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적발 우려’ 주장하면 강도살인 적용 어려워…전 동거녀 시신 못 찾으면 무죄 가능성도
택시기사와 전 동거녀를 살해한 이기영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아직 검찰이 어떤 혐의로 기소할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경찰이 사건 송치 과정에서 택시기사 살인사건에 적용한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가 이뤄질지가 관건이다. 물론 강도살인이 아닌 살인으로도 무거운 처벌이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검찰은 강도살인 혐의를 입증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전 동거녀 살인사건은 ‘시신 없는 살인사건’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자칫 무죄가 나올 수도 있다. 그만큼 이기영 사건을 두고 경찰과 검찰은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
#택시기사 살인사건…살인일까 강도살인일까
택시기사 살인사건에 강도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을까. 살인죄의 형량은 사형 또는 무기, 5년 이상의 징역형(형법 제250조)이지만 강도살인죄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형법 제338조)으로 형량이 더 올라간다.
경기 일산동부경찰서는 이기영에게 강도살인 및 살인, 사체 유기, 사체 은닉, 절도, 사기, 여신전문금융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으로 송치했다. 2건의 살인사건 가운데 택시기사 살인사건에 강도살인 혐의를 적용했는데 이기영의 재정 문제 등 전반적인 정황이 그 이유다.
사건 당시 이기영에게 숨진 택시기사에게 합의금과 차량 수리비를 줄 경제력이 없었다는 점,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점 등을 미뤄 돈을 빼앗겠다는 계획을 기반으로 한 강도살인으로 봤다. 반면 이기영은 우발적 살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도 강도살인과 살인 두 가지 혐의를 두고 공방이 오갈 것으로 보인다. 이기영이 주장하는 우발적 살인은 받아들여지기 힘들어 보인다. 집에 차량 수리비와 합의금으로 줄 현금이 없는 상황에서 숨진 택시기사를 집으로 데려갔기 때문이다. 문제는 돈을 빼앗기 위한 살인인지, 음주운전 적발을 피하기 위한 살인인지 여부다.
#‘음주운전 적발 우려’라는 살인 동기 존재
이기영은 음주운전 전과 4범이다. 육군 간부이던 2013년 5월 서울 마포에서 음주운전이 적발돼 면허가 취소됐고, 3개월 뒤 인천에서 무면허 음주운전을 하다 단속에 걸렸다. 특히 무면허 적발 당시에는 단속을 피하려 경찰관을 차에 매달고 2km가량을 달렸으며 차 열쇠를 뽑으려는 경찰에게 강하게 저항하며 손을 물어 상처까지 입혔다. 이로 인해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가 적용돼 군사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2018년 12월에도 경기 파주시 한 도로에서 신호를 위반하고 맞은편 도로의 택시와 사고를 냈는데 택시기사와 합의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2019년 11월 다시 광주 동구에서 전남 장성군으로 30km가량을 음주운전을 했고, 이번에는 징역 1년의 실형을 살았다. 그리고 2022년 12월 다시 일산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택시와 사고를 냈는데 이번에는 살인까지 이어졌다.
또 다시 음주운전으로 적발돼 실형을 살게 될 상황에서 이기영이 음주운전 사실을 감추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할 경우 법원에서 강도살인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 살인 이후 피해자 신용카드를 무단 사용하는 등 ‘강도’ 행각도 있었지만 살인 동기는 ‘강도’가 아닌 ‘음주운전 범행 발각에 대한 우려’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우선 검찰이 기소 과정에서 살인 혐의를 적용할지, 강도살인 혐의를 적용할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강도살인 아니라도 가중 사유 있는 ‘비난 동기 살인’
만약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돼 법원에서도 유죄가 나올 경우 사형 또는 무기징역의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된다. 반면 살인 혐의만 유죄가 나올 경우 ‘징역 18년 이상, 무기 이상’의 형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기영의 택시기사 살인은 법원 양형위원회의 살인범죄 양형기준에 따르면 ‘비난 동기 살인’에 해당된다. 음주운전 사실을 감추기 위한 살인으로 볼 경우 ‘범행의 발각 또는 피해자의 신고를 우려하여 살인’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양형기준에 따르면 ‘비난 동기 살인’의 경우 기본 형량은 징역 15~20년, 감경 사유가 있으면 징역 10~16년, 가중 사유가 있으면 징역 18년 이상, 무기 이상이다.
이기영은 피해자인 택시기사에게 차량 수리비와 합의금을 주겠다고 설득해 집에 데려갔다. 수중에는 돈이 없지만 집에 돈이 있다고 얘기한 것. 그렇지만 경찰 수사 결과 집에 있는 현금은 45만 원뿐이었고 은행 통장 잔고도 17만 원이 전부였다. 결국 집에 현금이 없는데도 택시기사를 집에 데려한 행위가 처음부터 살인이 목적이었다는 주장과 이어진다. 이 경우 양형기준의 특별양형인자 가운데 가중요소인 ‘계획적 살인 범행’에 해당된다. 반대로 감경요소로는 ‘진지한 반성’ 정도가 있다. 다만 감경은 이기영이 재판 과정에서 반성문을 자주 제출하는 등 충분히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을 때에만 가능하다.
#자칫 무죄 될 수도…반드시 찾아야 하는 시신
더 큰 문제는 경찰이 살인 혐의를 적용한 전 동거녀 살인사건이다. 경찰은 이 살인사건에 대해서는 살인과 사체 유기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문제는 이기영이 유기한 시신을 아직 경찰이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 기소 시점까지도 시신을 찾지 못한다면 자칫 ‘시신 없는 살인사건’으로 재판이 진행될 수 있다.
애초 이기영은 전 동거녀 살인을 자백한 뒤 파주 집(전 동거녀 소유로 살인 이후 이기영이 거주)에서 약 9km 떨어진 경기 파주 공릉천변에 시신을 유기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이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지만 시신을 찾지 못했고, 1월 3일 다시 이기영은 그 장소에서 2km 떨어진 다리 근처에 시신을 묻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시신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검찰 송치를 앞두고 가진 경찰 조사에서 이기영은 진술을 번복해 시신을 묻은 위치를 알려주며 “경찰에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는 발언을 했다. 그럼에도 시신이 발견되지 않자 1월 6일 검찰의 현장검증에선 수갑 찬 손으로 시신 매장한 위치를 가리키고 수사관들에게 “삽을 달라” “삽을 반대로 뒤집어서 흙을 파내야 한다” 등의 말을 했다.
경찰은 이미 이기영이 진술한 위치 인근을 굴삭기로 다 파봤지만 시신은 없었다. 사람이 땅을 파서 시신을 묻을 수 있는 깊이는 굴삭기로 팔 수 있는 깊이보다 깊을 수는 없다. 따라서 폭우로 시신이 한강으로 유실됐거나 이기영의 진술이 이번에도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 현재까지 상황으로 볼 때 이기영의 전 동거녀 살인사건은 시신 없는 살인사건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이기영이 자백했지만 형사소송법은 자백만으로는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증거를 입증할 증거가 확보돼야 하는데 가장 결적적인 증거인 시신이 없다. 게다가 그 다음으로 중요한 증거인 흉기도 없다. 현재 확보된 증거는 전 동거녀의 혈흔 정도다.
#무죄와 유죄 판결 엇갈리는 ‘시신 없는 살인사건’
시신은 살인사건에서 가장 강력한 물증이다. 용의자 자백이 존재할지라도 시신이 없으면 재판은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영화 ‘의뢰인’과 같이 시신 없는 살인사건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자주 소재로 활용될 정도다. 실제로 2005년 12월 ‘대전 내연녀 언니 살인사건’에선 피의자인 50대 남성이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상고심에서 파기환송돼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10년 5월 경남 함안의 한 중소기업 기숙사에서 발생한 방글라데시인이 같은 동포 동료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사건도 대표적인 시신 없는 살인사건이었다. 결국 2012년 8월 대법원은 “피해자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피해자 행방불명만으로 사망을 속단할 수 없다”며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2010년 6월 부산에서 일어난 노숙인 시신 없는 살인사건은 재판 과정에서 반전에 반전이 거듭됐다. 2011년 5월 1심에선 유죄로 무기징역이 선고됐지만. 2012년 2월 2심에선 직접적인 살인의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살인 혐의는 무죄, 시체 유기에 대해서만 징역 5년이 선고됐다. 그렇지만 2012년 9월 대법원이 살인 혐의에 대해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고 2013년 3월 부산고법은 파기환송심에서 살인 혐의를 인정해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그런가 하면 2008년 경기도 용인 30대 남성 살인사건과 2010년 인천 ‘낙지 살인사건’에서는 시신이 없어도 정황 증거만으로 유죄 판결이 났다.
가장 최근 사례로는 2019년 5월 발생한 ‘제주 펜션 전 남편 살인사건’이 있다. 피의자 고유정은 제주도의 한 펜션에서 전남편을 살해했는데 이후 고유정이 전남편의 시신을 훼손해 여러 장소에 유기해 ‘시신 없는 살인사건’이 됐다. 그렇지만 고유정이 자백했으며 경찰이 흉기 등 유력한 증거 89점을 확보해 대법원이 살인 혐의를 인정해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현재 상황에선 이기영이 유기한 전 동거녀 시신을 찾는 게 가장 급선무지만 흉기 등 다른 증거를 찾는 수사에서라도 뚜렷한 성과가 절실하다. 물론 이기영은 택시기사 살인사건만으로도 무거운 처벌이 불가피한 데다 사체 유기, 사체 은닉, 절도, 사기, 여신전문금융법 위반 등의 혐의도 대부분 유죄가 인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재판에서 전 동거녀 살인 혐의가 무죄로 판결될 경우 경찰과 검찰을 향한 비판 여론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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