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단체여행객 밀려들자 갑작스런 조치…하루도 안돼 번복해 국내 여행사도 여행객도 진땀
태국 정부는 1월 8일에 돌연 입국 규정을 강화해 1월 9일 오전 8시(현지시각) 도착부터 1월 31일까지 입국 시 코로나19 백신접종을 완료했다는 증명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백신접종 미완료자는 접종 불가 사유가 기재된 영문 의사 소견서나 6개월 이내 코로나19 완치 이력을 증명하는 영문 완치 증명서가 필요했다. 예외적용 대상은 태국 국적자나 환승 승객, 18세 미만뿐이었다.
완치이력이 없는 백신 미접종자라도 태국 도착 시 신속항원검사 등으로 음성 확인을 거쳐 입국할 수 있다고 공지했지만, 9일 오전 국내 일부 항공사에서 태국으로 향하는 미접종자의 탑승을 아예 거절해 혼선이 일었다.
보통 각국의 입국 규정 공지는 시행하기에 앞서 충분한 유예기간이 있고 항공사와 여행사를 비롯해 각 정부 부처가 이에 대응할 시간을 주지만, 이번 태국의 입국 규제 강화 조치는 일요일인 1월 8일 갑작스럽게 공지되고 바로 다음날인 1월 9일부터 시행하도록 해 태국행 여행객은 물론 여행사와 항공사에도 상당한 혼란을 줬다.
대부분의 여행사가 당장 1월 9일 월요일 출발하는 태국 패키지 여행객의 백신접종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느라 전날인 일요일부터 진땀을 뺐다. 또 여행객들은 갑작스럽게 백신접종 증명서 등 관련 서류를 챙기느라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9일 오후에는 대부분의 항공사가 백신 미접종자의 탑승을 허가하기는 했지만 백신 미접종 여행객 입장에서는 태국 입국이 거절될 수도 있다는 불안을 안고 출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9일 이후 태국으로 출발하는 미접종자 가운데에는 어쩔 수 없이 상품을 취소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다수의 대형 여행사와 항공사에 확인해보니 이럴 경우 각 여행사와 항공사마다 취소 관련 수수료 정책도 사내 규정에 따라 각기 달랐다. 한 항공사는 항공사가 탑승거절을 하지 않는 이상, 미접종자의 취소는 입국 서류 불충분으로 간주되어 고객에게 취소 수수료를 물릴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태국 정부가 갑작스럽게 정책을 시행하기는 했지만 항공이 정상적으로 운항하기 때문에 고객의 미탑승에 대한 수수료 부과가 정당하다는 게 해당 항공사의 입장이었다. 해당 항공사의 당일 취소 수수료는 12만 원선이며 출발 3일 이내부터 1일 이전까지는 8만~10만 원선이다. 태국 왕복항공료와 비교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대형 여행사도 비슷한 입장이다. 일단 항공사의 탑승 거절이 없는 상태에서 고객이 취소한다면 고객의 변심으로 간주하고 취소수수료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해당 여행사에 따르면 여행상품의 당일 취소 수수료는 상품가의 50%, 전날 취소 수수료는 30%다. 혹은 항공사에서 탑승을 거절할 경우 항공료는 그대로 돌려주지만 현지에서의 호텔비나 여행경비 등에 대해서는 그대로 취소수수료를 물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이날 오전 태국 방콕행 탑승을 거절당한 한 백신 미접종 승객은 “동행과 휴가를 맞춰 함께 공항에 왔다가 혼자만 출발하지 못했다. 현지 호텔 등에 취소 수수료까지 물어야 해서 비용은 비용대로 나가고 휴가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됐다”며 태국 정부의 갑작스런 정책 시행에 불만을 토로했다.
태국 정부는 중국 등의 경우처럼 본국 귀국 시 코로나19 음성확인서가 필요한 국가나 지역에서 오는 여행자의 경우 1만 달러 이상 코로나19 치료비를 보장하는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결국 아누틴 찬위라꾼 태국 부총리 겸 보건부 장관은 9일 저녁 기자회견에서 “외국 관광객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접종 증명서 제출 의무를 폐지한다”고 하루 만에 입국 강화 조치를 갑작스레 철회하면서 “전 세계에서 백신 접종이 충분히 실시돼 면역이 형성됐다. 미접종자도 별도의 증명 없이 입국할 수 있다”고 밝혔다. 태국 정부가 입국 규제 강화 조치를 시행하기 전 이미 정부 각 부처와의 협의가 이루어진 상태였지만 태국 당국은 관광업계의 반발로 철회한다고 밝혔다. 1만 달러 이상 코로나19 치료비를 보장하는 보험에 가입 의무도 함께 철회했다.
9일 오전 태국에는 중국의 코로나19 봉쇄정책 이후 첫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도착했다. 태국 현지 여행사 관계자는 “중국이 단체 해외여행을 허용하자, 태국 정부가 태국 관광산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인 관광객이지만, 안전장치는 걸고 받기 위해 급하게 입국 규제를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처음엔 중국인을 차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모든 외국인에게 이를 확대 적용했다가 업계의 반발이 심하자 아예 철회한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이어 “중국 등 확진이 심각한 국가나 지역에만 입국 강화 조치를 하면 될 일인데 중국 정부가 이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자 하루 만에 번복했다”고 전했다.
한편 중국 여행사 관계자는 “중국에서는 백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이 많다. 때문에 백신 미접종자의 태국 여행에 이번 조치가 방해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중국인들이 중국산 백신의 효능에 의심을 품고 있기 때문에 백신에 대한 부작용과 접종 후유증에 대한 루머도 많다”며 “그럼에도 중국 당국이 대중의 반발을 염려해 백신 접종을 독려할 뿐 의무화하지는 않고 있어서 당국 발표와는 달리 유효한 백신 접종률은 그리 높지 않다”고 전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중국의 불활성화 백신은 3회 이상 접종해야 효력이 있다고 권고하고 있다.
태국 정부가 갑작스럽게 발표했다가 하루 만에 철회한 입국 규정 때문에 전 세계에서 태국으로 향하는 여행객에게 상당한 피해와 혼란을 준 셈이다. 태국 여행을 계획 중인 여행객 중에는 “백신접종 증명 없이 태국으로 들어오는 중국인 때문에 태국으로 여행 가기 불안하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음식점이나 쇼핑센터 등에서 중국인과 접촉하게 될 경우 코로나19 변이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태국 가족여행을 예약한 한 여행객은 “아이들이 취학 전이라 코로나19 백신을 맞지 않았는데, 혹시 여행 중에 중국인과 접촉하게 될까봐 걱정”이라며 “여행지를 바꿔야 할지 고민”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한편 정기석 코로나19 특별대응단장 겸 국가감염병위기대응자문위원장은 9일 “중국은 현재 2022년 12월에 시작된 유행이 정점을 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 내 유행 변이는 한국에서 우세종인 BA.5 계통이 95%로 BA.4/5 기반 개량 백신 접종으로 충분히 대응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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