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윤 핵심 김기현에 무게, 낙선하면 대통령실 타격…오랜 당원 ‘열정투표’가 승부 가를 듯
멀리 볼 것도 없이 2014년 전당대회 때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밀었던 서청원 후보가 떨어지고 김무성 후보가 당대표에 오른 사례가 있다. 박 대통령은 이로 인해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 대통령과 당대표 갈등으로 뒤숭숭하던 여당은 2016년 총선에서 패배했다. 하지만 2014년과 사정이 다르다는 반론도 나온다.
#명확해지는 윤심
일반 여론조사를 없애고 100% 당원투표로만 지도부를 뽑겠다는 결론이 나왔을 때부터 ‘윤심’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윤심 논란은 이내 수그러들었다. ‘윤핵관’으로 불리는 권성동 의원과 장제원 의원이 힘을 합치는 모습 없이 독자행보를 했기 때문이다.
알쏭달쏭하던 윤심은 새해가 밝자마자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친윤 맏형 권성동 의원이 1월 5일 당대표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면서다. 권 의원은 오랫동안 전국을 누비며 당대표 선거 예열을 해왔는데 갑작스레 불출마를 발표했다. 권 의원 불출마는 윤심의 직접적 작용, 즉 친윤 후보 교통정리로 읽혔다. 그 후 친윤 핵심인 장제원 의원과 연대한 김기현 의원이 ‘공식 윤심 후보’라는 정치권 인증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당내 교통정리는 권 의원에서 멈추지 않았다. 다음 타깃은 여러 여론조사에서 당대표 지지율 선두를 달려온 나경원 부위원장에게 향했다. 대통령실은 1월 6일 안상훈 사회수석이 직접 나 부위원장을 비판했다. 나 부위원장이 전날 열린 신년 간담회에서 저출산 대책으로 ‘대출 탕감’ 방안을 내놓자 안 수석은 “윤석열 정부의 관련 정책 기조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안 수석 브리핑은 참모진 회의와 맞물려 긴급하게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공세에 화들짝 놀란 나 부위원장은 1월 10일 윤 대통령에게 장관급인 부위원장직 사의를 표명했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사의 표명에 대해 “전해들은 바 없다”고 밝히면서 또 다른 해석을 만들어냈다. 대통령실이 나 부위원장에게 공직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씌우고 있다는 것이다.
나 부위원장에 대한 대통령실 공세는 ‘명분’을 갖춘 것이어서 때리는 강도가 더 셌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대통령 직속 기구로,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있어 부위원장 자리 무게감이 더 크다. 더욱이 위촉한 지 불과 3개월도 안 된 시점에 나 부위원장이 사의를 표명하자 ‘이러려고 중책을 맡았나’라는 지적과 연결됐다.
당내 현역 의원들은 권성동 의원과 나경원 부위원장을 보면서 “이제 윤심이 명확해졌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권 의원이 당대표 불출마 선언 발표에서 내놨던 대권·당권 분리라는 잣대를 대본다면 명확한 친윤 후보는 김기현 의원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 대다수 의원들의 설명이다.
#과거에는 비극도 있었다
당 안팎에서 윤심 후보는 김기현 의원이라는 공식이 나오면서 우려도 감지되고 있다. 김 의원이 예측 못한 새로운 돌발 상황으로 만약 낙선하게 된다면 그 후폭풍이 대통령실을 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나경원 부위원장이 윤심을 헤아리고 불출마하면 김기현 의원은 큰 어려움 없이 당대표에 당선될 것으로 점쳐진다. 하지만 나 부위원장이 출마하지 않더라도 다른 후보들이 연대를 통해 새로운 승부수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나 부위원장의 사의 의사를 대통령실이 조속히 받아주지 않고 질질 끌면서, 윤 대통령이 당무에 심한 개입을 하고 있다는 야당의 프레임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월 12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출연, 이른바 ‘나경원 사태’를 두고 “(윤석열 대통령이) ‘당무에 개입하지 않겠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너무 깊숙하게 개입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당내에서는 최근 상황을 보면서 2014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당대표 선출에 개입하려다 정치적 타격을 받은 과거를 떠올리고 있다(관련기사 ‘친박 대 비박 데자뷰’ 국민의힘 전대 흑역사 회자되는 까닭). 현재 상황이 그때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친박계 좌장 서청원 후보에게 힘을 실어줬다. 박 대통령은 전당대회 당일 직접 연설까지 했지만, 결과는 박 대통령과의 뜻과는 다르게 김무성 후보의 승리였다. 김 후보는 일반 여론조사뿐 아니라 당원투표에서도 서 후보를 누르면서 박 대통령은 체면을 구겼다. 이번 전당대회에서도 유일 친윤 후보를 앞세운 김기현 의원이 의외로 고전할 수 있다는 분석이 당내 일각에서 나오는 이유다.
“2014년 전당대회에서 많은 당원들은 박 전 대통령 뜻과 달리 김무성 후보를 비박으로 보지 않았다. 그래서 열성 친박 당원들조차 김무성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다. 이번 전당대회에서도 유승민 전 의원을 제외한다면 모두가 친윤인데 김기현 의원 지명도가 다소 떨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원들이 뜻밖의 전략적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대구에서 오랫동안 당원 생활을 하면서 여러 차례 전당대회에 참여해본 어느 인사의 설명이다.
국민의힘 당원들의 전략적 투표는 ‘어떤 당대표가 내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 적임자이냐’라는 질문과 연결돼 있다. 여소야대를 반드시 극복해내야 하는 내년 총선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단순히 윤심만 따라갈 것이냐, 당의 간판으로서 총선 승리 적임자가 과연 누구일지 면밀히 판단할 것이냐, 두 가지를 놓고 당원들이 치열하게 고민한다는 것이다.
실제 국민의힘 당원들은 이준석 전 대표가 당선됐던 지난 2021년 6월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바람’에도 불구, 전략적 투표성향을 보여줬다. 여론조사에서는 압도적 우위를 보였던 이준석 후보였지만, 당원들은 젊은 이 후보의 불안정성을 고려해 나경원 후보에게 더 많은 표를 줬다.
당시 전당대회에서 당원이 가장 많은 대구·경북(TK) 출신 주호영 후보가 TK의 힘을 믿고 당대표에 도전했지만 당원 투표에서 16.6%밖에 얻지 못하고, 오히려 나경원 후보가 40.9%를 가져간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당원들은 지역적 인연에 쏠리지 않고 당의 간판으로 누가 적합한지를 냉정하게 따지는 전략적 투표 성향을 최근 들어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 지지율·투표율이 변수
전당대회에서 어떤 결말이 펼쳐질지는 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과 직결돼 있다는 분석이다. 2014년 전당대회와 단순 비교해보면 박근혜 정부는 그해 봄 세월호 참사로 인해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큰 위기에 몰려있었고,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당내 움직임이 출현해 박근혜 대통령의 뜻과는 거꾸로 가는 결과가 나왔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국면이 시작된 최근 상황은 일단 윤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 국면이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은 임기 초반 추락한 지지율을 조금씩 끌어올리는 모양새다.
제1야당 대표가 여러 사법리스크에 휩싸이면서 윤 대통령은 이 효과도 보고 있다. 이재명 당대표의 사법리스크에 대한 피로감에다 방탄 논란까지 번지면서 민주당 지지율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제1야당 대표에 대한 사법리스크는 단기간에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어서 윤 대통령 지지율 상승세가 갑자기 꺾일 가능성은 낮다.
결국 윤 대통령의 지지율에 올라타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화될 것으로 점쳐진다. 이는 윤심과 당심이 동조화되는 현상을 부를 것이라고 정치권에서 판단한다.
최근 들어 많이 올라가긴 했지만 전당대회 당원 투표율이 별로 높지 않다는 점도 들여다볼 대목이다. 이준석 돌풍이 일어났던 2021년은 45.36%로 역대 전당대회 당원 투표율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그 이전에는 31.7%(2014년) 25.2%(2017년) 25.4%(2019년) 등에 머물렀다.
이 수치로 미뤄보면 당원 경력이 오래된 당원들의 ‘열정 투표’가 승부를 좌우할 전망이다. 최근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1월 11일 대구 방문을 이 관점에서 보는 이들도 많다. 대통령실에서는 봉사 차원, 설 대목을 앞두고 소상공인들의 기운을 북돋우는 방문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윤심이 명확해진 시점에서 김 여사가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TK를 찾아 지지층을 윤심 쪽으로 결집시킨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낳았다. 실제 김 여사의 대구 서문시장 방문에 많은 인파가 몰려 화제를 낳았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1월 1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전당대회를 앞두고 윤심을 전파하는 것 아닌가”라며 “전당대회에 민심을 받고 있는 TK 출신 유승민(전 의원)과 당심을 받고 있는 나경원(부위원장) 둘 다 못 나오게 하고, 윤심을 받는 후보를 대표로 당선시키기 위해 대구 서문시장에 가서 상징적으로 돈 것”이라고 풀이했다.
당 안팎에서는 윤 대통령 지지율 추이, 핵심 지지층의 최근 반응 등을 놓고 볼 때 윤심과 역주행하는 새로운 힘이 전당대회 초반 국면에서는 출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원팀의 해피엔딩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이 설밑 시점을 기준으로는 일단 더 많은 셈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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