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 작가, 복수 조력자 ‘염혜란’ 가장 먼저 찜…‘19금’ 이유는 표현 수위 아닌 ‘사적 복수’ 그린 탓
‘더 글로리’는 10대 시절 동급생들에게 당한 학교폭력(학폭)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주인공 문동은(송혜교 분)이 남은 생을 걸고 처절한 복수를 감행하는 이야기다. 기획 단계에서는 글로벌 히트작 ‘태양의 후예’를 함께했던 송혜교와 김은숙 작가의 만남으로 화제를 뿌렸지만, 작품이 공개된 이후에는 학폭 가해자를 응징하는 주인공의 처절한 복수극에 몰입한 시청자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성공한 작품은 다양한 뒷이야기가 따르기 마련. ‘더 글로리’도 예외일 수 없다. ‘파리의 연인’부터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까지 로맨스 코미디 장르를 이끈 김은숙 작가가 돌연 ‘19금 학폭 복수극’ 카드를 꺼내든 이유부터 송혜교의 변신 선언에 궁금증이 인다. 또한 극 중 사건과 닮은 실화 사건도 주목받고 있다. 넷플릭스는 “본격적인 복수극”을 담은 파트2의 8부작을 3월 10일 공개한다. 그 전에 익혀두면 좋을 ‘더 글로리’에 얽힌 뒷이야기를 소개한다.
#김은숙 작가가 ‘로코’ 대신 ‘학폭’ 선택한 이유
달콤하고 환상적인 사랑 이야기에 주력했던 김은숙 작가가 돌연 학폭 소재의 사적 복수극에 ‘꽂힌’ 데는 고등학생인 딸의 질문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학폭 소재의 드라마를 고민하던 작가는 “혹시 나 때문에 우리 딸이 불필요한 관심을 받지 않을까, 다른 오해로 번지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돌이켰다. 이런 엄마의 걱정에 딸은 “언제적 김은숙이냐”고 되받았다.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뜻이었다.
모녀의 대화가 여기서 끝났다면 ‘더 글로리’는 탄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딸은 다시 물었다. “엄마는 내가 죽도록 누군가를 때리면 가슴 아플 것 같아? 아니면 죽도록 맞고 오면 가슴 아플 것 같아?”라는 질문이었다. 딸의 물음이 “충격”으로 다가왔다는 작가는 “짧은 순간 많은 이야기가 확 펼쳐졌고 바로 작업실로 가서 컴퓨터를 켰다”고 했다. 딸의 질문들이 ‘더 글로리’가 세상에 나온 씨앗이 됐다.
#드라마 표현 수위 ‘19금’ 등급 맞춘 까닭
‘더 글로리’에서 주인공 문동은은 아무런 이유 없이 학폭의 대상이 된다. 재력과 권력을 갖추고 담임교사는 물론 경찰까지 ‘뒷배’로 두는 가해 학생들은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문동은을 괴롭힌다. 표현 수위가 높은 폭력 묘사 장면도 자주 등장한다. 때문에 작품 자체의 평가와는 별개로 ‘학폭 장면 때문에 보기 불편하다’고 호소하는 의견도 많다.
하지만 제작진이 학폭 묘사 때문에 드라마 시청 등급을 ‘19금’에 맞춘 건 아니다. 그보다는 성인이 된 문동은이 가해자들을 찾아내 복수하는 과정이 사법체계가 아닌 ‘사적 복수’의 영역에서 벌어진다는 점 때문이었다. 법의 테두리에서 정당하게 벌이는 가해자에 대한 단죄가 아닌, 협박 등 불법적인 행위는 물론 살인까지 불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실행하는 사적 복수가 자칫 10대 시청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성인 시청자가 보고 올바르게 판단하길 바란다”는 뜻에서다.
#‘캐스팅 1순위’는 송혜교 아닌 염혜란
‘더 글로리’는 초반부터 학폭 피해자 역할을 송혜교가 맡는다는 사실로 화제가 됐지만 정작 드라마가 처음 기획될 때 작가가 가장 먼저 캐스팅을 간절히 원한 배우는 송혜교가 아닌 염혜란이었다.
염혜란이 맡은 강현남은 악랄한 가정 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을 죽여달라’는 조건으로 문동은의 복수에 동참해 조력자가 되는 인물이다. 피해자끼리 연대를 이뤄 시청자로부터 가장 열렬한 응원을 받는 존재다. 김은숙 작가는 문동은과 연대하는 강현남 역할을 설계하면서 가장 먼저 염혜란을 떠올렸다고 했다. 주인공 문동은조차 누가 맡아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던 시기였다. 김 작가는 “마음속 첫 번째 캐스팅 염혜란을 염두에 두고 쓰니 대본이 진짜 잘 써졌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과연 염혜란이 ‘더 글로리’에 출연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염혜란이 최근 ‘다작’ 행보를 벌이는 것도 작가를 불안하게 했다. 인터넷에서 주기적으로 염혜란의 스케줄을 검색까지 했던 김 작가는 “차기작 소식이 들리면 속상했다”고 돌이켰다.
#‘더 글로리’에 스며든 실화 사건
드라마가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가늠하는 조건 가운데 하나는 작품이 ‘허구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고 ‘사회적인 메시지’로 확장될 때다. ‘더 글로리’도 마찬가지. 극에 등장하는 설정으로 인해 실화 사건이 다시 주목받는 상황도 벌어진다.
먼저 문동은이 당한 학폭 피해는 2006년 청주의 한 여자중학교에서 벌어진 학폭 사건과 일면 겹친다. 학생 3명이 동급생 1명을 20여 일간 폭행한 사건으로 가해자들은 피해자에게 돈을 요구하고 응하지 않은 날엔 교실에서 뜨겁게 달군 미용도구 고데기(전기머리인두)로 피부를 지지는 행위까지 벌였다. 심각한 화상을 입은 피해자의 모습은 당시 사건을 보도한 뉴스 기사 등으로 확인할 수 있다. ‘더 글로리’에서도 가해자들은 고데기와 다리미로 문동은의 몸을 지지는 폭력을 자행한다. 그 폭력의 상처는 성인이 된 문동은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또한 문동은의 복수에 동참하는 젊은 의사 주여정(이도현 분)의 처지는 2018년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벌어진 실화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병원 한복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살해돼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는 주여정의 사정과 닮았다. 극 중 주여정의 부친은 병원 원장으로 신뢰받던 의사였지만 자신이 치료하던 환자에게 살해당했다. 이로 인해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주여정의 이야기는 파트2에서 깊이 있게 전개될 예정이다.
#송혜교 촬영 전 2개월간 곤약밥 먹은 이유
김은숙 작가는 송혜교에게 문동은 캐릭터를 제안하면서 학폭으로 상처투성이가 된 몸을 주여정에게 보여주는 장면이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속옷만 착용하고 몸을 드러내야 했기에 혹시 불편할지 모른다는 걱정에 먼저 송혜교에게 의견을 물었다. 돌아온 답은 “두 달의 시간을 달라”였다.
이에 작가는 “운동을 하려고 하냐”고 다시 물었다. 운동을 위해 필요한 시간은 아니었다. 송혜교는 “문동은을 맡고 나서부터 ‘예뻐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며 “진짜 앙상한 몸을 통해 보는 분들의 마음이 아프길 바랐다”고 했다. 앙상하고 왜소한 몸을 위한 다이어트에 별다른 특효약은 없었다. 탄수화물 등을 끊은 송혜교의 선택은 곤약밥이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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