사례가 있다”면서 “공산권 국가에서 가장 애용하는 공작 방법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이어 A 씨는 “사실 업계 종사자들에게도 공산권 국가들의 정보 비밀 거점과 일반 식당을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다”면서 “업자(공작원)들은 이런 특징을 구분할 때 그 가게의 사장 혹은 지배인을 가장 먼저 눈여겨본다”고 했다.
A 씨는 “과거 경험에 비춰 본다면 일반적인 식당 사장들은 주로 음식 혹은 매출에 초점을 맞춘다”면서 “공작 거점으로 활용되는 식당 사장들의 경우엔 시스템, 사회 체계, 국제 정세 등 장사꾼보다는 관료에게 어울리는 키워드에 관심이 많았다. 외형 역시 장사꾼보다 관료에 가까운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A 씨는 “이번 논란의 핵심 인물인 왕 회장의 행동과 발언에서도 관료적인 특성이 드러나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춰봤다”면서 “개인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지만, 하나 말할 수 있는 것은 ‘장사꾼’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꼈다는 점”이라는 소회를 밝혔다.
해외에서 블랙요원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는 전직 공작원 B 씨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왕 회장을 분석했다. B 씨는 “동네에 고급 중식당을 운영하는 사장님에게 뜬금없이 ‘비밀경찰 운영 여부’를 묻는다고 가정해보자”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물으면 통상적인 중화권 출신 중식당 사장님들은 ‘우리집 자장면이 맛없다는 거라면 대답을 하겠는데, 비밀경찰이라니 무슨 소리냐’ 이런 대답을 하지 않겠느냐. 그런데 왕 회장의 경우엔 ‘친미세력의 조종’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의혹을 부인했다. 의혹이 불거진 경위 자체를 공작의 개념으로 넘겼다. 상당히 정치적인 단어 선택이다. 일반적인 중식당 사장님들에게선 쉽게 나올 수 없는 말일 뿐 아니라, 어느 정도 배짱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뉘앙스다.”
B 씨는 국적을 불문하고 공작원들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특징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특무, 혹은 공작원이라 함은 ‘간첩’과 같은 뜻”이라면서 “해외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공작원들은 모두 본국에 정보를 수혈하기 위해 파견된 이들”이라고 했다. B 씨는 “간첩이 본인이 간첩이라고 시인하는 경우는 없다”면서 “결정적인 물증이 나오지 않는다면 간첩죄를 적용할 여지도 없다”고 했다.
B 씨는 “특무파트 중 블랙요원의 경우엔 꼬리를 잡는 난이도가 훨씬 높은 축에 속하는데, 완벽한 민간인 신분으로 공작을 수행하기 때문”이라면서 “정치적인 당적이나 행정상 관료 관련 신분이 일체 없는 경우엔 의심되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 여기에 외교적인 이슈도 불거질 수 있는 까닭에 당사 당국 간 신중한 접근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복수의 공작원 출신 인사들은 ‘중국이나 북한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의 특무 및 공작 관련 사항을 이해하려면 공작을 하는 본질적 이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인사는 A 씨와 마찬가지로 “공산권 국가들은 혁명을 목표로 존재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공산권 혁명 모토는 이렇다. ‘전 세계 노동자여 일어나라. 자본주의 타도.’ 중국을 비롯한 모든 공산권 국가가 이런 모토를 바탕으로 혁명을 완수하려는 궁극적 목적을 갖고 있다. 일부 자본주의 국가에선 공산주의를 퍼뜨리는 것이 불법이기 때문에 공산권 정부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흑색선전이 펼쳐진다. 특무의 영역이다. 이 과정에서 현장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바로 흑색, ‘블랙요원’들이다.”
이 인사는 “중국에도 통일전선부가 있다”면서 “여기서 말하는 통일은 우리가 흔히 인식하고 있는 남북통일이나 이런 것이 아니라 전 세계를 공산주의 혁명을 기반으로 통일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통일전선부 산하 공작에서 중국 당국에 위협이 되는 자국민 관련 첩보가 수집되면 안전부 등 담당부서가 직접 나서 리스크를 해소하려 한다. 이게 중국 당국의 기본적인 프로세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전직 공작원은 “이번 비밀경찰 의혹을 공작 개념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공안 개념으로 볼 것인지 여부에 대한 미스터리가 먼저 풀려야 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그는 “공작 활동이었다면 주요 핵심 정보를 중국 본국으로 전달했을 것이고, 공안 활동이었다면 특정 사람에 대한 정보 혹은 신병을 중국 본국으로 전달했을 것”이라면서 “둘 중 어떤 부분에서라도 스모킹건을 포착하는 경우 굉장히 큰 파장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B 씨는 “이번 비밀경찰 의혹 사건의 경우 뚜렷한 물증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나라의 비밀 문건이나, 자체적으로 수집한 자료 중 국내 안보에 위협이 되는 문건, 중국 당국의 지령이 담긴 문건 등 유의미한 물증이 나오지 않는 이상 중식당 사장을 둘러싼 의혹을 완전하게 해소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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