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 의원의 뇌물 의혹 재판은 이미 진행 중이다. 김 전 회장이 해외 도피 중이었던 2022년 10월 이 전 의원과 방용철 쌍방울그룹 부회장이 구속기소되면서다. 1월 17일까지 열린 7번의 공판에선 쌍방울그룹 임직원, 그리고 대북사업을 함께 추진한 전 아태평화교류협회 임직원에 대한 증인 신문이 주로 이뤄졌다.
여전히 회사에 몸담고 있는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쌍방울그룹 임직원들은 증언 진위를 파고드는 상당수 질문에 "전해 들었다" 혹은 "정확히는 모른다"고 답했다. 쌍방울그룹 계열사 한 임원은 증인석에 앉기 전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증인 신문 이런 자리가 굉장히 무섭고 부담이 갑니다. 피고인으로 계신 방용철 부회장님은 개인적으로 사회적인 형님 관계에 있고 직장에서는 상관입니다. 혹여나 잘못된 기억으로 말씀드리는 것으로 여기 계신 두 분한테 피해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와 달리 명쾌하게 증언을 이어간 인물도 있었다. 1월 13일 증인으로 출석한 헤어디자이너 A 씨다. 이 전 의원은 2017년 3월부터 2021년 9월까지 30여 차례 A 씨에게 헤어스타일을 맡겼다. 이때 쌍방울그룹이 이 전 의원에게 제공한 것으로 의심되는 법인카드가 사용됐다. A 씨는 2022년 검찰 조사를 받기 전까지 이 전 의원의 이름조차 몰랐다. 그만큼 사건 핵심과 동떨어진 인물이다.
하지만 A 씨 증언은 이번 공판 쟁점 중 하나인 쌍방울 법인카드 실사용자를 밝히는 데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 전 의원 변호인은 이 전 의원이 사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법인카드 실사용자는 이 전 의원 측근 B 씨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A 씨 증언 내용을 보면 이 전 의원과 B 씨 중 실사용자가 누구인지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단순한 측근 이상의 관계’로 의심되는 정황 때문이다.
A 씨는 검찰 조사를 받기 전까지 이 전 의원과 B 씨를 부부라고 생각했다. 미용실을 항상 함께 방문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30여 차례 방문 중 절반 정도는 주말이었다. 주말에 등산복 차림으로 함께 온 적도 있었다. 또한 A 씨가 남편, 아내라는 호칭을 써도 이 전 의원이나 B 씨는 이를 정정한 적이 없었다. B 씨가 이 전 의원 비서라고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검찰 조사에선 B 씨가 이 전 의원을 위해 미용실 예약을 할 때 가명을 쓴 사실도 밝혀졌다.
이 전 의원 변호인은 A 씨의 과도한 추측이라는 취지로 반대 신문을 이어갔다. 하지만 A 씨는 변호인 질의를 대부분 반박했다. 다음은 A 씨 증인 신문 중 일부 내용이다.
변호인: 저도 옛날에는 미용실에 갈 때 와이프랑 같이 가든지 친구들이랑 같이 가든지 했다. 남자들이 미용실 갈 때 남녀 같이 오는 경우는 흔히 있지 않나.쌍방울그룹이 이 전 의원에게 제공한 뇌물로 의심 받는 것은 크게 세 가지. 이 전 의원이 2018년 6월 쌍방울 사외이사를 그만둔 뒤 제공 받은 △법인카드 4장 △법인차량 3대 △이 전 의원 측근 B 씨에 대한 허위급여다. 검찰은 이 전 의원이 제공받은 법인차량 한 대를 추가로 확인했다며 1월 9일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이후 검찰은 공소장 보완이 필요하다며 우선 공소장 변경 신청을 철회하겠다는 의사를 1월 16일 밝혔다.
A 씨: 아니다. 흔하진 않다. 있긴 있지만 매번 같이 오는 경우는 없다.
변호인: 증인(A 씨)이 어떤 단골손님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정확히 기억하기 어렵지 않나.
A 씨: 웬만하면 기억한다.
변호인: 증인은 검찰 조사에서 B 씨가 피고인 이화영을 남편이라고 호칭 했던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기억이 분명한가.
A 씨: 분명하다. 호칭 했을 때 성함을 이야기한 적이 아예 없었다. 제 기억으로는 남편이라고 이야기했던 거 같다.
변호인: 보통 쑥스러워서 그럴 수 있다.
A 씨: 그런데 제가 "남편분 머리 한 번만 봐주시겠어요?" 했을 때 한 번도 아니라고 한 적이 없다.
변호인: B 씨에게 물어봤다. 왜 거부를 안 했느냐고. "사적으로 친한 사람도 아닌데 꼭 그래야 하나"라고 답하더라. 적극적으로 부인하거나 정정하기 어색한 상황 아니었나.
A 씨: 아니라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매번 머리 자를 때마다 물어봤다.
변호인: 이화영과 B 씨는 증인이 아내, 남편이라고 지칭하는데 민망하기도 하고 기분이 별로 안 좋았지만 굳이 즉석에서 아니라고 하기도 뭣해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A 씨: 전혀 기분 나빠 보이지 않았다.
뇌물로 의심되는 것 중 법인카드 금액이 가장 크다. 2972회에 걸쳐 총 1억 9950만여 원이 결제됐다. 검찰은 법인카드를 이 전 의원이 주로 사용했고 때때로 측근 B 씨가 썼다고 보고 있다. 반면 이 전 의원 변호인은 법인카드를 모두 B 씨가 사용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B 씨는 이 전 의원과 함께 1990년대 이상수 의원실에서 일했다. 이후에도 B 씨는 민주당 계열 선거캠프와 시민단체, 국회의원실 등 정치권에 몸담았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B 씨는 이 전 의원의 정치활동 비서 역할을 하면서 생활비를 지원받기도 했다. 또 B 씨는 2019년 6월부터 2022년 8월까지 쌍방울 인사총무팀 직원으로 허위로 이름을 올려 급여 총 1억 100만여 원을 받았다.
이 전 의원 변호인이 공판에서 공개한 진술조서에 따르면 B 씨는 검찰 조사에서 문제의 법인카드 4장에 대해 "제가 전적으로 사용했다"고 진술했다. 방용철 부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어떤 여자(B 씨) 연락처를 주면서 그 여자가 어려우니 도와주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반면 검찰은 공판에서 대형마트 결제 이후 이 전 의원 아내 이름으로 포인트가 적립된 영수증을 증거로 공개했다. 법인카드가 사용된 병원에서 확보한 이 전 의원 진료내역도 공개했다.
일요신문은 B 씨에게 쌍방울 법인카드 사용 등 관련 의혹에 관해 묻기 위해 1월 25일 연락했다. 하지만 B 씨는 "잘 모른다. 나중에 하겠다"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먼저 전화를 끊었다.
검찰은 이 전 의원이 쌍방울 사외이사 때 받은 법인카드를 2018년 6월 22일 사외이사 사임 후에도 계속 사용했다고 보고 있다. 이 전 의원은 이재명 경기도지사 당선 후 경기도 평화부지사로 내정되면서 사외이사에서 물러났다. 검찰은 쌍방울 측이 이 전 의원에게 법인카드를 계속 제공하면 문제가 될까봐 2018년 7월경 기존 법인카드 대신 쌍방울 인사총무팀장 개인 명의 법인카드를 지급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2019년 6월부터는 또 다른 쌍방울 법인카드가 이 전 의원에게 제공된 것으로 의심된다. 2019년 6월은 이 전 의원 측근 B 씨가 쌍방울 인사총무팀에 허위직원으로 등록된 시점이다. 이후 2021년 9월엔 B 씨 명의로 법인카드가 지급됐다. 2021년 10월 이 전 의원의 법인카드 의혹에 대한 언론 취재가 시작되자 B 씨 법인카드 사용은 중단됐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