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는 제사는 물론 선물 및 가족끼리 음복하는 술로 이용된다. 음복은 왜 하는 것일까? 그 의미를 생각하면 간단하다. 바로 마실 음(飮)에 복 복(福). 복을 마신다는 뜻이다. 복을 받는 데는 남녀노소 가릴 수 없다. 그래서 음복은 어린아이부터 마시게 하는 특징이 있다.
설날에 특별히 마시는 술도 있는데 바로 도소주(屠蘇酒)다. 이름만 들으면 얼핏 소주의 이름과 같다. 하지만 한자를 풀어보면 무시무시한 뜻이 있다. 바로 잡을 도(屠), 사악할 소(蘇), 술 주(酒)로 사악한 존재를 도륙 낸다는 술이다. 무엇이 가장 사악한 존재일까? 지금도 흔히 쓰는 ‘학을 뗐다’ ‘염병할 놈’이라고 불린 바로 전염병이다. 이 전염병을 막기 위해 새해 첫날인 설에 사악한 것을 도륙 낸다는 도소주를 마셨다.
도소주는 어떻게 만들어 마실까? 맑은술에 오두거피, 대황, 거목, 도라지, 호장근 등 열 가지 약재를 배주머니에 넣고 끓여 마신다. 그래서 동의보감에는 이 술에 대해 돌림병을 물리쳐 주는 술이라고 기록돼 있다. 끓이는 과정을 통해 알코올 도수를 낮춰 모두가 함께 마셨다. 그래서 전염병에 가장 취약한 어린아이부터 마셨던 것으로 생각된다.
도소주를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쉽다. 전통 맑은술을 구입해 약재를 넣고 가볍게 끓이면 된다. 오래 끓일수록 알코올 도수는 낮아지니 취기에 대한 부담은 지극히 적다. 꼭 문헌에 정해진 약재를 넣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어차피 한 해를 축복하고 건강을 기원하는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제사주로 어색한 소주
소주는 제사주로는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제사에 쓰이는 술로 많이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남녀노소 모두 음복을 해야 하니 도수가 높은 소주는 적당하지 않다.
소주의 기원이 종교의식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소주는 고려 말 몽골을 통해 들어왔다. 몽골은 당시 이슬람의 연금술에서 증류 기술을 익혔다. 이슬람의 연금술에서 파생된 술이 위스키, 브랜디, 코냑, 보드카, 소주 등의 증류주다. 결국 이 시기는 기독교, 불교, 힌두교, 중국의 유교까지 전 세계의 종교가 자리를 잡았던 시기다. 종교가 시작할 무렵부터 있었던 와인 및 곡주와는 결을 달리한다.
여기에 소주는 인간이 인위로 발효주에서 증류라는 시스템을 통해 알코올을 추출해 낸 술이다. 발효주는 옛날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미생물로 인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초자연적으로 보였겠지만, 증류주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만큼 초자연적 의미를 가진 종교과 연결되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 다만 다 같이 맛을 보며 고향과 지역을 생각한다는 의미에서는 전통 소주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또 하이볼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도수를 낮춰서 마시는 문화가 커진 만큼 이제는 충분히 잘 어울릴 수 있다.
#정종의 유래
그렇다면 대한민국 청주의 대명사 정종(正宗)이라는 술은 어떨까? 알고 보면 정종은 설날에 가장 안 맞는 술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종이라는 명칭 자체가 우리나라 술의 이름이 아닌 일본식 청주인 사케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정종을 일본식 음으로 읽으면 세이슈(せいしゅ)인데 이 발음 자체가 일본식 청주 발음과 같아서 자연스럽게 정종이라는 사케 브랜드가 많이 생겨났다. 현재도 정종이라는 명칭으로 무려 150종이 넘는 사케 브랜드가 있다.
정종이 청주의 대명사가 된 이유는 일제 강점기 시절 청주를 일제가 독점해서 생산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국의 전통방식으로 만들면 청주라는 이름도 쓰지 못 하게 했다. 이렇다 보니 청주는 일본식 고급 술이라는 인식이 뿌리깊게 박히고 유명 일본의 청주인 정종이라는 이름이 아예 보통 명사처럼 됐다.
#설에는 어떤 술이 좋을까
그럼 이번 설날에는 어떤 술이 좋을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우리 동네 술이다. 바로 고향의 술. 설날은 모두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귀향의 의미가 있으니 내가 살았던 곳의 전통주가 가장 의미 있다.
만약 없다면 부모님의 고향의 술도 좋다. 그것마저도 어렵다면 전통주 전문 쇼핑몰에 들어가보자. 술마켓, 술담화, 술팜 그리고 백종원 씨가 운영하는 백술닷컴이 대표적이다. 검색만 하면 아마 수백 가지 술이 등장할 것이다. 인터넷에서 판매되는 전통주는 대부분 우리 농산물로 만든 제품이다. 원재료에 있어서 가장 농업적 가치를 품은 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로 이번 설에는 다양한 전통주로 비교 시음을 해 보는 것도 추천한다. 전통주라고 모두 모두 같은 맛이 아니다. 저마다 다른 맛, 다른 향, 그리고 다른 스토리가 있다. 이를 통해 한국 술의 다양성을 알고 다양한 대화로 이어지는 묘미가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술은 소통의 매개체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 술의 존재 이유라고도 볼 수 있다.
명욱 주류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다.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이며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넷플릭스 백종원의 백스피릿에 공식자문역할을 맡았다. 최근 유튜브 채널 '술자리 인문학'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명욱 주류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