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고달픈 하루를 보낸 사람들을 열광케 한 국민 스포츠가 있었으니 바로 복싱이다.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들었다.
그 가운데 두 눈을 반짝이며 경기를 지켜보는 한 소년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김득구. 유난히 가난했던 집에서 태어나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했던 득구는 가족들 몰래 홀로 상경해 닥치는 대로 일하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맨주먹 하나로 인생 역전을 이룰 수 있는 복싱은 한줄기 빛이요 희망이었다. 득구는 무작정 당대 최고의 복싱 명문 '동아체육관'을 찾아갔다. 패기 있게 체육관 생활을 시작한 김득구는 직접 개발한 독특한 운동법과 꺾이지 않는 집념으로 관장님의 눈도장을 받게 되고 그렇게 첫 번째 기회가 찾아온다.
프로 데뷔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승승장구하는 김득구. 마침내 동양 챔피언 김광민과의 승부를 앞두게 된다. 복싱계는 입을 모아 탄탄한 실력을 갖춘 복싱 스타 김광민의 승리를 예측했다. 하지만 득구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당시엔 드물었던 공격적인 성향의 왼손잡이 복서 김득구는 '링위의 불도저' 김광민을 압도하며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두게 되고 새로운 동양챔피언이 된 그의 이름이 신문 곳곳에 대서특필된다.
이제 세계챔피언까지 단 한 계단만이 남은 상황으로 당시 한국 복싱 선수들에게 무덤이나 다름없었던 미국 원정 경기가 펼쳐졌다. 상대는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WBA 라이트급 세계챔피언 레이 '붐붐' 맨시니로 24전 23승 1패의 전적을 가진 세계 최강의 복서였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처럼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득구가 승리할 확률은 희박했다. 그러나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맨시니와의 경기를 승낙했다. 1982년 11월 13일 마침내 복싱 강국 미국이 배출한 세계 챔피언 레이 '붐붐' 맨시니와 동양 작은 나라의 무명 복서 김득구가 라스베이거스 특설링에 올랐다.
맨시니의 일방적인 승리가 될 것이라 예상되었던 경기는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치열했다. 오히려 죽을 각오를 하고 덤비는 도전자 김득구에게 챔피언 맨시니가 밀리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한 남자의 인생을 건 도전 복싱 역사상 가장 뜨거운 논란을 낳았던 그날, 그 경기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펼쳐진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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