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정킷방 업자·코리안 데스크 만나 사전조사…베드신 너무 셌다고? 캐릭터 단 한방에 보여준 신”
“원래는 17부작이었는데 드라마엔 적합하지 않은 편성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드라마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으니까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16부로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좀 더 압축한 것이 지금의 ‘카지노’예요. 처음 드라마를 만들다 보니 영화 같은 경우는 수치가 나오니까 흥행 여부를 알 수 있었는데 드라마는 알아볼 방법을 모르겠더라고요(웃음). 다행히 후반부 본격적인 이야기와 사건이 진행되면서 좋은 반응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덕분에 시즌 1이 끝나면서는 조금 안도의 한숨을 쉬었죠.”
돈도 빽도 없이 필리핀에서 카지노의 전설이 된 남자 차무식(최민식 분)이 살인사건에 휘말리면서 목숨을 건 최후의 베팅을 시작하게 되는 강렬한 이야기를 담은 ‘카지노’. 최민식이 24년 만에 선택한 드라마 복귀작인 데다 영화 '범죄도시',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 등을 연출한 강윤성 감독이 함께 한다는 이유로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처음 공개됐을 땐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었다. 방영 플랫폼인 디즈니 플러스가 국내에 충분한 시청자를 보유하지 못한 데다 초반 차무식의 과거 이야기가 너무 길게 늘어지면서 기존 시청자들의 유지는 물론이고 새 시청자들의 유입도 어렵게 했다는 이유였다. 강 감독 역시 그런 지적을 알고 있었다.
“요즘 드라마 트렌드가 ‘빠른 전개’라는 건 알았어요. 또 편집하던 때에 손석구 씨의 인기가 많이 올라간 것도 알아 (손석구가) 빨리 등장했으면 좋겠다는 시청자들의 니즈가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죠. 그런데 저희 이야기는 처음부터 차무식이란 인물을 쭉 따라가야지만 카지노에서 벌어지는 단순한 사건사고 뿐 아니라 깊이 있는 인물의 이야기를 볼 수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굳이 드라마의 인기를 위해서 앞부분 이야기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은 갖지 않았죠.”
이야기의 완성도를 위해서는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는 강윤성 감독의 뚝심은 ‘카지노’에서도 발휘됐다. 그의 전작인 영화 ‘범죄도시’에서 그랬듯 ‘카지노’에서의 사건도 덜거나 더함 없이 현실성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 드라마적 장치라는 이유로 ‘오버’하지 않고도 흡인력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데엔 철저한 조사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이야기다.
“‘카지노’를 쓰기 시작한 건 3년 전쯤 일이에요. 필리핀에서 정킷방(도박업자가 카지노의 일부를 빌려서 손님을 유치한 후 수익을 내는 사설 도박장)을 운영하시는 분을 지인 소개로 만나면서 처음으로 정킷방이 뭔지 알게 됐어요. 그러다 어떤 사건을 접하게 됐고, 그걸 조사했던 필리핀 1대 코리안 데스크(필리핀 파견 한국 경찰)를 만나 당시 소감이나 사건 해결 방법을 들었죠. 그분이 손석구 씨의 모델이에요. 차무식도 물론 모델이 있는데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 걸 조건으로 말씀을 들은 거라(웃음). 대신 그분의 이야기도 많이 참고했죠.”
작품 내 내레이션부터 캐릭터로서의 연기까지 도맡은 최민식은 강윤성 감독이 머릿속으로 그려낸 차무식 그 자체였다고 했다. 믿을 수 있는 후배들 앞에서는 코믹하고 허물없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배신과 돈 앞에서는 하염없이 잔인하고 또 진지해질 수 있는 차무식은 최민식이 아니라면 완성해낼 수 없는 캐릭터였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카리스마를 지닌 캐릭터를 연기하면서도 현장에서 그는 주연 중 최연장자이자 가장 오래된 경력자라는 게 무색할 만큼 편하고 재미있는 선배였다고.
“최민식 선배님이 다른 나이 어린 후배들을 위해 코미디언을 자처하시는 일이 좀 있었어요(웃음). 선배님이 직접 고안해 낸 애드리브 액션이나 대사도 많았고요. 차무식 대사 가운데 ‘개발에 땀 난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주옥 같은 욕 대사들도 다 최민식 선배님이 만드신 거예요. 제가 연출에서 가장 지양하는 게 대본에 있는 대사를 그대로 치는 거에요. 저는 배우들이 그 대사를 자기 언어로 만들길 바라거든요. 그걸 부담 없이 자연스럽게 최민식 선배님과 이동휘 씨(양정팔 역)가 완성해주시더라고요. 특히 이동휘 씨는 제가 나중에 완성본을 보면서 ‘어디까지가 애드리브고 어디까지가 원래 대사지?’ 할 정도였어요(웃음).”
최민식의 차무식이 본격적으로 나락으로 향하는 시점은 그를 배신한 호텔리어 김소정(손은서 분)이 살해되면서부터다. 보신을 위해서라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유혹하고, 거액의 돈 앞에서 결국 배신까지 일삼는 기회주의자로 그려지는 김소정의 죽음을 시작으로 더 강렬하게 몰아칠 시즌 2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그처럼 중요한 캐릭터라는 것과 별개로 김소정이 차무식의 부하 필립(이해우 분)과 함께 보여준 강도 높은 베드신이 다소 생뚱맞았다는 지적이 일기도 했다.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치로 볼 수 있지만 전형적인 ‘꽃뱀형’ 캐릭터로만 비춰질 수 있다는 비판이었다.
“베드신을 두고 ‘왜 그렇게까지 세게 그렸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었는데 저는 이 신이 인물들 간의 관계를 가장 강렬하게 보여주는 신이라고 생각해요. 그저 야한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김소정이란 캐릭터를 단 한 방에 보여줄 수 있는 신이거든요. 여기저기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유혹하면서도 쉽게 사람을 배신할 수 있는, 자기 이득을 위해 주변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캐릭터란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당연히 배우 분들과 모두 협의가 된 상태에서 찍었고, 촬영 전에 다 같이 모여서 리허설을 거친 뒤에 촬영에 들어갔죠.”
강윤성 감독은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에게 납득할 만한 서사를 쥐어 주는 것을 제1원칙으로 삼고 있다. 악인의 경우 동정은 살 수 없되 이해는 받을 수 있게 그리고, 슈퍼 히어로더라도 이유 없이 승리하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뒷이야기를 쌓아가는 게 그의 방식이다. 최근엔 SF 장르에도 눈길이 간다는 강윤성 감독은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그저 ‘믿을 수 있는 이야기’를 그려내는 게 꿈이자 남은 과제라고 힘주어 말했다.
“도식화되지 않게 이야기를 만들려고 노력해요. 악인에게 당연히 동정의 여지를 주면 안 되지만 그렇다고 너무 도식화된 악역이 딱 등장하는 것도 이상하니까요. 어쨌든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면서 갈등 구조나 인물들 간의 관계를 맺는 데에 있어서도 너무 우연이나, 생뚱맞은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저럴 수 있어’라고 관객과 시청자들이 믿게 만들고 싶어요. 그게 제 목표이면서도 많이 어려운 부분이죠. 어떤 장르가 되더라도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길 바라고 있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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