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차원 국가폭력 위로금 최초 지급…김동연 지사 “사실 규명과 상처 치유 최선 다할 것”
쌍둥이 형제는 배급이 모자라 쥐나 뱀까지 잡아먹으며 배고픔을 견뎌야 했다. 무자비한 폭력과 강제노역은 매일같이 이어졌다. 결국 쌍둥이 형은 수용시설에서 1년이 채 못 돼 숨졌다. 배가 고파 담요를 뜯어먹다 죽었다. 선감학원 생존자 쌍둥이 동생 허일용 씨의 2016년 진술이다.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2년 안산시 선감도에 세워졌다. 아동, 청소년들은 강제로 이곳에 끌려와 노역‧폭력‧고문을 당했다. 1945년 해방이 됐지만 폐원되지 않고 경기도에 관리가 이관됐고, 부랑아 수용시설로 다시 운영됐다. 1982년 폐원할 때까지 총 4700여 명의 소년이 끌려와 수용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폐쇄 후에도 피해자들은 진실규명을 요구하지 못 하고 수십 년간 숨죽여 지냈다. 남아있는 이들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됐고 생존자가 몇 명인지 아직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 하고 있다.
선감학원 피해자들은 2013년 김문수 경기도지사에게 진실규명을 위한 탄원서를 제출했다. 탄원서에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등 후유증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의 사연이 담겼다. 2015년에는 부좌현 의원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선감학원 사건의 진상조사를 요구했고 남경필 도지사는 선감학원 사건의 진상규명 필요성을 인정했다.
처음으로 피해자들과 만난 건 2019년 이재명 도지사다. 이 지사는 피해자들에게 공식으로 사과했다. 2020년 경기도는 선감학원 사건 피해자 신고센터 운영을 시작했고, 경기연구원이 연구 용역을 통해 선감학원 사건 피해 사례 조사 분석 보고서를 발간했다.
같은 해 12월 10일 김영배 아동피해대책협의회 회장과 166명의 선감학원 피해자들이 이재강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함께 국가 차원의 사과와 생존자에 대한 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는 진실규명 결정 신청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다시 구성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22년 9월에는 피해자 150여 명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유해 발굴도 했다. 발굴 하루 만에 유해가 나왔고 60여 개의 10대 추정 치아 등이 쏟아지면서 끔찍한 인권유린 사실이 확인됐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지난해 10월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김 지사는 “심각한 국가폭력으로 크나큰 고통을 겪으신 생존 피해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경기도지사로서 깊은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아울러 억울하게 돌아가신 희생자분들의 넋을 추모하며 삼가 명복을 빈다”며 눈물을 보였다.
김 지사는 이날 공식 사과에 이어 피해자들에 대한 구체적 지원 방안을 담은 ‘선감학원 사건 치유 및 명예회복 종합대책’도 발표했다. 도는 △피해자 생활 지원 △피해자 트라우마 해소 및 의료서비스 지원 △희생자 추모 및 기념사업 추진 등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1월 11일 경기도는 종합대책에 대한 약속 이행의 첫 번째 조치로 500만 원의 위로금과 월 20만 원의 생활지원금, 경기도의료원 연 500만 원 한도 의료서비스, 상급종합병원 연 200만 원 한도 의료실비 등을 지원하는 내용을 발표했다. 지자체 차원의 국가폭력 피해자 위로금 지원은 경기도가 최초다.
이는 대책을 약속한 지 3개월도 되지 않아 신속하게 나온 결정이다. “피해자들을 더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김동연 지사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동연 지사는 “비록 과거에 자행된 일이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가 이 문제의 사실 규명과 피해지원에 대한 분명한 책임을 갖고 있다”며 “지난해 약속 드린 대책을 성실히 이행하며 상처 치유와 명예 회복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경기도는 올해부터 피해자 신고센터를 지원센터로 개편해 도내 거주 피해자에 대한 지원기능을 대폭 강화하는 한편, 전문상담사를 배치해 피해 트라우마 해소 프로그램 운영을 통한 일상 회복도 함께 지원한다. 또한 선감학원 사건 추모비 설치 및 공동묘역을 정비해 희생자 추모 공간을 조성하고 선감학원 옛 건물 보존 사업을 통해 도민 역사 문화 체험의 산실로 활용할 계획이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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