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본선 출전 불발 아쉬워…홍명보 선배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한 존재”
차범근 감독을 비롯해 홍명보, 김병지, 최용수, 이동국 등 당시 주역들은 대부분 여전히 그라운드 안팎에서 한국 축구에 힘을 보태고 있다. 반면 당시 대표팀의 일원이었던 수비수 장대일은 일찍 축구계에서 자취를 감춰 궁금증을 자아냈다. 오랜 기간 축구장을 떠나 있었지만 "여전히 축구팬"이라는 장대일을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갑작스레 끝낸 선수 생활
대학생 신분으로 성인 대표팀에 발탁, 월드컵 본선 티켓 확보에 힘을 보탰던 장대일은 프로 무대에서 단 6시즌만 보내고 현역에서 물러났다. 이렇다 할 설명 없이 갑작스러운 은퇴, 그에겐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스스로 내 발로 걸어 나온 경우다(웃음). 젊었을 때고 철이 없었던 것 같다. 문득 '내가 왜 인생을 축구에만 바쳐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20년 가까이 축구만 했으니 다른 것을 해보고 싶었다. 은퇴 이후 장사를 시작했다. 강남 압구정동에서 이자카야를 운영했다(웃음)."
큰 부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주변이나 구단 측에서 은퇴를 종용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당시 부산에서 뛰고 있었는데 구단은 좋은 조건에 계약을 제시했다. 잠시 고민도 했지만 결국 선택은 나가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자카야 사장님을 경험한 그는 현재 '장대일 본부장'으로 불린다. "동생이 신축 아파트에 에어컨 등 가전제품을 납품하는 사업을 한다. 그 사업체 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다"며 "주로 지방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다. 여전히 '축구선수 장대일'을 알아봐주고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아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너무 빨리 축구계를 떠난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현재 생활에 만족하며 지내고 있지만 그때의 선택이 후회스러울 때가 있다. 축구장 밖의 화려한 모습을 쫓았던 것 같다. 지나고 나서 하는 이야기지만 좀 더 선수생활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지도자로 그라운드 복귀를 고려했던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생각만 해봤다"면서 "밖에 나갔다가 잘 안 풀려서 돌아가는 느낌을 주기 싫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운 생각이다.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은데 그땐 어릴 때라 쓸데없는 자존심이 있었다"고 했다.
장대일이 선수생활을 떠올리면 아쉬움이 남는 부분 중 하나는 월드컵이다. 그는 "최근 월드컵도 한 명의 순수한 팬으로 정말 즐겁게 봤고 열심히 응원했다. 그럴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는 월드컵 대표로 뽑혔지만 경기에는 뛰지 못한 점이 참 아쉽다. 당시 차범근 감독님이 조별리그 3차전(벨기에전)에 준비하라는 말씀까지 하셨는데 두 번째 경기 이후 경질되셨다. 억울한 마음이 든다"며 웃었다.
#'대표선수 장대일'의 추억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 내 그의 기록을 살펴보면 연령별 대표 기록 없이 A매치에만 15회 출전했다. 다수의 대표팀 선수들이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것과 대조적이다.
"자랑하는 것 같아서 쑥스럽지만 대표팀 발탁 전 어릴 때도 나름 각광받는 선수였다(웃음).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전국대회 3관왕을 했고 그해 최우수선수상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는 8월 이후 출생 선수만 주니어 대표, 청소년 대표에 뽑혔다. 1년 형들과 함께 뛸 실력까지는 아니었나보다(웃음). 대학교 1학년 때 대학선발팀은 해봤다."
학창시절 내내 유망주로 주목받은 그는 대표팀 유니폼을 입으며 '세상은 넓다'는 것을 느꼈다. 유럽 강팀과 맞대결에서 세계의 벽을 절감했다. 그는 "월드컵 전 유고 원정 평가전이 있었는데 프로 선수와 고등학생이 맞붙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며 "월드컵에서 만난 네덜란드는 더 강했다. 당시 국내에서 가장 빠른 선수가 최성용 형(현 수원 삼성 코치)이었다. 그런데 네덜란드 선수들은 그 형을 10m씩 따돌리고 뛰더라"라고 회상했다.
비록 경기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예선에서 활약 등으로 장대일은 국내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그 배경에는 수려한 외모도 한몫 했다. 1998 프랑스 월드컵 대회 중 브라질 언론이 출전 선수들의 사진을 놓고 미남을 뽑는 투표를 진행한 결과 그가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려 화제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 '잘생긴 외모'가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실력보다 외모로 주목받는 상황이 싫었다. 선수가 매 경기 잘할 수는 없다. 어쩌다 경기 중 실수를 하면 '실력보다 얼굴 덕분에 대표팀에 뽑힌다'는 지적이 나왔다. 휴가 때 어쩌다 술자리를 가지면 그걸 보고 '잘 노는 선수'라는 선입견이 생겼다. 결국 내가 이겨냈어야 하는 건데 그러지 못했다. 좀 예민한 성격이기도 했던 것 같다."
장대일은 당시로선 드물던 '공을 잘 다루는 수비수'였다. 차범근 감독은 주전 스위퍼 홍명보를 미드필드로 올리고 장대일을 기용하는 전술을 쓰기도 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수비로 뛰다가 필요할 땐 공격으로 올라가 골을 넣기도 했다. 프리킥도 전담해서 찰 때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그는 '포스트 홍명보'로 불렸다.
#홍명보,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
아르헨티나에 제2의 디에고 마라도나, 제2의 리오넬 메시가 수백 명이 있듯, 국내에서는 유망한 수비수가 나오면 항상 '포스트 홍명보', '제 2의 홍명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장대일은 수십 명의 포스트 홍명보 중 첫 타자 격이다. 많은 유망주들이 레전드와 비교 탓에 어려움을 겪은 것처럼 이 같은 비유가 장대일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그런 이야기는 기분 좋은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홍명보 형님은 내가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배다. 물론 정말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는 축구인이지만 나에겐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한 존재다."
이어 그는 "대표팀 시절 경기마다 수당을 받았는데 주전과 비주전 격차가 컸다. 그런데 명보 형이 축구협회에 그 중간 정도 금액으로 평등하게 지급해 달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결국 축구협회는 비주전 선수들의 수당을 주전 선수만큼 올려줬다"며 "당시 나를 포함한 막내급 선수들은 명보 형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고 웃었다.
장대일은 어려운 선배 홍명보에게 특별한 선물을 받기도 했다. "한번은 치료실에서 그 시절 인기가 많았던 엑스재팬(X-Japan) 노래를 듣고 있었는데 명보 형이 관심을 가졌다. 그러더니 '일본 노래를 듣냐'면서 뒷통수를 톡 치시더라"라며 "본인은 일본 J리그에서 뛰면서 나에게 그렇게 핀잔을 주니 의아했다(웃음). 그런데 그다음 대표팀 소집 때 엑스재팬 음반을 한 보따리 사다 주셨다. 그런 선배가 어디 있나"라고 말했다.
장대일은 "나는 인터넷을 해도 댓글을 쓰지 않는다. 그런 쪽에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평생 댓글 딱 두 개를 달아봤다"며 "명보 형이 대표팀 감독을 하면서 너무 과도하게 비판을 받으셨다. 그때 옹호하는 댓글을 직접 썼다.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겐 명보 형이 그만큼 특별한 존재"라고 말했다.
오랜 기간 그라운드를 떠나 있던 그는 최근 축구계 선후배들과 오랜만에 해후했다. 대한축구협회 축구사랑나눔재단이 사회공헌을 위해 지난해 11월 창단한 '사랑나눔 FC'에 참가하면서다. 그는 "오랜만에 박창선·조영증 등 대선배님들부터 동기인 이상헌까지 축구인들을 한 자리에서 만났다"며 "정말 반가웠고 앞으로는 그런 자리에 적극적으로 참석하려 한다. 불러만 주신다면 마다 않고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말 오랜만에 공도 찼는데 도저히 안되겠더라. 다이어트를 좀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며 웃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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