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 죽을 것 같은 극심한 공포심을 느끼며 두통이나 어지럼증, 구토 등 증상을 보이는 공황장애. 연예인 김장훈, 김하늘, 차태현 등이 과거에 겪은 적이 있다고 고백해 화제가 됐다. 올 3월 말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발표에 의하면 지난해 공황장애 환자는 5만 8551명에 달한다.
일본에서도 직장인의 공황장애가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경제지 <주간다이아몬드>에 따르면, 공황장애를 앓는 직장인은 전체의 5~10%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나 병, 천재지변, 학업이나 일에 대해 장기간 불안이 지속되는 전반성불안장애 등 경증 공황장애 증상을 보이는 이른바 ‘공황장애 예비군’에 해당하는 직장인은 무려 20%다. 5명에 1명꼴인 셈이다. <주간다이아몬드> 보도를 중심으로 일본의 직장인 공황장애 사례를 살펴봤다.
중소기업 40대 부장 A 씨. 평일에는 야근이 많고 주말에는 수험생 아들의 학업을 챙기느라 바쁘다. 지방 출장 전날 집에서 저녁을 먹고 TV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가슴이 벌렁거리고 손발이 저려왔다.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 갔는데 혈압, 심전도, 혈액검사, CT검사는 모두 정상치가 나왔다. 하지만 그 후에도 출장만 앞두면 비슷하게 발작을 했고 급기야 정신과의를 찾아가 공황장애란 진단을 받았다. A 씨는 당분간 출장을 보내지 말아 달라고 회사 측에 양해를 구했다.
공황장애는 불안장애의 일종으로 발작을 동반한다. 명확한 실체가 없는 두려움으로 인해 갑작스런 심장의 두근거림, 발한과 함께 심근경색을 의심할 정도로 심한 가슴통증을 호소한다. 또 천식처럼 숨을 가쁘게 쉬며 어지러워 마치 뇌경색에 걸린 것처럼 걸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밤에는 자다가 꼭 죽을 것만 같아서 쉽사리 잠들지 못하고 아침에는 회사에 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런 증상이 계속되면 도저히 직장에 나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초기 환자는 자기가 겪은 공황장애 증세를 잘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불시에 나타나는 탓에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완벽주의자형 성격은 자신이 가족이나 남들 앞에서 공황장애 증상을 보였다고 말하기를 힘들어 한다.
정신과 전문의 다카시오 오사무는 “자신의 증세와 전후 사정을 의사에게 자세히 설명해 불안을 일으키는 요인을 파악하면 쉽게 안정을 취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A 씨처럼 출장이란 부담요소를 제거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인사 파트 직원이 업무 스트레스로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면 행정이나 재무 파트로 옮기면 나아질 수 있다.
공황장애를 의심해 볼 수 있는 가장 뚜렷한 증상은 혼잡한 출퇴근길을 매우 꺼린다는 점이다. 공황장애 환자들에게 출퇴근 만원전철이나 버스는 기피대상 1호다.
영업부서에서 높은 실적을 올리고 있는 30대 과장 B씨. 어느 날 사장실에서 중역들과 함께 미팅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현기증을 느꼈다.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에 다녀온 후에도 현기증 탓에 어쩔 수 없이 중간에 나와야 했다. 그러다 퇴근길에 전철을 타니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고 한다. 이후 B 씨는 전철이 조금만 붐벼도 무서워서 탈 수가 없게 됐다.
B 씨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직장인 공황장애 환자는 복잡한 대중교통이나 비행기, 엘리베이터, 중대한 미팅이 열리고 있는 회의실 등 자력으로 탈출하거나 나올 수 없는 곳이라고 느끼는 곳에서는 죽거나 미칠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발작을 일으킨다. 즉 폐소공포증을 수반한다. 스스로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고 여기므로 불안해하는 것이다.
이런 공황장애는 대체 왜 일어날까? 정신과 전문의 다카시오에 따르면, 스트레스를 받기 쉬운 환경에 노출되어 있을 때 뇌가 오작동해 위험신호를 잘못 인식하기 때문이다.
과다한 업무로 중압감을 느끼는 직장인은 수면시간이 항상 부족하고 제때 휴식을 취할 수 없어 뇌가 혹사당한다. 특히 자신이 최선을 다한 일로 성장했다고 느낄 수 없거나, 금전적으로 충분히 보상을 받지 못하거나, 미래에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경우에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일을 하면서 성과를 내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도 고위험군이다. 게다가 평소 일에 잘 몰두하고 모든 문제를 자신이 떠안고 알아서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갖고 있다면 더욱 위험하다. 공황장애에 이어 신형 불안장애인 ‘4분의 3증후군’ 에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4분의 3증후군은 말 그대로 일의 4분의 3정도가 완성됐을 때 자신감을 잃고 긴장도 풀려 일을 완수하지 못하고 끝내 무기력해지는 것이다. 이런 일이 서너 번 되풀이 되면 직장생활은 물론 사회생활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공황장애에 걸리면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적절한 상담 및 약물 치료를 받는 게 급선무다. 하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주변 환경을 바꾸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출퇴근 전철을 타기가 너무 힘든 경우 아예 10분 이내로 걸어 다닐 수 있는 지역으로 이사를 한다거나, 이직이 어렵다면 프리랜서로 전향하는 방법 등이다. 일본의 정신과에는 공황장애 증세의 40~50대 중간관리직이 많이 찾아오는데 이들은 치료 도중 아예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 붐비는 전철이 싫다.
□ 최근 최악이라 느낀 사건이 일어났다.
□ 건강상태는 항상 좋아야 한다.
□ 출퇴근 전철에 앉기 위해 종종 이전 역까지 가서 탄다.
□ 기차나 자동차, 버스가 빨리 달리면 왠지 무섭다.
□ 일할 때는 물론 놀 때도 계획대로 안 되면 짜증이 난다.
□ 전철 안에서 컨디션이 갑자기 나빠진 적이 있다.
□ 특별한 일은 없는데 피곤하고 몸이 개운하지 않다.
□ 성격이 완벽주의자 타입이다.
□ 과거 싫었던 경험이 지금도 머릿속에 뚜렷이 떠오른다.
□ 상상력이 풍부하다.
□ 종종 ‘죽으면 어쩌나’ 하고 생각한다.
□ 뭐든 한번 시작하면 잘 빠지는 타입이다.
□ 어떠한 상황에서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 전철을 타고 문이 닫히면 긴장된다.
결과
1 ~ 5개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6~10개 생활에 지장을 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염려가 된다면 전문의를 만나보자.
11~15개 일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 확률이 꽤 높다. 가급적 빨리 전문의를 찾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