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리그, ‘시니어 삼국지’, 2부리그, 인터리그…. 요즘 바둑 두는 프로-아마가 모이면 서로 묻는다. 이것들이 다 무슨 대회인지, 누가 어디에 출전하고 있는지 정확히 꿰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 앞에 열거한 것들은 모두 현재 진행 중인 프로들의 바둑대회 이름인데, 프로기사들조차도 헷갈려 한다. 한국리그는 이미 연륜을 거듭한 대회여서 지난해까지는 각 팀의 소속 프로기사와 팀의 전적을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올해는 참가 팀이 10개로 늘어나 그나마도 아리송하다. 기억 용량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는 탓이다.
‘시니어 삼국지’는 중견-원로 프로기사, 세칭 나이든 프로들을 위한 대회다. ‘시니어 삼국지’라는 이름 앞에 ‘더 리버사이드호텔배’라는 긴 타이틀이 붙어 있다. 서울 강남 신사동에 있는 리버사이드호텔에서 후원한다는 뜻이다. 세 팀이 겨루는 단체전으로 ‘국수’ ‘명인’ ‘왕위’가 세 팀의 이름이다. 국수 명인 왕위는 국수전, 명인전, 왕위전의 타이틀 홀더에게 붙여지는 이름. 국수전은 1955년 동아일보가 국내 최초의 창설한 프로기전이고, 뒤를 이은 왕위전은 1966년에 중앙일보가, 명인전은 1968년에 한국일보가 출범시킨 기전이다. 세 기전은 한국 현대 바둑의 요람이었다. 그 공로가 실로 혁혁하다.
한국 현대 바둑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조훈현 9단이 국수팀, 일본 유학의 이력 없이 잡초와 같은 불굴의 생명력으로 우뚝 섰던 ‘명인전의 사나이’ 서봉수 9단이 명인팀, 조-서 두 선배의 다음 세대로 한국 바둑 웅비의 선봉장이었던 유창혁 9단이 왕위팀의 주장을 맡았다. 출전 선수 중에는 원로급인 된 심종식 6단, 박진열 9단, 정동식 6단과 왕고참격인 윤종섭 3단, 양상국 9단, 이상철 8단, 노영하 9단 등이 보인다. 중견 그룹 중에도 김준영 5단, 이관철 4단, 김기헌 5단, 김종수 7단, 박영찬 4단, 박승문 6단 등은 오래간만에 보는 얼굴들.
인터리그는 국내 인터넷 바둑 사이트 중 4강으로 꼽히는 타이젬 사이버오로 한게임 피망이 펼치는 단체전. 각 팀의 선수는 40대 이상의 시니어 2명, 여자 2명, 30~40대 2명, 10~20대 2명, 8명이다.
2부리그는 이를테면 2군리그. 한국리그가 메이저리그라면 2부리그는 마이너리그인 것. 한국 리그에 빠진 선수들의 경연장이다. 한국리그에는 정상급 선수들이 뛰지만, 그들을 빼놓고 본다면 1~2부 사이의 실력 차이는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누가 누구와 붙어도,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 투지는 오히려 2부리그 선수들이 더할지 모른다. 대부분은 내가 한국리그에 못 낄 이유가 없다고 믿을 테니까.
이런 대회들뿐만이 아니다. BC카드배, LG배 같은 세계대회들이 잇달아 열리는데, 프로-아마 오픈이어서 한국의 아마추어들과 중국 일본 대만 등에서 오는 선수들을 합하면 예선은 300명 안팎이 북적거린다. 프로 동네가 이처럼 시끌시끌한데다가 아마 쪽에는 또 요즘 내셔널리그라는 게 있다.
BC카드배에서는 한국 성적이 저조한 가운데 백홍석 9단(26)이 8강전에서 중국 저우루이양 5단(21)을 만나 흑을 들고 난전 끝에 1집반으로 신승, 4강에 올라 겨우 체면을 살렸다. 8강전까지 한국은 박영훈 9단과 백홍석 9단, 간신히 둘이 살아남았었는데, 박영훈 9단(27)이 중국 신예 당이페이 4단(18)에게 백을 들고 다 이겼던 바둑을 어이없는 실수로 대마를 잡히며 역전패한 상황이라 4강전이 중국 일색이 될 뻔했던 것. 대국이 많아 피곤이 겹친 탓이 크겠지만, 이번에는 박영훈 9단이 좀 싫은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아무튼 전황 파악에 헷갈리기는 해도 바둑TV와 인터넷에서는 쉴 새 없이 생중계하느라 바쁘고, 매일 빅 매치가 벌어지고 있어 관전자들은 재미가 있다. 도대체 요즘 바둑이 사양길이라고 누가 그러는가. 중국 10대들의 극성은 또 어떻고 말이다.
이광구 객원기자
일요신문배 어린이대회 현장
온라인 예선전 ‘후끈’
<일요신문>이 창간 20주년 기념으로 개최한 전국 어린이 바둑최강전이 달아오르고 있다. 어린이 바둑대회로서는 최초로 온라인 예선을 치르고 있어 대회 공표 때부터 화제가 되었다. 기력 차이가 있어 두 조로 나누어 진행하고 있다. 잘 두는 어린이는 유단자부, 조금 아래인 어린이는 일반부.
그리고 지역을 안배해 서울 경기 동부(영남권) 서부(호남-제주권)의 네 권역에서 각각 5명, 모두 20명이 본선에 올라간다. 20명은 1조 5명씩, 4개조로 나뉘어 풀리그를 벌이고 각조 1위가 4강 토너먼트로 우승을 가리는 방식이다. 또 유단자부 본선진출 20명은, 서울-호남, 경기-영남 하는 식으로 4개 팀이 단체전을 벌인다. 개인전 우승 상금 300만 원, 단체전 500만 원이니 어린이 대회치고는 상금이 크다. 현재 32강-16강이 진행 중인데, 그중 한 판을 소개한다. 유단자부 서울 예선, 정민규 어린이(성서초 5년)와 조민규 어린이(성서초 4년)의 64강전. 둘 다 아마5단. 세다! 이름이 똑같고, 아마 시니어 강자 정인규 선수, 조민수 선수와 비슷해 눈에 띄었다. 정민규가 백.
<장면> 우변에서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다. 백1로 압박하고 흑2에는 백3으로 두점머리를 두들긴 후 흑4로 같이 젖히자 백5로 끊어 버렸다. 기습인데, 좀 무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1도> 흑1로 몰자 다시 백2로 저쪽을 끊는다. 일단은 맥점이다. 흑3에는 백4로 키우고, 흑5 때 백6으로 내려가는 수순을 구해 다시 흑7일 수밖에 없을 때 백8로 단수치며 나온다는 것. 그러나 흑도 9로 배후를 끊어 놓고 11로 잇는 것이 강력한 저항이었다. 백12, 흑13 다음 백14가 이상했다. 흑15로 꼿꼿이 올라서는 순간 누가 공격하고 누가 수비하는지 애매해졌다. 그러자 백은 우상귀에 16으로 갖다붙였다. 배붙임의 일종으로 족보에 있는, 저 유명한 사카다(坂田榮男) 9단이 40여 년 전에 선보였던 맥점인데…
<2도> 흑1, 3 때 손을 돌려 중앙에서 백4로 코붙이고 돌아와 6에 이었다. 그리고 흑7을 기다려 백8, 10, 흑11로 보강할 때 백12로 이었다. 흑13으로 뛰면서 전선이 확대되고 있다. 백의 기습을 흑이 잘 받아쳐 거꾸로 백이 위기에 몰리나 싶었는데, 백도 살아나오면서 이제 공중전이 벌어지는 장면. 여기까지를 정리하자면, 우선 우상귀 흑7로는….
<3도> 흑1로 중앙 백 요석 두 점을 잡아야 했다. 백2에는 흑3으로 늦추어 그만인 것. 흑5로 귀는 살고, 귀가 살면 백 대마는? 또 <2도> 흑11로도 그쪽 흑 넉 점은 버리고 <3도> 흑1로 잡아야 했다. 이걸로 흑은 사통오달, 단숨에 국면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따라서 백도 애초에 <1도> 14로는 <4도> 백1로 잡아두는 것이 정수. [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