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지옥’ 성공 후 줄잡아 30편 식상한 포맷…초기 시장 선점 ‘환승연애’ ‘나는 솔로’ 등만 명맥 유지
#그나마 성공한 프로는 차별점 확실
2022년 12월 ‘솔로지옥’의 속편이 공개됐다. 이후 몇몇 언론은 ‘제2의 프리지아는 없었다’는 내용이 담긴 기사를 보도했다. 프리지아는 ‘솔로지옥’이 낳은 인플루언서다. 걸그룹 블랙핑크의 멤버 제니 닮은꼴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제2의 프리지아’를 꿈꾸는 이들이 숱한 연애 예능에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다.
하지만 ‘솔로지옥2’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글로벌 톱10 TV쇼(비영어) 부문에서 7위에 오르는 성과를 냈지만, 시즌1이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한국 예능 최초로 해당 부문 3주 연속 톱10을 달성한 것을 고려하면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 지옥도와 천국도를 오가는 똑같은 포맷에 출연진만 바꾼 모양새인데, 식상함을 느낀 시청자들이 더 이상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는 다른 연애 프로그램도 매한가지다. 넷플릭스에 맞서 또 다른 OTT 플랫폼인 티빙이 ‘러브캐처 인 발리’, 웨이브가 ‘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을 내놨다. 하지만 그 제목조차 생소하게 느끼는 이들이 적잖다. ‘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은 드라마로도 제작된 인기 동명 웹툰을 모티브 삼았지만 대중의 반응은 차가웠다.
‘사랑의 스튜디오’,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등 짝짓기 예능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 TV 방송들도 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KBS 2TV ‘이별도 리콜이 되나요?’, tvN ‘스킵’ 등이다. 하지만 이 역시 별다른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게다가 ‘스킵’의 진행자는 ‘국민 MC’라 불리는 유재석이다. 그가 ‘런닝맨’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는 배우 전소민과 함께 도전장을 냈지만 1%대 시청률에 머물고 있다.
그나마 빠르게 시장에 진입해 시즌제로 자리 잡은 연애 예능들은 선전했다. 티빙 ‘환승연애’를 비롯해 ENA ‘나는 솔로’, MBN ‘돌싱글즈’ 정도다. 성공 사례로 꼽히는 연애 예능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각각 확실한 차별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환승연애’는 남녀 집단에 예전 사귀었던 연인을 심어놓았고, ‘나는 솔로’는 ‘선남선녀의 만남’이라는 판타지를 배제하고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남녀의 적나라한 만남에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돌싱글즈’는 한 차례 결혼에 실패한 ‘돌싱’(돌아온 싱글)들이 새로운 만남을 추구한다는 콘셉트다. 적절히 자극적인 요소를 버무린 데다, 이미 고정 팬층을 확보한 프로그램인 터라 도토리 키 재기 수준인 연애 예능 홍수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한 방송 관계자는 “결국 연애 예능이 제작되던 초창기에 자리를 선점한 프로그램들만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 이후에 나온 연애 예능은 이 프로그램들이 만들어놓은 큰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면서 “향후 등장할 유사한 프로그램을 두고도 시청자들의 옥석 고르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복되는 ‘쏠림 현상’의 폐해
‘쏠림 현상’은 방송가의 고질적인 병폐다. 일단 ‘떴다’는 반응이 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유사 프로그램이 쏟아지며 출혈 경쟁을 벌인다.
지난 20년을 돌아보자. 2000년대 중반은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대였다. ‘무한도전’과 ‘1박2일’이 쌍벽을 이뤘다. 이후 ‘패밀리가 떴다’ 정도가 후발 주자로 주목받았지만, 그 외 대동소이한 프로그램들은 오래 가지 못했다.
그 배턴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이어받았다. 2009년 ‘슈퍼스타K’의 성공 이후, ‘위대한 도전’, K팝 스타’,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 ‘톱밴드’ 등을 비롯해 MBC는 자사 아나운서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인 ‘신입사원’도 있었다.
먹방과 육아 방송이 그 뒤를 이었다. 요리 연구가 백종원을 필두로 세운 ‘집밥 백선생’,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골목식당’ 등 각종 쿡방과 먹방이 한동안 방송가의 대세였다. ‘냉장고를 부탁해’와 ‘맛있는 녀석들’ 등 인기 프로그램이 여러 채널에서 배출됐고, 여러 요리사들이 ‘셰프테이너’(셰프+엔터테이너)로 방송가 전면에 등장했다.
육아 방송의 경우 ‘아빠 어디가’ 이후 ‘슈퍼맨이 돌아왔다’, ‘오 마이 베이비’ 등이 등장했고, 결혼한 연예인들이 자연스럽게 육아 예능을 통해 자녀들을 공개하는 수순을 밟았다.
하지만 유행은 돌고 돈다. 2020년을 전후해 다시금 오디션 예능이 각광받았다. 다만 소재가 달라졌다. 비 연예인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들이 기성 가수나 연습생들의 대결로 변모해 ‘프로듀스 101’, ‘쇼미더머니’ 등이 인기를 끌었다. 또한 앞선 오디션 예능에서 소외됐던 트롯이 뒤늦게 주목받으며 ‘미스터트롯’이 최고 시청률 35.7%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낳았다.
또 다른 방송 관계자는 “쏠림 현상과 이로 인한 하향평준화, 또 다른 유행의 등장과 소멸,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아이템 등은 방송가의 생리”라면서 “결국 시장의 흐름을 빨리 읽고, 경쟁이 치열해지기 전 시장에 진입해 선점 효과를 노려야 이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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