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U-22 제도 부작용 커…‘가계약’ 통해 대학 경기 일정 소화케 하는 것도 대안”
#포기하지 않은 축구철학
김상호 감독은 다양한 경험을 가진 지도자다.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 1기 출신이며 연령별 대표팀, K리그, 중국 무대에서 코치와 감독을 지냈다. 대학 무대 지휘봉을 잡은 것은 칼빈대가 처음이었다. 그는 "지도자 생활 시작을 호남대에서 했는데 코치로 잠깐 경험한 것이었다"며 "아시다시피 칼빈대가 기독교학교인데, 주변의 추천이 있었다. 저도 기독교인이기에 끌림이 있었고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 많이 신경 써주신 부분도 있어 환경도 좋아지고 이번에 성적도 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대회 준우승에 대해 "기존 우리 색깔에 끈끈한 면이 더해지면서 성적이 나올 수 있었다. 올해는 기대가 된다"며 "작년까지는 경기 내용이 좋고 상대를 몰아붙이기도 했다. 그런데 득점이 안 돼 성적을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상호 감독은 현재 궤도에 오르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처음 팀을 창단한 유봉기 감독이 정말 고생 많이 했다. 창단팀을 이끄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와서 해보니 실감했다"며 "2019년 6월, 학교에 왔을 때 선수가 14명뿐이었다. 일반 학생을 몇 명 데리고 대회에 나가기도 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래서 부임 직후 2년 연속 23명씩 뽑으면서 팀 체계를 잡았다. 지금은 45명이다. 처음 스카우트 했던 학생들이 이제 4학년이 됐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부분을 "세밀하고 정확하고 빠른 축구"라고 설명한다.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자세를 원한다. 수비에서 부정확하게 한방에 넘어가는 것이 아닌, 정확한 짧은 패스로 풀어나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다. 이 같은 내용은 1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 프로팀 지도자를 맡던 시절에도 궤를 같이했다.
"선수시절 미드필더였다. 선수시절부터 '지도자를 한다면 세밀한 축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코치시절부터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감독님들을 만났다. 그런 부분은 참 운이 좋았다. 그런데 그런 세밀한 축구를 고집하는 것이 즉각 성적을 내야 하는 무대에는 잘 맞지 않는다. 빠른 시간 안에 결과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연히 프로팀이나 연령별 대표에서는 기다려주지 않아 빨리 잘렸다. 중국에도 갔는데 빨리 돌아왔다(웃음). 정말 그간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럼에도 내 축구 소신은 바뀌지 않았다. 내 축구를 꽃 피우기 위해서는 대학 무대가 좋을 수 있다는 판단에 여기로 왔다."
굴곡이 많았던 지도자 생활 중에서도 김상호 감독은 가장 가슴 아픈 순간으로 2007년 국제축구연맹(FIFA) U-17 월드컵을 꼽았다. 그는 박경훈 감독을 보좌하는 수석코치로 팀에 합류했다. 당시 U-17 대표팀은 윤빛가람, 한국영, 윤석영, 김승규 등 성인 대표까지 활약을 이어간 자원이 다수 포진했다. U-17 월드컵이 국내에서 개최됐기에 축구계에서 거는 기대도 컸다. 하지만 주축 선수가 대회 개막을 앞두고 부상으로 쓰러지는 등 악재가 겹쳐 대표팀은 조별리그 통과에 실패했다. 선수들은 물론 코칭스태프에도 집중포화가 이어졌다. 그는 "박경훈 감독님은 축구계를 떠날 생각까지 하셨던 것 같다. 나도 후유증이 컸다"고 회상했다.
그럼에도 김상호 감독은 "내 축구 철학에 대해 후회해본 적은 없다. 언젠가는 빛을 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대학 무대에 왔고 냉정하게 칼빈대가 강팀은 아니었기에 여유를 두고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팀이 차츰 좋아지는 것이 느껴졌다"며 "처음에는 연습경기에서 고등학교 팀에도 졌다. 2021년에서야 목표로 했던 용인축구센터(고교팀)와 대등해졌고(웃음), 이제는 고교 강팀과 붙어도 경기를 지배하면서 이긴다. 올해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서 실업팀이나 프로팀과 간극을 줄이는 것이 목표다"라고 설명했다.
# "대학축구 다 죽여놓고 '약해졌다' 지적만" 대학축구 현실과 대안
그렇게 다다른 대학 무대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묻자 김상호 감독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중도포기 하는 선수가 너무 많다. 전국 대학 현황을 보면 1학년 선수는 1200명인데 4학년은 200명뿐이다. 프로나 실업으로 진출하는 선수들도 있겠지만 포기하는 선수들이 너무 많다. 고학년 선수 중에도 기량이 좋은 선수가 분명 있다. 그런 선수들이 포기하는 것은 전체 축구판을 봤을 때 큰 손실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축구 인프라 자체가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대학축구를 어렵게 만드는 원인으로 22세 이하 선수를 의무 등록하고 출전토록하는 일명 '22세 룰'을 꼽았다. 팀당 22세 이하 선수를 최소 1명 이상 선발로 내보내고 그 외 1명 이상을 교체로 뛰도록 강제하는 것에 가까운 내용이다. 그는 "어린 선수를 키우겠다는 취지는 좋다. 그런데 이런 형태의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지났다. 이제는 다시 생각해볼 때가 아닌가 싶다"며 "22세 룰 때문에 구단에서는 1, 2학년 선수들을 데려간다. 선수들도 일찍 입단하길 원한다. 실업리그에서는 한술 더 떠 21세 룰을 시행한다. 덕분에 지금 한국축구 19~23세 연령층은 매우 혼란스럽다"고 주장했다.
이어 "물론 그 규정의 혜택을 본 선수도 있다. 하지만 부작용도 크다"면서 "어린 선수가 팀에 가서 적은 기회만 받다가 기량을 보이지 못하면 22세가 지나면서 방출을 당한다. 그러면 '떠돌이 생활'이 이어진다. 기회를 주면 성장할 수 있는 선수들도 떠돌이가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많은 팀이 어린 선수들을 흡수해놓고 방치하는 사례도 많다"고 지적했다. 김 감독은 연령제한 룰 때문에 연령별 대표도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제도가 시행된 이후 연령별 대표가 강화됐다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본다. 23세 이하 팀인 올림픽 대표팀을 구성하는 선수들이 과거에는 대학 선수들이 주를 이뤘다면 현재는 프로 소속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현장 지도자들이 어려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프로에 소속된 어린 선수들이 팀에서 경기에 나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전 경험이 적으니 대회에 나가면 선수들이 자신감이 없다. 2012 런던 올림픽이라는 특별한 사례를 제외하면 대학 선수로 구성된 과거 올림픽 대표와 프로 선수로 꾸린 최근 올림픽 대표 성적에 과연 큰 차이가 있나."
그는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할 대안으로 일본의 사례를 들었다. "J리그 구단들은 유망한 대학 선수와 일종의 '가계약'을 맺는다. 필요할 땐 불러서 경기를 뛰게 하고 훈련도 함께 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선수가 대학 경기 일정을 소화한다. 우리나라 준프로제도와 비슷한 형태다. 준프로 제도는 프로 유스 산하 고교팀만 적용되는데 그 범위를 대학까지 넓혔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가계약 제도의 성공 사례는 미토마 카오루다. 브라이튼 소속의 미토마는 현재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선수 중 한 명이다. 지난 2022 카타르 월드컵에도 일본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나섰다. 가와사키 프론탈레에서 2년간 활약 이후 2021년 여름, 유럽에 진출했다. 본격 프로 무대에 발을 내딛기 전에는 대학 무대에서 4년을 보냈다. 대학 생활 중에는 가와사키에서 훈련과 경기 출전을 병행했다. 그는 스스로 "대학 생활은 알찬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김 감독은 "일본 대학축구와 우리의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일본은 행정적·제도적으로 뒷받침이 되고 있다. 우리는 상황이 더 어려워진다. 그런데 일본 대학팀과 한국 대학팀이 경기를 해서 지면 '대학축구가 약해졌다'는 질타만 쏟아진다. 환경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B팀 활성화'도 제안했다. 현재 국내 구단 일부만 운영하는 B팀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 빅리그는 '25인 엔트리 제도'를 적용하는 곳이 많다. 나머지 선수들은 B팀으로 꾸린다. B팀은 별도로 운영해야 한다. 선수를 B팀에서 성장시켜 1군에서 활용하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40명, 많게는 50명까지도 팀을 꾸려서 운영한다. 그 중 엔트리에 드는 선수는 20명 정도다. 나머지는 방치된 상태로 매일 뒷담화나 하는 경우가 많다(웃음)."
이에 더해 그는 "B팀의 연령을 23세로 하면 좋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1년은 더 도전해 볼 수 있는 나이다"라며 "현재 강원, 대구, 대전, 전북 등 일부 팀이 B팀을 운영하고 있는데 19~21세 선수들을 위주다. 그 연령을 넘으면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너무 어린 선수들이 일찍 축구를 그만두고 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대학축구에 대한 대한축구협회의 향후 계획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공식적인 발표는 아니고 구체적 계획까지는 아직인 것 같지만 대학축구연맹과 대한축구협회가 만난 자리에서 축구협회 관계자가 '향후 대학축구는 동아리 형태로 만들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고 하더라"라며 "축구 역사가 긴 유럽은 하부리그가 탄탄하니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아직 대학축구가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황폐화'가 지속되는 현실 속에서 일선 대학 지도자들은 이전과 달리 상황을 바꾸기 위해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김상호 감독은 "대학축구지도자협의회가 만들어졌다. 그간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지냈는데 이제는 달라져야 할 것 같다.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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