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6개월간 소비자 불만 6260건…해외사업자인 까닭 국내법 적용 어려워
#해외 OTA의 수상한 약관…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무더기 적발
지난해 12월 해외여행을 알아보던 30대 여성 A 씨는 글로벌 OTA인 ‘이드림스’를 이용해 항공권을 알아보던 중에 실수로 외항사 항공권을 결제했다. 부가가치세와 카드수수료 등을 포함한 최종 가격을 알아보기 위해 결제창을 들여다보다 일어난 일이었다. A 씨는 “통장에 돈이 부족했는데 왕복이 아닌 편도로 덜컥 예매가 됐다. 당황해 곧바로 환불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여행사에 직접 환불을 요청했으나 이드림스 측은 항공사와 직접 교섭하라고 말했다. 해당 항공사는 규정 상 코로나19 감염, 본인 사망 등의 사유가 아니면 환불이 불가능하다고 맞섰다. A 씨는 결국 수십만 원 상당의 항공권 환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온라인 사이트에 항공권 환불 관련 후기를 올린 소비자 B 씨는 환불 지연으로 피해를 입은 사례다. B 씨는 “해외 여행사를 통해 예매한 어렵사리 환불을 받았는데 실제 돈이 들어오는 데 5개월가량 걸렸다. 다시는 외항사를 이용하고 싶지 않다”고 썼다. 저가항공권을 예매했다가 취소한 C 씨는 “예매를 잘못한 걸 깨닫고 직후에 환불을 신청했는데 나중에 보니 수수료를 4분의 1가량 떼어갔다”고 말했다. 이처럼 온라인 OTA를 통한 피해 사례가 이어지자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도 ‘트래블제니오 항공권 사기환불 모임’ ‘이드림스 사기 해결방’ 등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는 방이 생기기도 했다.
이런 사례가 빈번했다. 2019년부터 2022년 6월까지 한국소비자원과 공정거래위원회에 3년 6개월간 접수된 항공권 판매 글로벌OTA 관련 소비자불만이 6260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소비자원이 유형별로 분석한 결과 이 중 ‘취소·변경·환불 지연 및 거부’가 3941건(63.0%)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위약금·수수료 과다 요구’ 등이 1429건(22.8%), ‘계약불이행’이 509건(8.1%), ‘사업자 연락두절’ 150건(2.4%) 순이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항공권 판매 글로벌 OTA 8개 업체(고투게이트, 버짓에어, 아고다, 이드림스, 익스피디아, 키위닷컴, 트립닷컴, 트래블제니오)의 이용 약관에 소비자에게 불리한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조사 대상 8개 업체 중 6개 업체가 ‘환불 불가’ 등 소비자에게 불리한 약관 조항을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환불도 제멋대로였다. 키위닷컴의 경우 항공권 환불 요청 시 10유로(약 1만 3000원)만 환불해주거나 현금이 아닌 적립금으로 환급하는 조항이 있었다. 고투게이트는 항공사 사정으로 인한 환불 시에도 별도 수수료를 부과할 수 있다는 조항이 약관에 있었다.
주요 거래조건이 국내 법규에 비해 미흡한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항공사업법에 따른 항공교통이용자 보호기준’에 따르면 여행업자는 항공권의 변경·취소 및 환불 가능 여부·기간·수수료(면제조건 포함), 위탁수하물, 항공기 종류, 실제 운항사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항공사업법 시행령에 따르면 항공권 금액 총액과 유류할증료도 표시해야 한다. 그러나 익스피디아를 제외한 7개 업체가 항공권의 ‘변경·취소 및 환불 정보’를 제대로 표기하지 않았다. 4개 업체는 항공기 종류를, 8개 업체는 유류할증료를 표시하지 않았다.
#국내법 적용 안되는 탓에 속수무책
문제는 국내 행정당국이 마땅히 손쓸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외국 항공사와 글로벌 OTA 모두 해외에 법인이 설립되어 있다. 국내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12월에 나온 조사 결과를 토대로 글로벌 OTA에 시정을 권고하긴 했지만 강제성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소비자원의 한 관계자는 “예를 들어 국내 사업자가 관련 법규를 위반했을 경우에는 정부가 행정처분을 가할 수 있고 소비자들도 민사소송 같은 법적 절차를 통해 이런 부분을 해결할 수 있겠지만 해외사업자의 경우 둘 다 불가능하다”며 “저희가 이런 실태조사를 해서 보도자료를 공표하는 것은 우리 소비자들에게 이런 정보를 알리고 사전에 주의해달라는 취지”라고 말했다.
글로벌 OTA의 영향력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호스피탈리티 테크 기업 ‘온다’가 공개한 ‘2021년 숙박업 지표’에 따르면 아고다의 거래액은 2020년과 비교해 2021년에는 423%로 성장했고, 에어비앤비도 160%로 증가하는 등 글로벌 OTA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한국관광공사 또한 2021년 9월에 발간한 보도자료에서 2027년 온라인 여행예약 플랫폼 시장 규모가 2020년 대비 89.8%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의 피해 규모도 점차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2017년에 발간한 보고서에서 이미 “소수 외국계 OTA의 시장지배력이 과도하게 확대되면서 불공정 거래, 소비자 피해 발생 등 부정적인 영향이 증가하고 있어, 이에 대한 심층적인 실태 진단 및 대응책 마련이 시급히 요구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대책 마련이 쉽지 않다. 특히 국경을 넘어서 발생하는 강력 사건도 아니고 소비자 피해 사례의 경우에는 따로 공조가 이뤄지지 않다보니 소비자가 알아서 주의하는 것 외에 뚜렷한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국내법이 적용되지 않는 게 명백한 해외 법인인 외항사와 글로벌 결제 대행사를 이용하면서 지금 당장 행정 당국 제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향후 입법 조치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거래를 제재할 만한 법리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국토부 내에서 아직 해당 사안과 관련해 진행하고 있는 입법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한편 글로벌 OTA에서 항공권을 구입한 후 피해를 입은 소비자는 ‘국제거래소비자포털’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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