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사무처 전시회 당일 새벽 기습 철거…‘윤석열차’ 논란 등 후보 시절과 상반된 행보 지적
#정치풍자 작품 철거 논란
국회사무처는 국회 의원회관 2층에서 전시될 예정이던 ‘2023 굿바이전 인 서울’을 1월 9일 새벽 기습 철거했다. 굿바이전은 서울민족예술단체총연합과 굿바이전시조직위원회가 주최하고 강민정 김승원 김영배 김용민 양이원영 유정주 이수진 장경태 최강욱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무소속 윤미향 민형배 의원 등 12명이 공동주관했다. 작가 30명이 참여한 굿바이전에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현 정부를 풍자하는 작품 80여 점이 전시될 예정이었다.
1월 9일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은 페이스북에 “전날 밤 민주당 의원들과 전시회 관련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이후 전시회를 여는 게 바람직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전시회 철거 배경을 설명했다.
문제가 된 전시회 작품은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나체로 큰 칼을 들고 있는 그림 △김 여사가 “논문표절 46%도 박사 통과됩니다”라고 말하는 그림 △‘대통령실 공사 수의계약 해먹을 결심’이란 문구와 함께 쓰러진 윤 대통령 옆에 소주병이 뒹굴고 그 위로 김건희 여사가 앉아 있는 모습이 담긴 그림 △술 취한 윤 대통령 옆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안경 쓴 개로 묘사된 그림 등이다. 철거된 작품들은 1월 11일부터 2월 9일까지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는 ‘벙커1’에서 전시를 이어갈 계획이다.
1월 8일 국회사무처는 “국회의원회관 회의실 및 로비 사용 내규 제6조 제5호를 위반할 수 있는 작품은 전시하지 않는 조건으로 로비의 사용을 허가했다”며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충분히 존중되어야 하나, ‘국회의원회관 회의실 및 로비 사용내규’ 제6조 및 제7조에 의거해 전시작품들을 2023년 1월 8일 23시까지 자진 철거해 줄 것을 요청드린다”고 세 차례에 걸쳐 공문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사무처 내규는 ‘사무총장이 다음 각 호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 회의실 및 로비 사용을 허가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내규 제6조 5항에는 ‘특정 개인 또는 단체를 비방하는 등 타인의 권리, 공중도덕, 사회윤리를 침해할 수 있는 회의 또는 행사로 판단되는 경우’라고 명시돼 있다.
1월 9일 오전 굿바이전을 공동주관한 의원들은 국회 소통관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국회가 표현의 자유를 짓밟았다”며 “탈법, 위법, 불법, 주술로 점철된 윤석열 정권을 풍자하는 작품을 한데 모았다. 이번 전시는 곧 부당한 권력에 더는 시민들이 압사당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그런데) 국회사무처는 이 같은 다짐을 무단철거라는 야만적 행위로 짓밟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레짐작 자기검열은 국회 사무총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라도 의장은 작품이 정상적으로 시민들에 가닿을 수 있도록 철거 작품의 조속한 원상복구를 지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1월 11일 김진표 국회의장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전시회 작품 철거 논란에 대해 “의원들이 주최해서 하는 전시회나 이런 일들이 과거에도 보면 특정 개인이나 특정 정당을 인격적으로 모욕하거나 창피 줄 목적으로 운영된 적이 있다”며 “창작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국회라는 시설물을 특정 개인이나 정치단체를 모욕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 문제를 계기로 여야 사무총장이 그동안 협의를 해왔다. 전시나 이런 것을 사전에 검열할 수는 없으니까 자문위원회를 구성해서 전시될 내용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 충분히 전문가들과 논의를 거쳐서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대로 운영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여당은 민주당에 전시회를 주최한 국회의원 징계를 요구하고 나섰다. 1월 10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 처럼회 의원 12명이 초청하는 ‘2023 굿바이전 인서울 전시회’가 사무처 결단으로 강제 철거됐다”며 “예술 작품이라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지만, 저질 정치 포스터이고, 인격 모독과 비방으로 가득 차 있다. 강제 철거는 당연하고 제대로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2017년 표창원 의원이 유사한 일로 전시한 다음에 민주당 윤리심판원으로부터 당원 자격정지 6개월을 받았다. 12명의 의원을 심판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표현의 자유 어디까지
그동안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2022년 12월 13일 서울용산경찰서는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 윤 대통령을 풍자하는 포스터를 붙인 작가 이병하 씨를 옥외광고물관리법및경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이 작가는 2022년 9월 서울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일대 버스정류장에 윤 대통령을 조롱하는 포스터 10여 장을 붙인 혐의를 받는다. 이 포스터에는 ‘마음껏 낙서하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익선관과 마스크를 쓴 윤 대통령이 곤룡포를 풀어헤치고 알몸으로 웃는 모습이 담겨 있다. 윤 대통령 신체 주요 부위는 김건희 여사 얼굴로 가렸다.
2022년 10월 이병하 작가는 경찰 조사에 출석하면서 “보편적 정서가 담긴 작품을 설치했을 뿐, 지나친 법의 잣대로 처벌하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윤석열차’ 만화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최한 제23회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카툰 부문 금상(경기도지사상)을 수상한 뒤 전시된 것을 놓고도 여야 공방이 벌어졌다. 2022년 10월 5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정치적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을 선정해 전시한 것은 학생의 만화 창작 욕구를 고취하려는 행사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에 만화영상진흥원에 유감을 표하며 엄중히 경고한다”는 입장문을 냈다.
시민사회에서 곧바로 비판이 나왔다. 2022년 10월 11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문체부의 입장 표명은 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을 선정하였다는 이유로 해당 단체를 일방적으로 정부의 지원 대상에서 배제(차별)코자 하는 것으로, 전형적인 블랙리스트 사건”이라며 “문체부는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주요 기관이었다. 블랙리스트를 반복하는 문체부의 입장은 중대하게 표현의 자유를 제약한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고 성명을 냈다.
2022년 11월 3일 전국 중·고등학생 1511명은 ‘중·고등학생에까지 정치탄압과 보복의 칼날을 휘두르는 윤석열 정권의 비민주적 행태를 규탄한다’는 내용을 담은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학생들은 “‘윤석열차’가 금상을 받자, 문체부는 ‘엄중 경고’한다는 뜻을 밝히며 협박에 나선 것도 모자라, 지원금 환수라는 사정의 칼날까지 휘두르려 했다”며 “윤 정권이 중고등학생들에게 ‘허락’하는 정치풍자의 영역은 오직 윤석열 정권에 대한 찬양뿐이냐”고 꼬집었다.
‘윤석열차’ 논란은 또 다른 전시 배제로 이어지기도 했다. 2022년 11월 오창식 만화가는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의 부대 전시회용으로 출품한 풍자만화 50점 중 윤석열 대통령 부부 풍자만화인 ‘Member Yuji(멤버 유지)’만 전시 불허 통보를 받았다. 작품은 김건희 여사가 2008년 국민대 대학원 재학 당시 논문에서 한글 제목의 ‘회원 유지’를 ‘Member Yuji(멤버 유지)’라고 기재한 점을 풍자했다. 주최 측은 ‘윤석열차’ 논란을 고려한 조치라는 취지로 입장을 밝히면서 논란을 더했다.
야권에선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행보와 상반된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2021년 7월 30일 윤석열 대선 캠프 대외협력특보인 김경진 전 의원은 YTN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에서 “캠프 내에서 줄리 벽화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을 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는 표현의 자유와 형법상의 모욕죄와 경계 선상에 있는 문제”라며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누드화에 출산 장면이라든지 이런 것들도 표현의 자유로 강행했다. 굳이 이런 것을 가지고 형사상 고소, 고발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며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한 배경을 설명했다.
앞서 2021년 7월 서울 종로3가에 위치한 한 서점 벽화에 김건희 여사를 비방하는 이른바 ‘줄리 벽화’가 그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이는 곧 양쪽 진영에 있는 그래비티 작가들의 벽화 대결로 이어졌다. 진보 성향 닌볼트 작가는 윤 대통령 후보를 겨냥해 ‘손바닥 王(왕)자’, ‘개 사과’, ‘전두환’ 등을 담은 그림을 그렸다. 보수 성향 탱크시 작가는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와 과거 스캔들 의혹이 불거진 여배우를 담은 그림을 그렸다.
2022년 10월 4일 웹툰협회는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이던 2021년 12월 8일 서울 대학로에서 청년 문화예술인들을 만나 ‘코미디는 현실에 대한 풍자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는 그야말로 말초적으로 웃기기만 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정치와 사회에 힘 있는 기득권자들에 대한 풍자가 많이 들어가야만 인기 있고 국민 박수를 받는다’고 말한 바 있다”며 “‘정치 풍자는 문화예술인들의 권리’라는 발언도 하신 바 있다”고 강하게 비판하는 입장문을 냈다.
여권 한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도 쓴소리를 싫어했고, 당선된 이후에는 그런 경향이 더욱 짙어졌다. 풍자 그림들에 대한 태도도 비슷하지 않겠냐”며 “대통령실 내부에 쓴소리가 자취를 감췄다. 참모들도 쓴소리를 싫어하는 대통령 성향을 알기에 몸을 사린다”고 말했다. 이어 “쓴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마는 대통령이고, 정치인이라면 쓴소리를 경청하는 태도도 중요하지 않나 싶다”고 덧붙였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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