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인지 야당들은 선거 때면 으레 그런 류의 선거 구호를 앞세운다. 절대빈곤과 독재억압의 시절에 어울리는 선거구호를 선진국 문턱에 와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같은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4·11 총선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통합당의 주요한 선거 구호는 ‘정권심판’이었다. 물론 선거는 권력의 교체 여부를 심판하는 자리다. 선거에서 야당은 여당의 실정을 집중 부각시켜 심판의 근거를 유권자에게 제시하려고 하고, 여당은 잘했다고 강변하거나 변명하게 마련이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권의 실정(失政)에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연좌책임을 묻는 뜻으로 ‘이명박근혜’라고 했다. 박근혜 위원장은 새누리당은 더 이상 한나라당이 아니라고 꼬리자르기를 하면서 ‘잘못된 것은 고쳐 더 잘하겠다’며 달아났다.
권력이 왕조에서처럼 세습되지 않는 한, 같은 정당에서도 사람이 바뀌면 과거청산이라는 이름의 정권심판은 뒤따르게 마련이다. 굴곡 많은 한국의 현대사에서 국민들은 그런 장면들을 수없이 목격해왔다.
정권심판은 그것이 어떤 형태이건 과거에 매달리게 한다. 과거지향의 선거 전략은 증오와 분노, 시기와 질투와 같은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을 최대한 자극해야 한다. 한국의 선거가 네거티브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정당의 입장에선 그것이 가장 손쉬운 승리의 방정식이기도 하다. 천년의 역사를 지닌 지역정서 문제는 한국적 과거지향 선거 전략의 원형이다. 이번 총선에서 영호남의 지역정서는 다시 강고해졌다.
과거로 인해 희생되는 것이 미래다. 미래는 원래 불확실하고 위험하고 어렵기 때문에 표로 연결 짓기가 쉽지 않다. 정당들이 선거 전략으로 내세우기를 꺼리는 이유다. 기껏해야 복지 포퓰리즘 정도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만년 야당이 “우리에게도 한 번만 집권 기회를 달라”면서 외친다면 더욱 진한 호소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허나 민주통합당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10년 동안 나라살림을 책임졌던 정당이다. “국정운영자였을 때 우리도 ‘초보 짓’을 많이 했다”고 얘기하는 게 맞는 순서다.
여러 번의 정권교체를 통해 국민들은 경험칙으로 알게 됐다. 권력은 언제나 잡은 사람들끼리만 누리는 것이고, 세상을 바꾼다지만 권력을 잡은 사람들의 삶만 바뀌지, 서민의 삶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러니 야당은 이명박 정권만 심판하면 청년실업도 비정규직도 없어질 것처럼 말해선 안 된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실패했다면 그런 자기반성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12월의 대통령 선거는 미래로 승부하는 선거가 되기를 바란다.
한남대 교수 임종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