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추웠던 2022년 겨울.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벌써 수천 명을 대상으로 구조조정 칼바람 소식이 불어닥친다. 전문가들은 앞다퉈 곧 지금보다 더욱 견디기 힘든 경기 침체가 시작될 것이라며 암울한 전망을 내놓는다.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더 큰 2023년. 정말 우리는 모두 가난해질까.
서민물가의 지표였던 자장면값마저 평균 6000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소비자 물가 상승 지수는 5.1%로 IMF 외환위기 이후 24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팬데믹의 여파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고물가 시대는 서민들에게 더 가혹하다. 소비자의 지갑이 얇아지자 일부 농수산물은 오히려 가격이 폭락해 농어민들이 생산을 포기해버리는 역설이 벌어지기도 한다. 치솟는 물가에 자영업의 마지막 보루였던 노점상마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인플레이션으로부터 무너져가는 사회 곳곳의 약한 고리들. 2023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고물가 시대의 여파는 어느 정도인가.
최미경 중식당 운영자는 "어쩔 수 없이 가격을 1000원씩 올렸어요. 안 올리고 싶었는데 밀가루값이 너무 많이 오르니까. 재료비가 얼마인지 이런 걸 안 봐요. 아예 보고 싶지도 않은 거예요"라고 말했다.
안장남 어민은 "기름값도 비싸죠. 인건비는 인건비대로 올라가죠. 고기 시세가 같이 따라서 올라가 주면 괜찮은데 자꾸 떨어지다 보니까 옛날만큼 잡아서는 지탱하기가 힘들어요. 붙잡고 있다가는 망하게 생겼어요"라고 말했다.
'新 경제중심지'로 불리는 평택 고덕신도시 반도체 공장. 이곳에는 6만 명이 넘는 일용직 건설 근로자들이 동이 트기도 전 하루를 시작한다. 자영업자, 공무원 등 각계각층의 이들이 이곳으로 몰려든 이유는 근로 시간의 제약이 적고 더 많이 일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다.
전라남도 해남에서 자영업을 하던 임상진 씨(45)도 그중 한 명이다. 매일 새벽 4시에 출근해 저녁 8시까지 총 16시간을 일하며 한 달 내리 만근을 찍었다. 근무표가 빼곡하게 채워지는 만큼 어린 두 아이와 함께할 시간은 줄어들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믿음으로 새벽 출근길에 오른다.
본업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워진 A씨. 그는 이른바 '오픈런'이라 알려진 명품구매 대행 줄서기 아르바이트로 부수입을 올린다. 최근에는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부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며 구인시장도 호황을 맞았다. 자정부터 아침까지 백화점 앞에서 추위에 떨며 밤을 꼬박 지샌 A씨가 수중에 얻은 돈은 10여만 원. 손등이 부르터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감사하다고 말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조사에 따르면 본업 외 부업을 뛰는 가장의 수가 5년 만에 41%나 상승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치솟는 물가에 실질임금이 7개월 연속 하락하면서 이전과 같은 벌이로 생계유지도 어려워진 이들은 더 오래 더 많이 일하기 위해 또 다른 직업을 찾아 나선다. 'N잡러'는 더 이상 새로운 문화가 아닌 불가피한 현실, 생존의 문제이다.
팬데믹 이후 매출이 25%가량 급감하며 한계기업으로 분류된 경기도의 한 엔진 제조업체. 24명이었던 직원을 15명으로 감축하고 정책지원자금으로 대출을 받아 버텨왔으나 금리가 오르며 대출금 상환 만기까지 다가와 한 치 앞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27년 업력, 32억 매출을 자랑하던 김해의 한 중공업체는 지난해 9월 회사 담보대출을 갚지 못하고 결국 파산을 선고했다. 갑작스럽게 해고 통보를 받은 직원 모두 이곳에서 10여 년이 훌쩍 넘게 근무한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50대 후반부터 60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서기도 쉽지 않은 한 가장의 아버지들은 밀린 임금과 퇴직금도 정산받지 못한 채 거리로 내몰렸다.
경기 침체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아직도 '진짜 위기는 시작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규모만 53조를 넘는다. 지난 2년여의 팬데믹 시절을 저금리대출로 연명해오던 ‘한계기업’들이 줄도산을 맞는 순간 본격적인 체감 위기를 가져올 고용 한파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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