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로맨스물에서 강세…실사영화론 ‘주온’ 이후 21년 만에 100만 돌파
#니들이 ‘슬램덩크’ 맛을 알어?
1월 4일 개봉한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2월 1일 200만 고지를 넘어섰다. 누적 관객수 203만 6484명을 기록하다 보니 박스오피스 1위 자리는 덤이다.
‘슬램덩크’는 1990년대 공개된 인기 만화다. 웹툰도 없던 시절, 한국의 팬들은 연재 잡지 혹은 단행본을 통해 이 작품을 접했다. 북산고등학교 농구부 멤버인 강백호, 채치수, 서태웅, 송태섭, 정대만 등이 역경을 딛고 승리를 쟁취해가는 과정은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줬다. 이 만화는 1990∼1996년 일본의 ‘주간소년점프’에서 연재됐고, 한국에서도 ‘소년챔프’를 통해 매주 한 회씩 공개됐다. 비슷한 시기 농구를 소재로 한 배우 장동건·손지창 주연 한국 드라마 ‘마지막 승부’, 농구대잔치 시절 연세대와 고려대의 라이벌전 등이 겹치며 1990년대에 농구 붐이 불었다.
현재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흥행을 주도하는 이들은 그 당시 10대를 보낸 세대다. 멀티플렉스 CGV 기준, 연령별 예매 분포를 보면 20대 18.7%, 30대 38.6%, 40대 31.8%다. 30∼40대가 70.4%로 압도적이다. 이 만화를 보고 농구공을 튕기며 자란 세대들의 감성을 건드린 셈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전체 이야기를 담지 않는다. 오로지 북산고와 산왕공고의 경기에 집중한다. 도내 넘버원 고교팀을 상대로 절치부심 끝에 승리를 일구는 모습을 본 관객들은 “눈물이 났다”는 평을 내놓곤 한다. 결국 이 영화는, ‘슬램덩크’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이 즐기기 힘든 작품이다. 각 멤버의 성격 및 이야기 전개 구도를 알아야 그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는 뜻이다. “왼손은 거들 뿐”이라는 원작 속 명대사를 인용하자면 “영화는 거들 뿐”이다. 과거 ‘슬램덩크’를 즐기던 추억을 간직한 이들의 로망을 자극한 셈이다.
‘슬램덩크’와 더불어 일본 로맨스물인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오세이사)의 인기도 만만치 않다. 2022년 11월 30일 개봉 후 두 달 넘게 장기 상영 중인 이 영화는 1월 29일 100만 관객을 넘어섰다. 2월 1일 기준 누적 관객수는 101만 8882명이다. 애니메이션을 제외한 일본 영화가 국내에서 100만 관객을 돌파한 것은 공포 영화 ‘주온’(2002) 이후 21년 만의 일이다.
이치조 미사키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오세이사’는 자고 일어나면 기억이 리셋되는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앓는 여고생 마오리(후쿠모토 리코 분)와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고 있는 평범한 남고생 도루(미치에다 슌스케 분)의 풋풋한 첫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슬램덩크’가 X세대들을 대동단결시켰다면, ‘오세이사’는 Z세대의 전폭적 지지를 얻고 있다.
1월 말 내한한 이 영화의 주인공 미치에다 슌스케는 “일본에서도 중고등학생 관객이 극장을 많이 찾아줬다. 10대는 순식간에 끝나고 반짝이는 시기이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큰 사랑이 있을까 솔직히 모르겠지만 드라마틱한 세계관이 있기 때문에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다”면서 “투명한 영상, 10대들만 맛볼 수 있는 이야기 때문에 끌리지 않을까 싶다”고 흥행 이유를 분석했다.
#왜 J 콘텐츠일까
한때 J(Japan) 콘텐츠는 아시아 대중문화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한국에 주도권을 내준 이후 완전히 관계가 역전됐다. 하지만 여전히 J 콘텐츠가 강세를 보이는 장르가 있다. 애니메이션과 로맨스물이다.
일본은 애니메이션 명가다. 도식화된 그림을 지양하고, 역동적인 그림체에 풍부한 상상력을 넣어 여전히 세계 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다. 영화화된 애니메이션의 흥행 성적도 좋다. ‘너의 이름은’(379만 명. 2016), ‘하울의 움직이는 성’(261만 명. 2004),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218만 명. 2021),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16만 명. 2002) 등이 꾸준한 인기를 얻었고,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5위로 TOP 5에 진입했다.
일본 영화 특유의 청순하고 깨끗한 감성이 담긴 로맨스물을 찾는 팬층 역시 견고하다. 역대 일본 실사 영화 중 한국 흥행 1위 작품 역시 대표적 로맨스물인 ‘러브레터’(115만 명·1995)다. 이외에도 한국에서 리메이크된 바 있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등이 인기를 끌었다.
한 영화 관계자는 “K 콘텐츠가 외국 팬들에게 하나의 장르로 받아들여지듯, 각국 별로 강세를 보이는 장르가 있다. 예를 들어 ‘셜록’ 시리즈로 유명한 영국은 스릴러물의 천국이다. 그리고 블록버스터 작품은 단연 미국이 앞선다”면서 “최근 J 콘텐츠가 각광받는 것은 이러한 장르를 좋아하는 단단한 팬층이 움직인 동시에 그들의 감성을 자극할 만한 작품이 때마침 나와 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소리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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