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자기 꿈이 없이 성실하기만 한 젊음이 또 얼마나 많은지. 그와는 다른 경우지만,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이 어른들이 놓은 경쟁의 덫에 걸려 ‘나’의 꿈이 아닌 덫의 꿈을 꾸도록 강요되고 있는지. 좋은 대학에 가야만 괜찮은 인생인 것처럼 10대의 열정을 모두 대학선택에 쏟도록 강요된다. 그렇게 갈망하던 대학도 ‘나’의 꿈과 적성을 고려해서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성적에 맞춰 선택을 한다. 유치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성실하게 공부만 한 그 성실성으로 기꺼이 어떤 전공이든 해낼 수는 있겠으나 그것이 나의 꿈이 아니라면 그 시간낭비를 어이할까? ‘나’의 꿈을 찾을 수 없다면 성실하게만 쌓아놓은 그 스펙이 ‘나’의 감옥일 수도 있겠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친구들이 많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기회는 없고, 그래서 무기력하기만 한데, 무슨 꿈을 꿀 수 있겠느냐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는 청춘들을 어이할까.
이제부터라도 ‘나’를 위해 사는 시간을 마련해 보자. 왜 그렇게 놀기만 하냐는 부모의 잔소리를 들을 각오를 하고 봄바람이 부는 대로, 마음이 이끄는 대로 여행도 해보고, 어쩐지 끌리는 것도 배워보자. 좋은 책을 찾아 밑줄 그으며 읽어보고, 교회도 가보고 절에도 가보자. 그러다 보면 마음이 움직이는 곳이 있고, 마음이 머무는 곳이 있다. 그곳이 ‘나’의 꿈이 생기는 곳이고 성장하는 곳이다.
꿈을 갖게 되고 키우다 보면 좌절도 찾아오고 절망도 찾아온다. 그러나 자존감을 잃지만 않는다면 결국 알게 될 것이다. 한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는 것을. 구자명의 탄생이 시선을 끄는 것은 꿈이 완전히 산산조각 난 그 자리, 완전히 닫힌 문을 경험한 인물의 새로운 탄생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는 아마도 축구선수로서 최고였던 시절을 황당하게 마감하며 절망의 바닥에서 겸손과 감사를 배운 것 같다.
한 세계가 닫히면 또 다른 세계가 열린다! 내가 좋아하는 화가 마티스는 원래 법률사무소에 다니던 청년이었다. 그 마티스가 화가가 된 계기가 된 것은 맹장염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맹장염을 심각한 병이어서 1년간 요양해야 했단다. 20대 젊은 날 요양원에서 1년, 그 무료하고 답답한 시간에 편히 그냥 그림이나 그리라고 어머니가 사다준 미술도구가 우리가 아는 마티스 세계의 시작이었다.
고생만 했던 아내 카미유를 잃은 모네는 기차여행을 하던 중에 마음이 머무르는 곳을 보았다. 그곳이 햇살 좋은 지베르니였다. 43세에 그 찬란한 곳에 정착한 모네는 거기서 또 43년을 살며 그가 가꾼 연꽃정원만 그리다가 그곳에 뼈를 묻었다. 설명할 필요도 없는 거지만, 고흐는 또 어떤가?
한 세계가 닫히면 또 다른 세계가 열린다. 인생은 내가 전전긍긍, 아등바등하는 그곳에서가 아니라 생각지 않은 곳에서 매듭이 생기고 생각지 않은 곳에서 매듭이 풀린다.
수원대 교수 이주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