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법조 원로가 이런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대장동 사건 주변의 ‘50억 클럽’의 변호사들이 떠올랐다. 전직 검찰총장이나 청와대 민정수석이 있는 것은 왜일까. 모종의 수사를 저지시키는 역할은 아니었을까. 전직 대법관 경험에서 우러난 말은 법원 쪽으로 방향을 돌려 계속됐다.
“대법원에서 의견이 5 대 5로 팽팽하게 갈릴 때가 많아. 그런 때 정치나 돈에 오염된 재판관이 한쪽에 가담하면 정의는 죽어버리지. 썩은 쌀 한 톨이 저울대를 기울게 할 수도 있어. 앞으로는 오판을 하는 판사를 상대로 소송을 해야 할 필요가 있어. 어떤 경우에도 판사는 무오류고 책임을 지지 않는 현 상태라면 법이 휠 수 있지. 그걸 타파해야 바른 법질서가 형성될 거야.”
며칠 전 현직 부장검사가 방송에 나와 검찰 조직에 대해 쓴소리를 하는 걸 들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검찰은 사냥개 역할이에요. 범죄사실을 수사하는 게 아니라 권력자가 특정인을 찍어서 주면 그때부터 쫓아가서 어떻게 해서든지 물어 상처를 내고 피 흘리면서 쓰러지게 하는 거죠. 정권이 바뀌면 또 다른 주인의 명령을 듣고 달려가서 물고 뜯어요. 어떤 선배 검사는 정권에 따라 시선이 달라진다고 말하는 것도 직접 들었죠.”
나는 그런 정치검사를 직접 만나기도 했었다. 청와대 허락 없이 출마한 경찰청장 출신이 검찰의 사냥감이 됐었다. 담당 검사는 변호인으로 입회한 내게 “저는 정무를 하는 거지 수사를 하는 게 아닙니다”라고 했다.
날마다 청와대에 수사상황을 보고하고 지침을 얻는다고 자랑했다. 그들은 국회의원을 수사해서 여야의원 숫자를 바꾸는 정개개편도 할 수 있다는 오만도 있는 것 같았다. 한 기업인이 유서에 자기가 거액의 돈을 준 정치인들의 이름을 적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죽는 마당에 남을 모함하는 장난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관련자들이 처벌받았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 수사와 재판이 공정했을까.
겉으로 대단해 보이는 수사도 들여다보면 그 내면이 초라할 때도 있었다. 한 재벌 회장의 게이트 사건이 신문 지면을 덮은 적이 있었다. 검사가 증인에게 입을 조금만 열어달라고 사정하는 게 수사의 본체였다. 그 재벌 회장의 입에 따라 정치인, 법조인이 낙엽같이 몰락하는 모습을 봤다. 특정인에 대해서만 입을 열어달라는 그런 수사가 공정했던 것일까.
얼마 전 원로 법조인 모임에서 들은 얘기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권력을 누렸던 최측근은 대권을 염두에 두고 거액을 끌어들였다. 그가 갑자기 죽자 그의 자금 관리자는 대박이 났다. 지금의 모기업의 모체가 그렇다고 했다.
대통령을 만드는 킹메이커로도 이름 난 또 다른 정치인이 있었다. 그는 거액의 정치자금 관리를 미국의 한 교포에게 맡겼다고 했다. 그 정치인이 죽자 자금을 관리해주던 교포는 갑자기 돈방석에 앉았다는 것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재벌들로부터 직접 돈을 받아 특정인에게 관리시키다가 들통이 났다. 거의 모두가 죄인이다. 찍히면 죽을 수가 있다. 권력을 잡으면 자신은 면죄부를 받고 상대방을 죽일 수 있는 힘을 갖는다. 반대편이 권력을 잡았다면 대장동 사건이 아니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지 않았을까.
지금 잘려진 꼬리를 어떻게 몸통과 연결시키느냐를 놓고 법기술자들이 고심하는 것 같다. 노태우 수사 때는 포괄적 뇌물죄라는 말이 나왔다. 박근혜 수사 때는 경제공동체라는 법률용어가 만들어졌다. 요즘은 정치공동체란 말이 나오는 것 같다. 형식적 법치에서는 그나마 겉의 증거가 중요하다.
사건을 둘러싸고 여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불법한 이익을 공유한 사람들의 단결력은 만만치 않다. 정치탄압으로 반전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사냥개가 도망치는 여우를 잡을 수 있을까. 사냥개는 주인의 눈치를 보면서 쫓고 여우는 결사적으로 도망하기 때문이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