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 강했던 권성동 ‘전격 불출마’ 해석 분분…김기현과 ‘양강’ 가능성 나경원 직함 두 개 들고 고심중
맏형이 사라지자 정가에선 ‘윤핵관’까진 아니지만 ‘범친윤’으로 꼽히는 4선 출신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에게로 이목이 집중된다. 나경원 부위원장은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명확한 선두를 형성하고 있다. 출마 선언이 임박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이 경우 국민의힘 전대 초반 판세는 권성동 의원 중도하차로 친윤 단일 후보로 올라선 김기현 의원, 범친윤을 표방하지만 높은 인지도를 주무기로 하는 나경원 전 의원 간 양강 구도로 흘러갈 전망이다.
#친윤 맏형은 왜 떠났을까
당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할 것으로 알려졌던 권성동 의원이 1월 5일 3·8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권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 최측근이 지도부에 입성할 경우 당의 운영 및 총선 공천에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이라는 당원의 우려와 여론을 기꺼이 수용하기로 했다”고 불출마 이유를 설명했다. “측근이 설치면 안 된다”는 주변 의견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권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것에 대해 우선 자의에 의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당대표 선거 지지율 부진에 따른 중도 포기라는 것이다. 최근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출마 선언을 하지 않은 까닭이라고 이유를 달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낮은 수치라는 게 정치권의 한 목소리였다.
저조한 여론조사 성적표가 잇따라 날아들자 권 의원 출사표를 두고 “정말 윤심에 의한 선택이 맞느냐”는 윤심 오판설과 “설마 윤핵관이 어이없는 선택을 했겠느냐”는 윤심 잠복설이 맞서며 의견이 분분했다. 그의 출마를 희화화하고 조롱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의 불출마에 윤심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적지 않다. 권 의원은 최근 발언대에 설 때마다 윤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하며 당대표 출마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었다. 권 의원은 2022년 12월 31일 방송된 쿠팡플레이 ‘SNL코리아3’의 ‘주기자가 간다’에 출연, 윤 대통령과의 거리만 두고 보면 자신이 원톱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질문자로 나선 주현영 기자가 “윤핵관 4인방 권성동 장제원 이철규 윤한홍 의원 중 누가 일짱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내가 일짱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4선이고 장제원 의원이 3선, 나머지 의원이 재선”이라고 답했다. 이에 질문자가 ‘완전 대장이시네요’라고 호응하자 권 의원은 “그 의미는 윤석열 정부와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것”이라면서 윤 대통령과 자신이 지근거리에 있음을 강조했다.
정치권 경험이 많은 이들도 권 의원이 친윤 유일 후보가 맞다는 해석을 냈고, 그를 중심으로 한 단일화를 점쳤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2022년 12월 21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현재로 보면 윤석열 대통령이 가장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은 권성동 전 원내대표다. 그래서 권 전 대표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권 의원은 열성 당원이 가장 많이 있는 대구·경북(TK) 집중 공략을 통해 낮은 지지율을 뒤엎는 대반전을 노려왔다. TK에는 ‘반윤’으로 꼽히는 유승민 전 의원을 제외하고는 당권주자가 없고,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권 의원은 1월 2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에서 열린 대구·경북 신년교례회에 참석해 “내가 원조 TK”라며 “우리 조상이 540년 전에 안동에서 강릉으로 이주했다. 이만하면 원조 TK를 자부해도 될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부분이 부족했다고 느꼈는지 “처가가 구미 선산”이라고 소개하며 “이 정도 되면 TK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500여 년 전 조상 얘기까지 꺼내며 분투했던 권 의원이 갑자기 의지를 꺾은 것은 ‘보이지 않는 큰 힘’이 작용한 것으로 정치권에서 보고 있다. 김기현·장제원 의원 간 ‘김장연대’가 권 의원과 충돌하는 모양새를 보이자 윤심의 분열이라는 해석이 확산됐는데, 이에 교통정리 필요성이 대두됐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권성동 의원에 장제원 의원과 손을 잡은 김기현 의원까지 나오면서 누가 진짜 윤심 후보인지 헷갈리는 상황이 만들어졌다”며 “자칫하다가는 윤심 후보가 모두 떨어지고 어부지리 당선자가 나올 수 있어 주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였고 결국 교통정리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장연대로 힘 쏠릴까
정치권에서는 권성동 의원이 불출마하면서 분명하게 적시한 ‘새 당대표 자격 지침’에 주목하고 있다. 이 지침을 보면 윤심이 보이고, 그 종착점에는 김기현 의원이 서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게 당내 해석이다.
권 의원은 차기 당 대표와 관련해 “대권 욕심이 당의 이익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 차기 대통령 출마에만 몰두하는 사람이 당 대표를 맡으면, 필연적으로 계파를 형성할 것”이라며 당권·대권 분리를 요구했다. 이어 “차기 당대표는 강력한 대야 투쟁을 통해 정국의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며 “대야 투쟁을 통해 성과를 만들고, 그 성과를 통해 총선에서 유리한 지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민주당의 언어와 논리를 가져와서 내부 투쟁의 도구로 썼던 습관부터 버려야 한다”며 “우리 당의 정강·정책 곳곳에 박혀있는 ‘민주당 흉내 내기’부터 걷어내야 한다. ‘따뜻한 보수’ 같은 유약한 언어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을 짚어보면 윤심의 잣대에 놓고 볼 때 대선에 뜻이 있는 주자들은 모조리 불합격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상위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안철수 의원, 나경원 부위원장은 안 되고, 당권·대권 분리론을 주장해온 김기현 의원만 괄호 안에 들어가는 셈이다. ‘따뜻한 보수’라는 말을 쓴 유승민 전 의원도 비록 각종 여론조사에서 강세를 보이지만 무자격 후보로 분류된다.
윤심의 김기현 의원 낙점을 뒷받침하는 다른 정황도 나타났다. 윤석열 대통령 멘토로 불려온 신평 변호사가 김 의원 후원회장으로 나선 것이다. 신 변호사는 1월 3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김기현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자의 후원회장을 맡은 이유’라는 글을 통해 “총선을 위해서 단합해야 하고, 그 단합은 당과 대통령의 원만한 소통을 전제한다”며 “그러자면 당대표는 ‘총선의 원만한 관리자’여야 한다. 그런 면에서 김 후보가 가장 적임자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 변호사는 “입법 행정 사법의 세 분야를 모두 거친 사람으로, 반듯한 인품을 가졌다. 복잡한 것을 이해하는 능력이 탁월하여 그의 언변은 항상 논리적이다. 이런 사람은 합리적 사고의 틀 속에서 뛰어난 관리자의 면모를 가진다”며 김 의원을 한껏 띄웠다.
#나 부위원장의 직함이 '발목'?
권성동 의원 불출마로 국민의힘 당권주자들 가운데 안철수 의원과 함께 인지도가 가장 높다고 평가받는 나경원 부위원장에 다음 시선이 쏠리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인지도를 강력한 무기로 갖고 있는 나 부위원장이 당권 도전에 나설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2021년 6월 전당대회에서도 민심에서는 밀렸지만 당원 투표에서는 거뜬하게 1위를 차지, 나 부위원장으로서는 당심 100%로 바뀐 이번 전대를 호기로 볼 수밖에 없다.
당시 전대에서 나 부위원장이 받아 든 세부 성적표도 주목받는다. 전국에서 당원 비율이 가장 높고 투표 성향도 강한 TK 지역에서 해당 지역구 의원 주호영 현 원내대표를 3등으로 밀어내고 2위를 차지했다. 나 부위원장이 서울 출신이고 정치도 서울에서만 해왔지만, TK를 비롯한 국민의힘 핵심 지지층에서 높은 득표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번 전대 주자들 가운데 이준석 전 대표처럼 예상 밖 폭풍을 몰고 올 만한 인지도 높은 신예 기대주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나 부위원장 의지를 더욱 키우는 대목이다.
그러나 나 부위원장이 갖고 있는 직함이 그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는 윤 대통령으로부터 장관급 임명장을 받아들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후환경대사 등 두 가지 직책이다.
나 부위원장도 이 부분이 부담으로 작용한 듯 오랫동안 해당 직책에 대한 변호를 차근차근 해왔다. 나라 전체로 볼 때 아주 중요한 직책이지만 상근직이 아니어서 당권 도전을 막는 족쇄가 안 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언제든지 자신의 선거를 위해 뛰쳐나갈 사람을 국가 주요 어젠다(의제)인 저출산과 기후 최고 책임자로 발탁했겠느냐는 반박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나 부위원장에게 중요한 직책을 두 가지나 맡긴 것은 당권보다는 정부 정책에 집중해달라는 뜻이라는 분석이다.
노동·연금·교육 개혁에 대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미래 대비를 강조하는 윤 대통령이 저출산이나 기후변화 조언자로 정치적 무게감이 큰 나 부위원장을 선택한 것 자체가 국민들에 ‘반드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메시지 발신인데, 나 부위원장이 이를 잘 모른다는 당내 의견도 많다. 때문에 나 부위원장이 직책을 내려놓고 당권주자로 나서면 후폭풍이 클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나 부위원장이 여러 데이터를 보면 자신의 지지율이 높다는 것을 잘 알 텐데 빠른 결심을 못하고 망설이는 것도 이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나라를 위해 일을 해보자”는 대통령 뜻을 저버리고 권력욕을 위해 움직였다는 비난의 화살을 최소화할 명분을 축적하기 위한 사전정지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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