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쌍방울 등 수사 인사로 흐름 끊길까 우려…헌재의 검수완박법 판단 고려해 시기 조절 가능성
하지만 지난 12월 중순부터 ‘2023년 초 인사설’이 자취를 감췄다. 정확히는 ‘인사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직접 나서 “인사는 없다”고 못을 박았기 때문이었다. 인사 필요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현재 서울중앙지검·서울남부지검·수원지검 등에서 이뤄지고 있는 주요 수사들에 대한 성과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인사를 하게 될 경우 ‘수사 동력’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원석 총장은 실제로 “인사를 앞두면 수사검사들의 마음이 뜰 수 있다”며 현재 수사 속도와 성과에 ‘만족한다’는 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인사 필요한 이유 많았지만
검찰 안팎에서는 설 전후로 인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점쳐졌다. 검찰 인사의 명분은 충분했다. 공석인 대검 차장검사(고검장급), 서울고검장, 대전고검장, 법무연수원장(고검장급) 등에 대한 인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검찰총장을 놓고 후보군이었던 김후곤 서울고검장 등 3명이 모두 사의를 표명했고, 이원석 총장이 대검 차장에서 총장으로 승진하면서 네 자리가 비게 됐다. 직무대리 형식으로 운영할 수 있었지만, 고검장이 지역 일선에서 챙기는 역할을 고려할 때 ‘비워둘 수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검찰의 역할 변화 및 확대도 추진 중이었다. 전세사기, 자본시장 범죄, 스토킹 범죄, 마약, 보이스피싱 등 민생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분야 수사를 강화하기 위해 행정안전부와 직제개편도 논의 중이다.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를 확대하고, 정식개편 협의를 통해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서울남부지검 설치) 상설화하는 한편, 대검 직제개편 등도 거론 중이었다.
#“인사 앞두면 마음 떠서 안 돼”
하지만 이원석 검찰총장은 최근 주변에 “인사를 앞두고 있으면 수사검사들이 마음이 뜬다”며 인사를 연초가 아니라, 상반기 중으로 미룰 가능성을 시사했다고 한다.
이 같은 판단 배경에는 서울중앙지검(대장동 특혜 의혹), 수원지검(쌍방울그룹 관련 비리 의혹), 서울남부지검(테라·루나 사건) 등 주요 검찰청의 사건들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판단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수원지검이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을 놓치는 등 부족한 지점이 있었지만, 그 후 수사로 성과를 잘 내고 있는 등 대부분의 검찰청에서 만족할 만한 수사 흐름이 진행되고 있다는 전반적인 판단”이라며 “이런 부분들이 반영돼 ‘잘하고 있는 수사팀을 괜히 인사로 들쑤실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 아니겠냐”고 설명했다.
특수 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인사가 2~3개월 앞으로만 다가오면 수사팀은 새로운 의혹이나 사건으로 수사를 확대하지 않고 기존 수사를 마무리하면서 위의 눈치를 보는 경향이 있다. 수사를 막 시작해 놓고 후임자에게 주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인사 여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미리 주는 것만으로도 수사팀이 ‘고냐 스톱이냐’를 결정할 때 다른 판단이 나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인 나오자 박차 가해지는 수사들
수사 시간을 확보한 수사팀들도 멈추지 않고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장동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사수1부(부장검사 엄희준)은 범죄수익 275억 원을 은닉한 혐의로 김만배 씨의 측근 2명(화천대유 공동대표 이 아무개 씨, 쌍방울 부회장 출신 최 아무개 씨)을 구속 기소했다. 두 사람은 김만배 씨와 공모해 검찰의 대장동 수사를 대비해 2021년 11월부터 2022년 11월까지 범죄수익 245억 원을 수표로 인출해 숨겨둔 혐의다.
검찰은 빠르면 지난 연말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소환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수사팀은 대신 핵심 수사 대상자인 김만배 씨의 여죄 수사로 칼날의 방향을 잠시 바꿨다. 이재명 대표 소환을 성급하게 진행하기보다는, 신중하게 김 씨 관련 의혹을 파헤친 뒤 수사 협조를 받아내는 쪽으로 수사 전략을 수정했다는 평이 나왔다.
수원지검 성남지청 형사3부(유민종 부장검사)도 지난 12월 이 대표 측에 출석을 통보하는 등 ‘기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수사 중인 성남 FC 후원금 의혹 사건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 성남 FC 구단주로 있으면서 네이버·두산건설 등 기업들로부터 170억여 원의 후원금을 유치하고, 그 대가로 기업에 건축 인허가나 토지 용도 변경 등 편의를 제공했다는 게 골자다. 늦어도 1월 중에는 소환 일정을 조율하고 실제 조사까지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미 검찰 안에서는 기소로 가닥이 잡혔다는 후문이다.
쌍방울그룹을 둘러싼 수원지검의 수사도 현재 진행형이다. 수원지검 형사6부(김영남 부장검사)는 최근 쌍방울그룹의 자금흐름 전반을 살펴보고 있다. 쌍방울그룹과 CB(전환사채) 거래가 있었거나, 기업 인수·피인수 등 돈거래가 있었던 곳 모두를 확인 중이다. 쌍방울그룹의 대북 거래에 쓰인 자금의 출처와 이 과정에서 경기도청(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개입 여부를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쌍방울의 대북송금 의혹 수사를 쌍방울과 사업적으로 밀접한 기업인 KH그룹에까지 확대했다. 수사 시간을 확보한 만큼, 모두 살펴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부장검사 신준호)와 수원지검 형사6부는 12월 27일 KH그룹의 알펜시아 입찰 과정의 의혹을 수사하기 위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전방위적인 압수수색이었다. KH그룹 본사와 관계사, 최문순 전 강원도지사 주거지와 강원도개발공사 등 20여 곳에 대해 합동 압수수색이 진행됐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는 최문순 당시 강원도지사가 재직 당시 알펜시아의 매각 입찰 전 KH를 낙찰자로 사전 선정하는 데 관여했다고 보고 피의자로 입건했다.
앞선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인사를 앞두고 있으면 압수수색을 하지 않는 것이 보편적”이라며 “KH그룹을 놓고 대대적인 수사가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지금 수사팀으로 4개월 이상은 더 갈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고 풀이했다.
#변수는 헌재 판단? 4월 안팎 인사 가능성도
하지만 마냥 인사를 미룰 수만도 없다. 공석인 대검찰청 차장검사 자리를 두고, 대검찰청 보고 체계가 흔들린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수개월 넘게 특수 수사가 진행 중인 곳에서는 강도 높은 업무량 때문에 피로를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특히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 권한쟁의 심판 사건의 선고는 후속 대응이 필요한 핵심 변수다. 헌재의 결론에 맞춰 검찰도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
헌재의 판단은 재판관 임기 등을 고려할 때 3월 이전에 나올 가능성이 점쳐진다. 재판관 9인 가운데 이선애 재판관(3월), 이석태 재판관(4월)의 임기가 만료된다. 3월 이후 결정을 하려면, 후임 재판관의 사건 판단이 필요하다. 최소 2개월, 길게는 4~5개월이 더 늦어지게 된다. 때문에 헌재가 3월 중 판단을 내놓는다면 이에 맞춰 대검찰청과 법무부 역시 4~5월 중 ‘조직개편 및 인사안’을 내놓는 시나리오가 거론되는 이유다.
차장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원포인트 인사로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인사를 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지금은 전체적인 인사를 통해 검찰 전체에 ‘나아갈 방향에 대한 시그널’을 주는 게 필요한 시기”라며 “법무부와 대검찰청이 검수완박 판단 등까지 고려해 인사 시기를 조율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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