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서 부풀린 경력 홍보하며 의뢰인 모집…2019년 수차례 민원에도 국방부 병무청 등 ‘뒷짐’
온라인에서 사실상 드러내 놓고 병역 브로커로 활동한 구 아무개 씨. 그는 자신을 ‘병역판정, 재검, 현부심(현역 복무 부적합심의), 생감면(생계유지 곤란 사유 병역감면) 전문가’라고 홍보했다. 네이버 지식인과 같은 열린 공간에서도 영업 활동을 이어갔다. 심지어 5급 전시근로역 판정을 받은 의뢰인의 신체검사 결과지 사진까지 올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왜 국방부와 병무청은 그를 방치한 것일까.
#거짓말로 부풀려진 구 씨의 실체
2022년 12월 21일 서울남부지검 형사5부(부장 박은혜)는 병역 브로커 구 씨를 구속기소했다. 구 씨의 주된 수법은 허위 뇌전증 진단서를 발급받아 병역을 면탈하는 것이었다. 과거에는 간질로 불렸던 뇌전증은 뇌 신경세포가 일시적으로 과도하게 흥분하면서 발작하는 신경계 질환이다.
애초 구 씨는 해경 출신으로 2008년 해경을 떠나 공군에서 일하다 군 전문 행정사로 활동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구 씨는 업계 관계자들과 의뢰인들에게 자신을 ‘공군본부 법무실’에서 근무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공군 관계자는 TV조선 인터뷰에서 “구 씨가 공군본부에서 근무한 내역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6·25 국군포로가족회’ 부대표를 맡고 있다는 발언은 사실로 확인됐다. 그렇지만 사실상 사기로 부대표가 됐던 것으로 현재는 해임됐다. 구 씨는 2021년 3월 6·25 국군포로가족회를 찾아가 자신이 국방부와 직접 관계가 있다고 소개하며 “국군포로 자녀들에게 무공훈장 추서를 추진하겠다”며 단체 직함을 요구해 부대표이사 직함을 얻어 냈다.
그런데 약속한 훈장 수여는 이뤄지지 않았다. 6·25 국군포로가족회 측에서 항의하자 구 씨는 국방부 소속 장교, 국방부 산하 ‘무공훈장 찾아주기 조사단’ 등과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은 내역을 제시했다. 그렇지만 모두 가짜 이메일로 구 씨가 접촉했다는 국방부 장교는 구 씨를 모른다는 입장이다. 결국 거짓 제안으로 부대표 직함을 받은 뒤 가짜 활동 내역으로 그 자리를 유지해온 셈이다.
구 씨에게는 6·25 국군포로가족회 부대표 직함이 왜 필요했을까. 당연히 1차 목표는 자신의 블로그 등에 직함을 올려 홍보에 활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노림수가 있었다. 6·25 국군포로가족회 부대표 활동을 근거로 그해 한 소비자단체에서 주관한 우수 전문인 시상식에서 ‘올해의 행정사’ 부문 수상자가 된 것.
6·25 국군포로가족회 부대표 직함에 더해진 ‘올해의 행정사’ 수상 이력은 그동안 국방부와 병무청, 국가보훈처 등 유관기관과 협업해왔다는 구 씨의 주장에 신뢰도를 더해줬다. 검찰은 구 씨의 이런 행태가 병역 상담 의뢰인들에게 자신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함이라고 보고 있다. 결국 6·25 국군포로가족회 손명화 대표는 1월 5일 구 씨를 사기와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또한 전국 각지에 15개 지사를 갖춰 영업망이 탄탄하다고 광고했는데 검찰 확인 결과 행정사 자격이 없는 이들이 대거 지사장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국방부·병무청·경찰은 왜 안 움직였나
구 씨의 존재는 군 전문 행정사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일반적인 군 전문 행정사는 질병을 가진 의뢰인이 군 입대 후 병영 생활이 가능한지 여부 등을 문의하면 병역법을 근거로 설명해주는 일을 한다. 그런데 구 씨는 병역법을 근거로 한 설명보다는 자신에게 돈을 주면 병역 면탈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영업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검찰 수사 역시 구 씨의 불법 병역 면탈 알선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여긴 군 전문 행정사들이 구 씨의 상담 녹취록 등 각종 증거 자료를 채증한 뒤 수사 기관에 넘기면서 시작됐다.
구 씨가 온라인에서 대놓고 병역 면탈을 홍보해 왔으며 군 전문 행정사들 사이에서도 구 씨의 존재와 불법 행위가 유명했던 터라 언제라도 병역 비리 사건이 터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미 수년 전에 터졌어야 할 구 씨 주도 병역 비리 사건은 상당히 늦게 수면 위로 올라왔다. 관계기관이 구 씨를 사실상 방치했기 때문이다. 국민일보는 2019년 1월부터 4월 사이 국방부, 병무청, 경찰청 등에 연이어 구 씨 관련 민원과 신고가 제기됐지만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고 단독 보도했다.
2019년 1월 국방부에 구 씨의 불법 병역 면탈 알선과 관련된 민원이 제기됐지만 국방부는 “법적인 문제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9년 3월에는 일주일 간격으로 두 번이나 구 씨에 대한 민원이 병무청에 접수됐다. 구 씨가 포털 사이트 등에 올린 게시글과 구 씨의 행정사 등록증 사진 등을 첨부한 구체적인 민원이었지만 병무청은 “문제 게시물을 삭제 요청하고 계도하겠다”는 입장만 내놨다.
한 달 뒤인 4월에는 경찰에 구 씨 관련 신고가 접수됐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구 씨가 신고자 신원을 알아내 접촉을 시도했고 이에 놀란 신고자는 바로 신고를 취하했다.
국방부나 병무청, 또는 경찰이 보다 신경 써서 민원이나 신고를 챙겼다면 이미 2019년 상반기에 터졌어야 할 병역 브로커 구 씨 주도 병역 비리 사건이 2022년 12월에서야 터졌고 그 3년 사이 구 씨를 통해 병역 면탈을 받은 의뢰인도 계속 늘어 현재 70~100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뒤늦은 수사로 수사 대상이 많아지면서 병무청과 함께 ‘병역면탈합동수사팀’을 운영하며 이번 수사를 진행 중인 서울남부지검은 최근 수사 검사와 수사관을 2배 늘려야 했다.
이제 관심사는 구 씨를 통해 허위 뇌전증으로 병역 면탈을 받은 의뢰인들에 대한 수사다. 그동안 구 씨는 의뢰인들을 만나 아이돌 가수와 유명 래퍼 등 연예인과 유명 프로 스포츠 선수 등의 이름을 대며 자신을 통해 병역 면탈을 받았다고 홍보했다고 한다. 또한 구 씨가 의뢰인들에게 보여준 서류에는 고위 공직자와 법조인의 자녀도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유명인 의뢰인은 프로배구팀 오케이금융그룹 소속 조재성 선수(27)로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혐의 내용을 인정했다.
이 대목에서 두 가지 가능성이 제기되는데 서로 반대 방향의 가능성이다. 우선 허위 경력 등 부풀려진 구 씨의 홍보 내용으로 볼 때 여러 유명인의 병역 면탈을 도왔다는 내용 역시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
반면 실제로 구 씨가 연예인과 스포츠 선수는 물론이고 고위 공직자와 법조인 자녀의 병역 면탈을 도왔을 수도 있다. 이후 의뢰인과 의뢰인 부모가 구 씨의 탄탄한 뒷배가 돼 국방부와 병무청, 경찰 등이 2019년에 별다른 조사를 진행하지 않도록 힘을 써 줬을 수 있다. 아무래도 자녀의 병역 비리는 부모인 고위 공직자와 법조인에게 더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병역면탈합동수사팀’의 수사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전동선 프리랜서
-
‘독도’ 노래한 엔믹스에 일본서 역대급 반발…일본서 반대 청원 4만건 돌파
온라인 기사 ( 2024.11.18 09:45 )
-
동덕여대 공학 전환 사태에 동문들 “훼손 용납 안 돼” vs “근간 흔든다”
온라인 기사 ( 2024.11.17 16:06 )
-
한국 조선은 미국 해군 ‘구원병’ 될 수 있을까
온라인 기사 ( 2024.11.19 16: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