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발트 액상 촉매 3사, 대기업 6곳에 납품하면서 짬짜미 의혹…2010년 3사 간 합의 ‘문서 증거’ 남겨
일요신문 취재 결과 공정위 부산지방공정거래사무소(부산사무소)는 지난 1월 초 울산에 있는 코발트 액상 촉매 제조 3사를 전격 방문해 현장 조사를 벌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코발트 액상 촉매는 코발트, 망간, 브롬, 초산 등을 물에 녹여서 만드는 제품. 업계에선 CMB(Cobalt-Manganese-Bromine)로 통한다. 롯데케미칼, 태광산업, 삼남석유화학 등은 CMB를 이용해 화학섬유 폴리에스테르와 페트병(PET) 주원료인 고순도 텔레프탈산(TPA)을 생산하고 있다.
국내 기업 O 사, J 사 2곳, 대만 기업 M 사 등 CMB 제조 3개사는 롯데케미칼, 태광산업, 삼남석유화학 등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과 연간 200억~400억 원대 CMB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3개 업체의 합산 매출이 연간 200억~400억 원으로 편차가 큰 이유는 코발트를 비롯한 주요 원자재 가격 변동 때문.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 매출도 덩달아 올라가고, 하락하면 매출도 떨어진다.
이 같은 연간 매출 규모로 추산할 때, CMB 제조 3사의 담합 기간인 2005년 11월부터 2022년 말까지 17년간 누적 매출은 3400억~6800억 원대. 최대 6800억 원대에 달하는 짬짜미(담합)를 벌인 것으로 추정된다.
공정위 조사를 통해 CMB 담합 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담합 기간(17년)과 금액 면(최대 6800억 원)에서 국내 석유화학업계에선 역대급에 해당한다. 3사 담합 의혹을 인지하고 있는 사정당국 관계자는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뿐 아니라 형법상 업무방해 혐의 등도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CMB 제조 3사가 동일업종 기업의 경쟁을 제한하거나 완화할 목적으로 가격이나 생산량, 판로 등에 대해 협정을 맺는 카르텔을 형성했다고 강하게 의심한다. 카르텔 형성 이전까지 3개사는 비정상적인 임가공비(P/C·Processing Charge) 등으로 출혈경쟁을 벌이면서 적자가 누적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카르텔 이후엔 P/C 인상, 코발트 사용량 조절 등으로 경영지표가 크게 개선된 것으로 전해졌다.
3사 담합 의혹을 조사하고 있는 공정위 부산사무소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사는 “2022년 11월부터 공정위에서 담합 의심 업체 3곳을 대상으로 정밀 조사를 벌이고 있다”며 “공정위는 CMB 업계 관계자 등을 직접 불러 담합 방식과 규모 등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들었으며 관련 자료도 상당량 확보했다. 지난 1월 초엔 울산에 있는 3개사를 동시에 방문해 현장 조사를 벌였다”고 말했다.
공정위가 확보한 3개 업체 담합 자료 가운데는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도 여럿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CMB 제조 3사의 경영진이나 실무자들끼리 주고받은 담합과 정산 관련 이메일 자료 등이 바로 그것. 특히 3개 업체가 그동안 CMB 물량을 정확하게 3분의 1씩 배분해온 구체적 내역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공정위는 CMB 3개사가 롯데, 태광, 삼남 등에 CMB 물량을 정확히 3분의 1씩 납품하기로 합의했던 것으로 의심한다는 전언이다. 만일 CMB 3사 가운데 한 업체가 물량을 3분의 1 이상 또는 이하로 납품했을 경우엔 다른 CMB 업체들과 이를 정산하기로 했다는 것.
공정위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사는 “한 업체의 납품 물량이 3분의 1을 넘기거나 부족해 과부족분이 생길 경우 다른 2개사와 협의해 상호 정산해왔다”고 말했다. 사실상 CMB 3사가 CMB 납품으로 올리는 매출 규모를 똑같이 맞췄다는 얘기다. 이른바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는 것.
CMB 3사 담합 과정에서 직접 실무를 담당했던 한 CMB 업체 인사는 일요신문과 만나 “2005년 7월 29일 CMB 제조 3개사의 최고 경영진이 직접 만나 출혈경쟁을 중지하고 이익을 균등하게 배분하기로 합의했고 그해 11월부터 담합을 실행에 옮겼다”며 “2020년 11월 30일에도 CMB 3사 사장단이 서울역 구내 음식점에서 담합과 정산 관련해 미팅을 가졌다”고 털어놨다.
이 인사의 증언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CMB 3사의 ‘합의사항’ 문서 초안을 보면 실제로 담합을 모의하고 실행한 정황이 드러난다. 합의사항 초안에 따르면 M 사, O 사, J 사 회장과 대표 등은 2010년 5월 19일 오후, 서울 강서구 외발산동 한 호텔에서 만나 네 가지 사항을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
합의사항은 ‘1. 2005-07-29에 합의한 (담합) 내용을 계속 성실히 이행할 것을 재확인함 2. 3사 간에 미정산 부분은 2010년 안에 정산 완료토록 함 3. Mn(망간), HBr(브로민화 수소)과 표준생산비용에서 발생하는 이익 및 손해를 정산에 추가함’ 등이다. 한마디로 담합과 정산을 계속 이어가자고 합의하는 문서다. CMB 3사 경영진은 이 합의사항 문서에 공동 서명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 관련 사건을 여러 차례 수임한 적 있는 로펌 소속 변호사는 “공정위가 시정조치 등 법집행을 강화하면서 기업들이 순진하게 담합 합의문서 등 직접적인 증거를 남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CMB 3사는 ‘순진하게도’ 직접적 증거(‘합의사항’ 문서)를 남긴 모양새다. 이 합의사항이 담합 증거로 가치가 있는지는 공정위가 판단할 몫이다.
CMB 3개사가 상호 정산할 땐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현물이 아닌 현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간혹 현금 대신 현물로 정산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업체별로 정산하는 방식엔 차이가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를테면 J 사에서 O 사로는 ‘회사→회사’로 정상 입금됐다. 하지만 O 사에서 J 사로는 ‘회사→개인’으로 입금됐다는 것이다. 여기서 언급한 ‘개인’은 ‘가족들로 구성된 J 사 경영진’이라는 게 J 사 내부 사정에 밝은 소식통 전언. 이 전언이 사실일 경우 J 사 경영진에겐 담합뿐 아니라 배임·횡령 혐의도 덧씌워진다.
J 사 내부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카르텔 업체 간 이익 배분은 불법적인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를 통해 3사는 상당한 금액의 횡령과 배임을 저질렀다”며 “자금력이 탄탄한 J 사의 경우 (O 사, M 사 등과 정산할 때 입금이 아닌) 원재료로도 돌려받아 엄청난 양의 재고를 회계 상 조작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공정위 조사 결과 담합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CMB 3개사엔 수백억 원대 과징금이 부과될 전망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담합 기간에 발생한 매출액의 최대 1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따라서 17년 동안 담합을 통해 발생한 누적 매출액이 최대 6800억 원대일 경우 공정위는 10%에 해당하는 680억 원대에 달하는 과징금을 CMB 3개사에 부과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담합 의혹 3개 업체가 만일 680억 원대 과징금을 납부해야 한다면 3개 업체 모두 공중분해될 수도 있다”며 “3사가 공중분해될 경우 우리나라 석유화학업계도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일요신문은 CMB 3사의 최고경영자들과 전화 통화로 공정위 조사와 관련해 질문했다. 하지만 3사 모두 자세한 설명이나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J 사 대표는 “(언론 인터뷰를) 사양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O 사 대표도 “지금 (공정위) 조사 중이어서 특별히 할 말이 없다”고만 답했다. 대만 기업인 M 사 대표는 “공정위 조사를 받는 건 사실이다”라면서도 “(17년 동안 담합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김지영 기자 young@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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