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용 경찰청장 내정자가 지난 16일 경찰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
충북 출신이 경찰청장으로 내정된 것은 67년 경찰 역사상 처음으로 지역 경찰은 물론 경찰 내부에서도 상당히 고무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특히 유력한 차기 청장으로 거론됐던 이강덕 서울청장을 제치고 김 내정자가 경찰총수에 내정된 배경을 두고는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이 고려됐을 것이란 얘기도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조현오 청장의 뒤를 이어 10만 경찰을 진두지휘하게 될 김 내정자가 걸어온 길을 들여다봤다.
현재 전반적인 경찰 분위기를 감안할 때 김 내정자가 처한 상황은 녹록지않다. 사건이 발생한 지 수일이 지났지만 ‘수원 여성 토막살인사건’에 대한 국민적 공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모든 책임을 지고 결국 조현오 청장이 불명예 사임을 했지만 땅에 떨어진 경찰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적잖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의식한 듯 4월 16일 경찰위원회에 참석하기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김 내정자는 “어렵고 중차대한 시기에 경찰청장 후보자로 내정돼 마음이 무겁다. 경찰청장이 되면 신속하게 조직을 쇄신해 민생치안과 법질서 확립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피력했다.
4·11 총선 이후 단행된 첫 번째 인사라는 점에서 이번 경찰청장 인사에는 유독 많은 관심과 시선이 쏠리고 있다. 4대 권력기관 중 하나인 경찰 수장에 어떤 인물이 내정될지는 경찰조직뿐 아니라 정치권 안팎에서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사실 차기 경찰청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된 인물은 따로 있었다.
조 청장이 사의를 표명한 후 청와대는 줄곧 경찰대 1기 출신인 이강덕 서울청장 카드를 만지작거렸고, 경찰 내부에서도 이 청장이 유력한 차기 경찰청장 후보로 거론돼 왔다. 이 청장은 업무능력이 뛰어난 데다가 이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 경찰 일각에서는 경찰대 1기 출신에서 최초로 경찰 수장이 탄생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청와대는 김 내정자를 발탁했다. 예상을 깨고 청와대가 김 내정자를 선택한데는 여러 가지 복잡한 정치적인 계산이 고려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는 유력 후보였던 이 청장을 배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도 맞물려 있다. 우선 경북 영일 출신인 이 청장은 권력과 맞닿아 있는 ‘영포라인’이라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임기 말에 접어든 이 대통령이 동향인 이 청장을 경찰수장으로 발탁할 경우 제기될 불공정 인사 논란을 고려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청와대가 고심 끝에 이 청장 카드를 포기한 데는 현재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청장이 민간인 불법사찰이 이뤄진 2008년에 청와대 공직기강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야권은 현 정권의 불법사찰 파문과 관련해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의 개입 의혹을 제기하며 파상공세를 퍼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청장을 경찰수장으로 발탁할 경우 꺼져가고 있는 ‘민간인 불법사찰’ 불씨에 다시 기름을 부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프로필이나 커리어 면에서 유리한 이 청장을 제치고 이번에 김 내정자가 선택된 데에는 청와대가 새누리당의 의사를 적극 반영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또 한 번의 인사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한 ‘이강덕 카드’는 총선을 승리로 이끈 새누리당으로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내부에서 “총선에서 승리하자마자 또 다시 영포라인 인물을 기용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오만하게 비춰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 정권 불공정 인사의 결정판이라는 오점을 남길 수 있다”는 구체적인 지적이 나돌기도 했다.
▲ 지난 1월 25일에 열린 김기용 경찰청 차장의 취임식. 연합뉴스 |
특히 김 내정자가 충북 출신이라는 점은 상당히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충북 출신이 경찰청장으로 내정된 것은 경찰 역사 67년 만에 처음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정치권 일각에서는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충청권에서 승리를 거둔 점이 김 내정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그렇다면 김 내정자는 어떤 인물일까. 김 내정자는 언론은 물론이고 경찰 조직 내부에서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하지만 김 내정자가 예상을 뒤엎고 차기 경찰청장으로 낙점되자 그의 경찰 이력 및 공직생활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우선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대부분의 고위 공무원들과 비교해볼 때 김 내정자는 상당히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1957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난 김 내정자는 고졸 검정고시를 거쳐 한국방송통신대와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행정고시(30회)에 합격한 김 내정자는 1992년 고시특채(경정)로 경찰에 입문했다. 서울 용산경찰서장과 충북경찰청 차장, 서울청 보안부장, 경찰청 경무국장, 경찰청 차장 등을 역임한 김 내정자는 보안·정보통으로 꼽힌다. 김 내정자는 충남경찰청장으로 재직하던 지난해 상반기 112신고 만족도와 주민 만족도, 내부직원 만족도에서 1위를 휩쓸기도 했다. 특히 올 1월 경무국장에서 차장으로 승진한 뒤에는 학교폭력 태스크포스팀을 이끌며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내정자는 온화하고 합리적인 성격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조직원들과의 소통과 화합을 중시해 평소 따르는 이들이 많고 경찰 내부에서도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 측은 김 내정자 발탁이유와 관련 “김 후보자는 투철한 국가관과 사명감을 바탕으로 맡은 바 업무에 성실히 최선을 다하는 자세와 철저한 자기관리로 귀감이 돼왔다. 일선 현장 경험도 풍부하다”고 설명했다. 경찰 내부에서도 “정권 말기에 경찰 조직을 안정시키고 관리할 인물로 적합하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김 내정자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있다. 우선 뚜렷한 색깔이 없는 무색무취 인사라는 점은 장점이면서도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시각이 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있는 경찰 조직을 쇄신하기에는 파워가 없고 조직 장악력이 약하다는 얘기다. 한 경찰 간부는 “조현오 청장이 바짝 옥죄는 스타일이었기에 부작용도 있었지만 비경찰대 인사치고 경찰 내부 평판은 괜찮았다. 워낙 자존심이 강한 성격이라 청와대 눈치도 보지 않고 경찰 조직을 충실히 대변했으니까. 사기가 떨어지고 기강도 느슨해진 현재의 경찰조직에는 오히려 조 청장 스타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솔직히 일선 경찰서장들이 김 내정자의 지시를 얼마나 충실히 따를지는 의문이다”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김 내정자가 넘어야 할 산은 높다. 여러 가지 악재가 겹친 탓에 경찰은 최대 위기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우선 경찰 총수의 옷을 벗게 한 수원 여성살인사건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무능하고 안이한 대응도 모자라 사건축소 및 은폐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경찰은 국민의 공분을 산 것을 넘어 신뢰마저 바닥에 떨어진 상태다. 국민의 질타를 받고 있는 경찰은 설상가상으로 자존심이 걸린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에서도 부쩍 힘을 잃게 된 분위기다.
더 나아가 잊을 만하면 터지는 경찰의 비위 문제도 경찰의 체면을 구기고 있다. 특히 최근 드러난 강남 유흥업소 업주 이경백 씨와 경찰의 검은 커넥션은 부패한 경찰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경찰에 대한 불신을 더욱 부추기기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 내정자의 최우선 과제는 경찰조직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또한 김 내정자는 단기간 내에 해이해진 경찰기강을 다잡는 동시에 여러 악재로 침체된 조직의 사기를 끌어올려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조직의 내부분열 조짐도 김 내정자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경찰 일각에서는 김 내정자가 단기간에 초고속 승진을 한 것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 내정자는 총선 출마를 위해 지난해 말 사퇴한 박종준 전 차장 후임으로 올 1월 치안정감에 올랐다. 즉 이번에 김 내정자가 경찰청장에 확정되면 불과 4개월 만에 치안총수로 또다시 승진하는 것으로 최단기 승진의 적절성을 두고 뒷말이 나올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특히 경찰대 출신 간부들의 불만과 우려를 어떻게 해소할지의 여부도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경대 출신의 간부는 “드디어 경대 출신이 경찰 수장을 맡게 되나 했는데 아쉬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김 내정자가 과연 10만 경찰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적합한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임기 말 안정적인 국정운영과 대선 등 정치적인 배경만을 고려한 나머지 그저 무난한 인물을 기용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김 내정자의 경찰청장 발탁을 두고 ‘관운’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경찰청장 자리에는 으레 서울청장이나 경기청장이 가는 것이 당연시 되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찰청 차장이 경찰청장으로 승진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나 마찬가지였다. 1993년 승진한 김화남 전 경찰청장이 유일할 정도다. 특히 올 초 치안감에서 치안정감으로 승진한 그가 넉 달 만에 경찰총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을 두고 경찰내부에서는 관운을 타고났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하지만 김 내정자의 성품과 능력으로 볼 때 경찰 총수로 전혀 손색이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분명한 것은 김 내정자에 대한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점이다. 국민들은 김 내정자로 인해 경찰이 위기상황에서 벗어나 민생치안과 법질서 확립이라는 고유의 기능에 충실하기를 고대하고 있다. 그가 위기에 빠진 경찰조직에 구원투수가 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영남 ‘천하’ 호남 ‘전무’
청와대가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 후배 경찰청장’ 카드를 과감히 포기한 데는 임기 말 최악의 불공정 인사 논란을 피하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4·11 총선 결과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어려울 때일수록 흔들리지 말고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민생문제 해결을 흐트러짐 없이 해야 한다. 청와대가 모범을 보이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대통령 발언의 진심 여부와 맞물려 국민들의 관심은 총선 후 첫 인사인 경찰청장 인선에 쏠렸다. 막판까지 불공정 인사를 감행했다는 비난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청와대는 고심 끝에 이강덕 카드 대신 김기용 카드를 뽑아들었다. 특히 ‘이강덕 카드’는 어청수, 김석기(내정 단계에서 사퇴), 강희락, 조현오 등에 이어 다섯 번째 영남 출신 경찰 수장이 탄생하게 된다는 점에서 악재로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현 정권의 업적을 갉아먹은 가장 큰 요인은 이른바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회전문 인사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예상을 깬 이번 경찰청장 인사는 정치적인 요인이 고려됐을뿐더러 현 정권 인사스타일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현 정권에서 임명된 검찰과 경찰, 국정원, 국세청 등 빅4 권력기관 수장자리에 호남 출신 인사들이 철저히 배제된 것은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현 정권에서 임명된 4개 권력기관장은 모두 10명이었다. 그 중 김성호 전 국정원장과 원세훈 국정원장, 강희락 어청수 조현오 전 경찰청장, 이현동 국세청장 등 영남권 인사가 60%를 차지했다. 반면 호남출신 인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에 경찰청장에 모강인 해경청장(전남 장흥)과 강경량 경찰대학장(전남 장흥)이 후보로 거론됐었지만 낙점을 받지 못했다. [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