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불법적 설치물” vs 김 “제대로 추모하게 해달라”…서울시 “원하는 장소 있다면 검토”
당초 유가족협의회는 광화문광장 인근 세종로공원에 분향소 설치를 원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분향소는 물론 100일 시민추모대회를 위한 광화문 북광장 사용도 불허했다는 게 유족 측 입장이다. 새로운 장소를 물색하던 협의회는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하게 됐다고 밝혔다.
2월 4일 서울광장에 분향소가 설치되자 서울시는 6일까지 분향소를 철거하라는 계고장을 보낸다. 시민들의 자유로운 광장 사용을 보장해야 하고 시민들 간 충돌, 안전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6일 서울시는 행정대집행 예고 시각에 집행을 이행하지 않았지만, 계고장을 추가로 보내 분향소 철거를 고수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유가족협의회가 서울시청 분향소를 기습 설치한 배경에는 ‘지하 4층 분향소’가 있다. 서울시는 앞서 유가족협의회에 ‘지하철 녹사평역 지하 4층’에 분향소를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서울시가 제안한 녹사평역 지하 4층은 서울시의 주장대로 악천후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접근성이 좋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유가족협의회의 생각은 달랐다.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7일 CBS라디오에서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녹사평역 지하 4층이 깨끗하고 넓고 지하철역 바로 플랫폼 앞에 있는데 왜 그쪽으로 안 들어오느냐고 했다. 우리 아이들도 숨막혀 죽었는데 우리들 보고 지하 4층에 내려가서 숨막혀 죽으라는 얘기냐”면서 울분을 터뜨렸다.
이 대표는 정부와 서울시의 대응에 목이 메인 듯했다. 그는 “6일 오전에는 민석이 어머님이 조그만 난로를 분향소에 들여놓으려다 경찰에 뺏기셨다. 가족들이 추워서 그런 게 아니고 아이들이 추울까봐 가지고 온 것인데 그 와중에 실랑이가 벌어졌고 민석 어머니는 넘어져서 머리를 다쳤다”고 했다. 이 대표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슬픔으로 떨렸다.
유가족협의회가 서울시 조례에 따른 절차를 지키지 않고 분향소를 설치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서울시가 지하 4층 분향소를 제안하고, 서울광장 분향소의 철거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자식 잃은 부모에게 그렇게 매정해야 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가 분향소 철거를 명령했다는 소식을 들은 김동연 경기지사가 가장 먼저 의견을 냈다. 김 지사는 6일 자신의 SNS에 “서울광장 분향소 철거를 둘러싼 충돌은 서울시가 유가족들이 원치 않는 녹사평역 지하 4층을 제안했을 때 이미 예견되었던 일입니다”라며 “서울시에 호소합니다. 10·29 참사 추모공간을 차갑고 어두운 지하에 두지 말아주십시오”라고 당부했다.
김동연 지사는 “온전한 진상 규명과 추모를 통해 유가족들이 일상으로 돌아오도록 돕는 것도 공공의 책임입니다. 이제라도 서울시가 유가족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 제대로 된 추모 공간 마련에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추모와 치유에는 여야도, 대립도 없어야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서울시의 지하 4층 분향소 제안 사실이 일파만파 퍼져나가자 오신환 정무부시장은 7일 오전 11시 행정대집행을 연기하겠다는 긴급 브리핑을 가졌다. 오신환 부시장은 “일주일간 행정 집행을 미루겠다”며 “녹사평역 외에 유가족이 선호하는 곳이 있다면 주말까지 제안해주면 검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7일 오후 외신기자 대상으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태원 참사를 겪으면서 많은 반성을 했다.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나 시장으로서 면목이 없고, 유가족과 사상자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서울광장 분향소에 대해서는 “일주일간 시간을 줘 불법적으로 설치된 설치물을 스스로 철거해주길 부탁드렸고, 녹사평역에 있는 시설물을 어디로 옮길지를 의견 주시면 검토하겠다는 제안을 했다”며 ‘불법 시설물’에 대한 철거 의사를 분명히 했다. 광화문 광장에 추모공간을 설치하고 싶다는 유족의 의사를 왜 받아들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광장 운영에 대한 원칙이 있다. 원칙에 반하기 때문에 허용하지 않았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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