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회사 MRI 상대로 ITC 맞제소 후 무효심판 제기…합의로 문제 해결할 것이라는 전망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삼성
일요신문의 취재 결과, 삼성전자와 삼성인터내셔널 등이 최근 미국 디스플레이 회사 매뉴팩처링 리소시스 인터내셔널(MRI)와의 특허 분쟁 중 미국특허심판원(PTAB)에 해당 특허에 대한 특허무효심판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은 2022년 11월 22일부터 2022년 12월 15일까지 약 3주에 걸쳐 MRI가 제소한 총 5건의 특허 모두에 대해 순차적으로 당사자계 무효심판(IPR)을 제기했다. 당사자계 무효심판은 특허권이 부여된 후 당사자 간 분쟁이 발생했을 때 특허의 권리범위를 다툰다.
IPR은 특허를 무효화시키는 주된 수단 중 하나로 미국에서 과도한 특허권 남용과 빈번한 특허소송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도입된 특허무효심판 중 한 종류다. 누구나 IPR을 신청할 수 있는 까닭에 특허침해로 피소를 당한 피고가 소송의 원인이 된 특허 자체를 무효화하기 위해 활용되기도 한다. 다만 이 경우 청구인이 특허침해로 소장을 받은 날로부터 1년 이내에 청구해야 한다. 삼성그룹은 피소당한 지 3개월여 만에 이 제도를 활용했다.
앞서 삼성그룹은 2022년 12월 5일 특허 침해로 국제무역위원회(ITC)에 MRI를 맞제소했다. 원고에는 삼성전자와 삼성전자 미국법인, 삼성리서치아메리카, 삼성인터내셔널이 포함됐다. 삼성은 MRI가 액정표시장치(LCD) 패널과 편광필터를 포함해 주요 부품에 관한 특허 4건을 침해하고 관세법 337조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관세법 337조는 지적재산권 보호를 목적으로 하며 특허나 상표권 등을 침해해 불공정 무역행위를 할 경우 해당 상품의 수입을 막거나 불공정 행위를 중단하도록 명령할 수 있는 조항이다.
MRI는 옥외 간판 및 광고에 사용되는 디지털 사이니지 분야에 특화돼 있는 LCD 디스플레이 제조업체로 2006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설립됐다. MRI는 2022년 8월 19일 삼성전자 등을 상대로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며 미국 텍사스 동부 지방법원에 소를 제기했다. 삼성전자의 야외 키오스크에 사용되는 전자 디스플레이용 냉각시스템이 자사의 기술을 무단 도용했다는 것이다. MRI는 거액의 손해배상과 소송비용을 청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텍사스동부지법은 특허권자에게 친화적인 판결이 나오기로 유명해 소송으로 수익을 내는 특허관리전문기업(NPE)이 가장 선호하는 법원이다.
뿐만 아니라 MRI는 제품의 수입 금지까지 요구했다. MRI는 2022년 9월 23일 삼성전자와 삼성SDS를 상대로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소장을 냈다. 소장에는 미국 일리노이주의 팔머 디지털 그룹(Palmer Digital Group)과 코츠 그룹(Coates Group)을 통해 판매되는 삼성 LCD 디스플레이 제품의 수입 금지를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MRI는 미국 내에서 총 253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번에 제소한 관련 특허는 총 5건이다. 한국지식재산보호원 분쟁정보분석실에 따르면 특히 MRI가 2009년에 출원해 2014년 등록을 마친 US8854595 특허는 미국에서 2017~2020년 시비크 홀딩스(Civiq Holdings)를 상대로 한 특허 분쟁에서 승소하게 만든 핵심 특허로 이번 삼성그룹과의 특허 분쟁에도 포함됐다.
#이번에도 합의로 마무리할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언택트 경제가 활성화함에 따라 스크린을 통한 정보 전달 방식이 많아지면서 디지털 사이니지 시장 역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22년 1월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의 발표에 따르면 디지털 사이니지 시장은 2026년까지 359억 4000만 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2018년 197억 8000만 달러와 비교해 8년 만에 시장 규모가 2배로 커지는 셈이다. 조사 기간 동안 예상되는 연평균 성장률은 약 7.8%에 달한다.
글로벌 디지털 사이니지 시장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양분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마켓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상업용 TV 판매량을 제외하고 13년 연속 글로벌 사이니지 시장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업계 점유율은 2020년 기준 삼성전자가 27.6%, LG전자가 17.1%를 차지한다. 3위인 일본 NEC의 점유율은 약 3%로 사실상 국내 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디지털 사이니지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번에 삼성그룹과 특허분쟁을 하게 된 MRI는 LG전자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회사다. LG전자는 2014년 MRI와 함께 절반씩 지분을 투자해 합작회사인 옥외 사이니지 전문업체 ‘LG-MRI’를 설립했다. LG-MRI는 LG가 북미 시장 등 해외 주요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직까지도 합작회사로 남아 있다. LG-MRI에서 만든 제품군은 이번 특허 분쟁과는 무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삼성전자가 휘말려든 특허 소송 건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22년 2월 스마트폰 관련 특허 침해 소송에 노출된 데 이어 10월 17일에는 반도체 특허침해로 인한 관세법 337조 위반 혐의로 퀄컴, TSMC와 함께 ITC에 제소됐다. 삼성전자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미국에서만 438건의 특허 침해 소송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업체 중 압도적 1위를 자랑한다.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는 만큼 공격이 들어올 여지도 많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특허법인 광장리앤고의 장은영 변리사는 “삼성이 반도체 쪽으로 갖춘 자체 특허 개수가 굉장히 많고 기본적으로 특허 출원도 공격적으로 하는 기업이다 보니 반대급부로 경쟁사들의 특허 공격도 많이 받는 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특허소송의 경우 대부분 소송가액이라든가 규모가 상당하고 만약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사업을 접어야 할 수도 있는 만큼 잘못 휘말리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모된다. 삼성도 계속되는 특허소송으로 부담이 상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인지 삼성전자 역시 대부분 합의 등을 통해 소송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앞서의 438건 중에서도 승소한 건은 3건에 불과하다. MRI와의 특허분쟁 역시 격화되고 있지만 종국에는 원만한 합의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한 관계자는 “특허분쟁 등 소송 이슈와 관련해서는 설명드릴 수 있는 내용이 없고 공식 입장도 없는 상태”라며 말을 아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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