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선택권 침해 비판에도 법적으론 문제 없어…현대·KB국민 “직원들 주로 이용, 할인 등 혜택 제공”
#카드사 건물 입점 커피숍, 자사 카드만 사용해야?
서울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인근에 있는 현대카드 본관 1층 폴바셋. 결제 단계에서 직원이 현대카드나 현금으로만 결제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현금으로 결제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지점은 폴바셋 본사 직영점이다. 얼마 후 5호선 광화문역 인근에 있는 KB국민카드 본사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KB국민카드 본사 건물에는 음료 한 잔에 2000원 남짓인 상대적으로 저렴한 테이크아웃 카페가 입점해 있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한 후 소지한 카드를 내밀었으나 결제 단계에서 직원이 카드를 되돌려주며 KB국민카드만 이용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현대카드와 KB국민카드의 방침은 다른 카드사와 비교가 된다. 지난 1월 5일 2호선 을지로입구역 근처에 있는 하나금융그룹 명동사옥을 찾았다. 하나금융그룹 명동사옥은 하나은행, 하나증권 등 건물 전체에 하나금융그룹 계열사가 입주해 있다. 건물 1층에 입점한 프랜차이즈 커피숍 커피빈은 타사 카드로도 결제가 가능했다. 대신 하나카드 이용 시 15%의 할인을 제공하고 있었다.
3호선 경복궁역과 2호선 을지로3가역 근처 건물에 각각 위치한 우리카드와 신한카드의 경우 다른 기업들과 건물을 같이 쓰고 있다. 우리카드와 신한카드 건물 1층에 입점한 폴바셋은 타사 카드 사용이 가능했다. 대신 해당 카드사를 비롯한 입주사 직원에게 따로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었다. 롯데카드의 경우 본사 건물(광화문 사옥) 1층에 복수의 카페가 입점해 있었다. 18~27층까지 롯데카드가 입주해 있고 신한금융투자 등 다른 기업들도 이 건물을 사용한다. 입점한 카페 중 한 곳 역시 입주사 직원임을 인증할 경우 할인을 해주고 있다. 카페 직원은 “처음 입점할 때부터 할인된 가격으로 음료를 제공하기로 계약을 맺었다”고 설명했다.
NH농협카드가 입주한 5호선 서대문역 인근 D타워의 경우에도 지하 1층에 입점한 카페가 있다. 직원에게 문의하니 농협카드 외에도 결제가 가능하다는 답을 받았다. 삼성카드 본사의 경우 사옥 1층에 입점한 카페가 없다.
해당 카드사의 카드만 받는 것에 대해 현대카드 한 관계자는 “직원들이 주로 이용하는 시설이라서 그렇게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KB국민카드 한 관계자 또한 “사내 직원 전용 카페라는 목적을 두고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가격이 일반 커피의 절반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특정 신용카드 사용 강제…문제는 없나
일부 카드사 입점 커피숍이 입주 직원을 위한 복지 차원으로 커피숍을 운영한다고 해도 다른 카드사의 카드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소비자 불편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대부분의 소비자가 카드로 결제하는 시대인데 자사 카드를 이용할 경우 입점한 커피숍에서 할인을 해주는 거면 몰라도 결제 자체를 막아놓는 건 소비자 불편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선택의 권리까지 제한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행법 위반 사항은 아니다. 신용카드 가맹점이 카드 결제를 거부할 수 없도록 강제하고 있는 현행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독점 계약에 대한 규제는 없는 탓이다. 다만 타 카드사의 결제를 막아 소비자 후생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미국의 창고형 대형 할인마트인 코스트코가 국내에서 논란이 된 적은 있다. 코스트코는 국내 입점 후 줄곧 한 곳의 카드사하고만 계약을 맺어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다. 1999년에는 삼성카드와 계약을 맺었고 계약이 만료되자 2019년부터 현대카드와 10년 독점 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규제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20대 국회의원이던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8년 일명 ‘코스트코 방지법’인 여신전문금융업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회기가 종료되면서 자동으로 폐기됐다. 2021년 5월에는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역시 여신전문금융업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하나의 신용카드업자와 가맹점 계약을 체결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을 추가했다. 제안 이유로는 일부 가맹점이 특정 회사의 신용카드 사용을 강제함에 따라 소비자가 겪게 되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한편에선 카드사 입점 커피숍의 경우 특정 카드 사용 강제가 소비자 선택권을 궁극적으로 침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코스트코와 같은 대형 가맹점과 달리 대규모 수요가 몰리는 것이 아닌 데다 인근의 다른 카페를 이용하는 등 선택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도를 넘는 규제는 가맹점 계약자유 침해라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다. 실제로 2018년 제윤경 의원이 발의한 여전법 개정안이 폐기된 것도 가맹점 계약자유 침해, 할인 등 부가서비스 축소 등의 이유가 제기된 탓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와 관련, 박홍근 민주당 의원실 한 관계자는 “카드사 건물에 입점한 커피숍 같은 경우에는 해당 회사의 사원들이 많이 쓰는 점을 염두에 두고 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며 “다수 소비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코스트코나 애플페이에 비하면 영향력이 미미한 만큼 추후 여전법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소비자의 후생을 고려해 규제 여부를 논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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