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왜 그렇게 사건사고는 끊이지를 않는 건지. 뉴스만 참견하고 있어도 할 일은 없지 않겠다 싶을 만큼 우리 사는 세상은 사건사고로 가득하다. 그래서 그런지 누구를 만나도 말이 넘친다.
어느 순간부터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과는 만나지 않게 된다. 뉴스 뒤에 숨어 자기 이야기를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정이 생기지를 않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만나게 되는 사람은 자기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다. 물론 자기 이야기를 한답시고 주변 사람들 흉이나 보는 사람은 더더욱 피하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 자랑이나 하는 사람의 이야기도 길게는 들어주고 싶지 않다. 그것은 자기 이야기가 아니라 미성숙한 이야기다. 자기 이야기의 핵심은 ‘성찰’이다.
소설을 써도 주로 자기 성찰적인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있고, 남의 이야기를 취재해서 그저 엮어내는 작가가 있다. 김형경은 대표적인 자기 성찰적 작가다. 사람풍경으로 심리에세이의 분야를 연 그녀가 이번에 심리훈습 에세이 <만가지행동>을 냈는데, 그야말로 단숨에 읽었다. 나에게서 나타나는 모든 일은 우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어서 내가 받는, ‘나’의 일이므로 운명을 바꾸고 싶으면 나의 행동의 이면을 자각하고 행동하라고 하는 그녀의 메시지는 무서운 것이었다.
“모피코트가 한 벌 있었다. 그 옷은 내가 산 옷 중에서 가장 비싼 것이고, 옷을 본 후 카드 영수증에 사인하기까지 가장 짧은 시간이 소요된 옷이고, 소유했던 옷 중에 가장 적게 입은 옷이었다.”
그녀는 왜 그런 옷을 샀을까? 엄마 때문이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때에 엄마와 통화를 했단다. 통제적인 엄마 밑에서 자라 힘들다는 호소도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잘 지낸다고만 이야기를 하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엄마가 또 교훈적인 말씀을 하신 것이다. 나라 경제가 어려우니 알뜰하게 살라고. 그리고 이튿날 외출해서 엄마의 교훈을 무시하듯 모피코트를 산 것이었다.
“나는 엄마의 말과 정반대로 행동했다. 알뜰하게 살라는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내 생에 가장 큰 과소비를 했고, 그것은 소극적인 분노의 표현이었다. 다음으로 내가 진짜로 원한 것은 옷이 아니라 엄마의 사랑이구나 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서도 힘들다고 표현하지 못한 것은 나의 미숙함이었다.”
미숙함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성숙해졌다는 거였다. 하루아침에 성숙해지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김형경은 훈습이라는 말을 썼다. 훈습이란 아예 몸에 배어들게 하는 것이다. 몸에 배어들지 않고 머리로만 아는 것은 아는 게 아니다. 몸에 배어들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행위를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거울이 필요하다. 해리포터의 비밀의 방의 거울 같은 거울이!
수원대 교수 이주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