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수석 “이승엽 감독 불편하게 느껴도 어쩔 수 없다”…염경엽-김정준 밥 한 끼 먹은 적 없는 ‘의외 조합’
10개 구단의 절반이 새 감독을 선임한 이번 스토브리그에도 뜻이 맞는 리더를 찾아 팀을 옮긴 코치들의 이동이 활발했다. 특히 '감독의 오른팔'로 여겨지는 수석코치 자리에 거물급 야구인들이 많이 포진한 게 눈에 띈다. 삼성 라이온즈 감독을 지낸 김한수 두산 베어스 수석코치, LG 트윈스의 영구결번 레전드인 이병규 삼성 수석코치, 전력분석의 일인자로 꼽히는 김정준 LG 수석코치 등이 그렇다.
#이승엽 감독-김한수 코치 ‘삼성 선후배’의 의기투합
별명조차 '라이언킹'이었던 이승엽 감독은 KBO리그에선 삼성 유니폼만 입고 뛴 '원클럽맨' 출신이다. 그가 삼성이 아닌 두산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뒤, 새 팀에서 함께 할 첫 번째 동반자로 택한 코치는 역시 삼성 '원클럽맨' 출신 김한수 전 감독이다. 이 감독은 감독 계약서에 사인하자마자 자신보다 다섯 살 많은 팀 선배에게 조심스럽게 수석코치 자리를 제의했고, 김 전 감독은 다른 구단의 영입 제의도 뿌리치고 망설임 없이 이승엽 감독의 손을 잡았다. 김한수 코치는 "이승엽 감독은 한국 야구의 보물과도 같은 사람 아닌가. 이 감독이 처음 지휘봉을 잡는 시점에 코칭스태프로 합류해 내가 영광"이라고 말했다.
김한수 수석코치는 이승엽 감독과 인연이 깊다. 김 코치가 중앙대를 졸업하고 1994년 삼성에 입단한 뒤 이듬해 경북고를 졸업한 이 감독이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이승엽이 1루, 김한수가 3루를 지키는 동안 삼성 코너 내야진은 프로야구 최강으로 평가받았다. 이승엽 감독은 현역 시절 골든글러브를 열 차례 수상했고, 김한수 코치도 여섯 번 황금 장갑을 손에 넣었다. 1998~1999년과 2001~2003년에는 다섯 차례나 골든글러브를 동반 수상하기도 했다. 이승엽 감독이 2004∼2011년 일본프로야구에서 뛰는 동안 김한수 코치는 현역에서 은퇴한 뒤 2008년 삼성 타격코치로 부임했다. 이후 김한수 코치가 계속 팀을 지키고 이승엽이 2012년 삼성으로 복귀하면서 둘의 인연이 이어졌다.
2017년과 2018년 역시 두 사람에게는 특별했다. 김한수 코치는 2017년 삼성 사령탑에 올랐고, 이승엽 감독은 KBO리그 최초로 '은퇴 투어'를 하면서 선수 생활의 마지막 시즌을 보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는 함께 성화 봉송을 하기도 했다. 김 코치는 2019년을 끝으로 삼성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고, 이승엽 감독은 KBO 홍보대사와 방송 해설위원 등으로 활약하며 다른 길을 걸었지만 꾸준히 연락을 주고 받으며 인연을 이어왔다. KBO리그 최고 타자였던 이승엽이 감독으로서 묵직한 새출발에 앞서 선배 김 코치에게 가장 먼저 도움을 요청한 이유다. 이승엽 감독은 "오랜 시간 선배였던 김한수 코치님이 내게 깍듯하게 대할 때 불편하고 죄송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제 내가 감독이 됐구나' 자각하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김한수 코치는 "이승엽 감독이 불편하게 느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감독을 모시는 수석코치"라고 웃으며 "이승엽 감독과 두산이 좋은 성과를 내도록 돕는 게 내 역할"이라고 몸을 낮췄다. 또 두산 합류 이후 한 달간 이어진 마무리 캠프를 돌아보며 "모두 열심히 훈련했다. 좋은 선수들도 많이 보인다"며 "두산 선수들이 참 착하고 성실하더라. 재능 있는 선수도 많다. 이승엽 감독과도 '새 얼굴을 발굴해 한국 야구에 활기를 불어넣어 보자'고 얘기했다"고 귀띔했다.
#박진만 감독-이병규 코치 ‘국가대표 인연’의 발전
LG는 3개의 영구결번을 보유했다. '노송' 김용수의 41번, '적토마' 이병규의 9번, '용암택' 박용택의 33번이다. 그 영광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이병규 코치가 처음으로 LG의 줄무늬 유니폼을 벗고 삼성 라이온즈의 푸른 유니폼으로 갈아 입는다. 박진만 삼성 신임 감독의 수석코치로 일찌감치 내정됐다.
이승엽 감독이 삼성이 배출한 역대 최고의 타자라면, 이병규 코치는 LG 타격의 역사를 대표하는 타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7년 LG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이병규 코치는 그해 전 경기에 출장하면서 신인상과 골든글러브를 석권했다. 천부적인 타격 재능으로 1999~2001년 3년 연속 리그 최다 안타 1위에 올랐고, 1999년에는 30홈런-30도루 클럽에도 가입했다. KBO리그 통산 1741경기에 출전해 타율 0.311, 홈런 161개, 972타점, 147도루를 기록했다. 골든글러브도 일곱 차례 수상하면서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외야수로 이름을 날렸다. 3시즌(2007~2009년) 동안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뛰면서 265경기에서 타율 0.254, 홈런 28개, 119타점을 올렸다. 한국에서는 LG에서만 선수로 뛴 이병규 코치는 지도자 생활도 LG에서 시작했다. 2018년부터 LG에서 1군, 2군, 육성군을 오가며 타격 부문을 담당했고, 2022시즌 퓨처스(2군)팀에서 유망주 육성에 힘썼다.
박진만 감독과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에서 함께 국가대표로 뛴 것 외에 별다른 접점은 없다. 그러나 박진만 감독은 지난 시즌 직후 '대행' 꼬리표를 떼고 정식 사령탑에 오르자마자 두 살 선배인 이병규 코치에게 수석코치 자리를 제안했다. 대부분의 감독이 수석코치 자리에는 오랜 기간 친분을 이어온 최측근 인사를 영입하는데, 박 감독은 전혀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박 감독은 그 이유에 대해 "나는 조용하고 묵묵한 편이지만, 이병규 코치는 벤치에서 계속 선수들을 격려하면서 분위기를 띄우는 스타일이다. 나와는 다른 장점이라 내가 못하는 부분을 수석코치가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고 설명했다. 또 "수석코치지만 선수들의 타격에도 도움이 될 거다. 이병규 코치의 가장 큰 장점 가운데 하나가 선수들의 정신적인 부분을 잘 잡아준다는 점"이라며 "삼성에서 일하는 건 처음이지만, 선수들과 워낙 관계가 좋고 다른 코치들과도 친분이 두텁다. 잘 융화될 거라고 믿는다"고 힘을 실었다. 실제로 삼성 외야수 구자욱은 "이 코치님은 내가 야구를 하면서 워낙 존경하는 선배였다. 배울 점이 정말 많기 때문에 많은 걸 여쭤보고 배우면서 좋은 시즌을 보내고 싶다"고 기대를 표현했다.
23년간 한 팀에만 몸담았던 이병규 코치에게 'LG를 떠난다'는 건 쉽지 않은 결심이다. 이 코치는 박 감독의 영입 제안을 받고 오랜 고민의 시간을 거쳤다. 때마침 호주 프로야구에서 뛰는 한국팀 질롱코리아의 사령탑으로 선임돼 바쁜 겨울을 보내던 중이기도 했다. 이 코치는 호주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박 감독과 동행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출국 전 인터뷰에서 "많은 분들이 내 진로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고맙게 생각한다"며 "우선 질롱코리아에 집중하고, 이후 어디서든 즐겁게 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질롱코리아의 2022~2023시즌은 오는 22일 끝난다.
#염경엽 감독-김정준 코치, 1년 전에 약속한 사이
넥센(현 키움) 히어로즈와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를 거쳐 LG 사령탑으로 다시 돌아온 염경엽 감독 역시 수석코치 자리에 의외의 인사를 영입했다. 지난해 통합우승팀 SSG의 데이터센터장을 역임한 김정준 수석코치다. 이유도 남다르다. 염 감독은 "나와 야구로 싸울 수 있는 사람을 수석코치로 쓰고 싶었다"고 했다.
김성근 전 한화 감독의 아들로도 유명한 김 코치는 충암고와 연세대를 졸업하고 LG에 입단해 내야수로 뛰었지만, 현역 시절 성적은 초라했다. 1992년 5경기에 출전해 타율 0.143(14타수 2안타)를 기록한 게 전부다. 그러나 이후 LG의 제안을 받고 전력분석원으로 변신한 뒤 새로운 날개를 달았다. 리그 최고 수준의 데이터 분석과 활용 능력을 앞세워 구단과 선수의 신뢰를 받는 전력분석 전문가로 거듭났다. LG 이후에도 SK와 한화 이글스에 몸담았고, 2006년과 2013년 WBC,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등에서 국가대표팀 전력분석도 맡았다. 그 경험을 살려 방송 해설위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염 감독과 김 코치의 결합이 더욱 놀라운 건, 두 사람이 지난해까지만 해도 밥 한 번 같이 먹은 적 없는 사이라는 점이다. 염 감독이 김 코치에게 러브콜을 보낸 시점도 LG 감독이 됐을 때보다 한참 전이다. 염경엽 감독은 "김정준 코치와 같은 팀에 소속됐던 적도 없고, 따로 식사도 한 적이 없다. 지난해 미국에서 산책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마음을 정하고 연락해 '내가 언젠가 감독이 되면 수석코치로 함께하자'고 제안했다"고 했다. 또 "김정준 코치에게 '야구를 폭넓게 봐달라'고 요청했다. SK에선 모두 나만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라 많이 힘들었다"며 "김 코치가 (아버지인) 김성근 감독님 밑에서 경기 운영을 습득했을 테니 내게 또 하나의 방안도 생기는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정준 코치는 "염 감독님이 1년 전에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하셨다. 그땐 여러 사정으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최근 LG 감독으로 선임된 뒤 전화로 내게 '준비하라'라고 하시더라"며 "이게 진짜 현실로 이뤄지는 것인가 싶었다. 염 감독님의 경기 준비 과정 등과 구체적인 목표 수치 등을 보면서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흥미를 느끼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코치는 또 "선수들의 기술은 나보다 훨씬 야구를 잘하셨던 코치분들이 지도하시는 게 맞다. 나는 내 특기를 살려 감독님과 게임 플랜을 잘 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그동안 열한 번 한국시리즈에 올라 다섯 번 우승을 했다. 올해는 열두 번째 한국시리즈에 올라 여섯 번째 우승을 해서 승률 5할을 꼭 채우고 싶다"고 다짐했다.
#수석코치 셋 배출한 SSG
김한수·이병규·김정준 코치 외에도 NC 다이노스와 한화, SSG의 수석코치가 바뀌었다. 전형도 SSG 3루 주루코치가 강인권 NC 신임 감독의 부름을 받아 창원으로 내려갔고, 이대진 SSG 불펜코치는 한화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의 수석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LG로 간 김정준 코치까지 포함하면 3개 구단의 수석코치가 SSG 코치 출신으로 채워진 셈이다.
전형도 코치와 이대진 코치는 2021년 SSG가 나란히 외부에서 영입한 인사였다. 'SK 왕조' 시절의 멤버들로 코칭스태프를 꾸릴 때 구단이 직접 선택했던 코치들이다. 둘 다 2년 만에 수석코치로 '영전'해 다른 팀으로 떠나게 됐다.
전형도 코치는 현역 시절 두산과 한화에서 뛰었다. 은퇴 후 휘문고 야구부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프로로 건너온 뒤에는 두산과 한화에서 코치 생활을 하면서 강 감독과 한솥밥을 먹은 인연이 있다. 두 사람은 평소 야구관이 비슷해 자주 대화를 나누며 공감대를 쌓아 온 사이다. 지난해 감독대행을 맡은 강 감독이 정식 사령탑으로 취임한 후 구단에 전형도 코치의 영입을 강력히 요청했다.
KIA 타이거즈의 레전드 출신인 이대진 코치는 2013년 한화에서 프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코치의 길을 열어준 한화로 10년 만에 돌아가 외국인 사령탑인 수베로 감독을 보필한다. 지난 2년은 수베로 감독과 함께 온 웨스 클레멘츠 수석코치가 감독의 옆자리를 지켰지만, 클레멘츠 코치가 지난해 9월 건강상의 이유로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빈 자리가 생겼다. 한화는 외국인 지도자들과 국내 코치들 사이에서 원활하게 소통할 수석코치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이 코치를 적임자로 택했다. 손혁 한화 단장은 "이 코치는 다양한 경험을 쌓은 유능한 지도자다. 경기를 냉철하게 바라보는 눈이 있고, 선수들의 신뢰가 두텁다"며 "경기 중 외국인 투수와 대화하려 마운드에 올라갈 때 통역이 필요 없을 정도로 영어 실력도 좋다. 수베로 감독 곁에서 가교 역할을 잘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SSG의 코치진 유출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세리자와 유지 퓨처스팀(2군) 배터리코치가 두산의 영입 제안을 받고 '이승엽호'에 승선했다. 두산이 2021년까지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오르는 동안 수많은 두산 코치들이 다른 팀의 러브콜을 받고 떠났는데, SSG 역시 우승과 함께 같은 고충(?)을 겪고 있는 모양새다. 이로 인해 SSG도 코칭스태프 역할도 조정이 불가피했다. 수석코치의 얼굴도 달라졌다. 원래 수석코치를 맡았던 김민재 코치가 벤치 코치로 이동하고, 조원우 벤치코치가 수석코치 역할을 하게 됐다. SSG는 "조원우 코치가 지난해 벤치 코치로서 김원형 감독과 선수단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판단해 보직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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