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언제나 서로를 비춰 주네
은하수 속에서 길 잃은 나를
손을 뻗어 불러준 너
예술치유 프로젝트 엄마의 작은 노래 ‘1월의 달은’ 중. 작사 차은비·천필재
[일요신문] 지난해 사회참여적음악가네트워크(SEM네트워크)의 작곡가들은 새롭게 엄마가 된 분들과 일대일로 짝을 이뤄 엄마마다의 자장가를 만들었다. 2019년 5월 세계문화예술교육주간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지원과 미국 카네기홀과 협력 프로젝트로 시작한 것을 계기로 SEM네트워크가 매년 이어가고 있는 작업이다.
본래 카네기홀의 ‘자장가프로젝트’는 미혼모를 보살피던 병원에서 카네기홀로 요청해오면서 시작됐다. 의료적인 차원에서는 도와줄 수 없는 심리적 지원을 음악가들의 조력을 받으려는 목적이었다. 출산에 필요한 의료적 지원이 닿지 못 하는 미혼모는 엄마로서의 정체성 형성과 아이와의 유대감 형성이 결여된다. 엄마나 아이 모두 잠재된 건강한 삶을 이어가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카네기홀 교육부서와 교육활동을 하는 음악가(티칭아티스트)가 머리를 맞대어 고안한 프로젝트다.
한국에서 처음 프로젝트의 시작은 영유아의 웰빙에 음악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여정이 엄마를 관통하여야 함을 곧 깨달았다. 음악의 긍정적 작용이 가장 필요한 미혼모들에게 우선적 기회를 부여하면서도 모든 엄마와 아빠에게도 확장의 기회를 열어왔다. 미혼모로 시설의 지원을 받는 엄마들은 물론 보육에 전념하는 엄마,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엄마, 한국으로 이주해서 살고 있는 엄마를 만나오면서, 어떤 엄마든 주양육자가 되는 과정에서 떠안는 무게감과 스스로를 잃어가는 상실감, 뭔가 해줄 수 없는 것에 대한 부채감을 느끼는 걸 알았다.
우울감을 내면 어딘가에 숨겨놓고 오롯이 홀로 견뎌온 엄마들은 자신과 아이만의 자장가를 작사하고 작곡하는 과정에서 글을 통해, 대화를 통해, 음악을 통해 자신에 대한 공감의 시간을 거치며 아이와의 관계와 아이와의 삶에 대해 그렸다. 작사가 제공하는 은유와 묘사로 아이에 대한 마음을, 아이의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담아내고, 일상적으로 이뤄갈 언어 너머의 정서적 교감을 음악에 녹여냈다.
음원 녹음과 공연까지 마친 엄마들은 무기력함에서, 우울감으로 인해 증가하는 폭력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을 법한 이 작업은 위로가 된 것과 동시에 굉장한 에너지가 넘치는 경험이었다고 한다. 정부로부터 의식주의 긴급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들을 거친 한 미혼모는 자신의 힘으로 아이에게 뭔가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했다고 한다. 그리고 각자의 자장가는 각 가정의 유산이 됐다. 프로젝트 2년 후 엄마가 작곡한 자장가를 아이가 능숙하게 부르는 모습의 영상을 작곡가에게 보내오기도 했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21 산후조리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울증을 경험한 산모는 52.6%이고, 출산 후 1주일간의 감정 상태에서 산후 우울 위험군은 42.7%로 높게 나타나, 산전·후 정신 건강관리 지원이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처음 이 기회를 거절했던 한 미혼모시설 대표님은 작년에 프로젝트의 매개자로 참여했다. 그리고 마지막 공연이 끝난 뒤 성찰의 변을 꺼내놓으셨다. 의식주 해결과 수많은 문제들이 얽혀있는 아이들에게 음악은 사치라고, 적어도 그때 필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셨단다. 하지만 젊은 엄마들이 그 과정에서 얻는 것은 끼니와 지붕만큼이나 중요한 즐거움과 행복이고, 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양분이 될 수 있음을 보셨다는 것이다.
자장가프로젝트는 예술로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수많은 사례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고령화 시대의 창의적인 나이듦을 위해, 치매환자를 위해, 희망을 찾기 어려워하는 청년들을 위해 예술가의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예술의 존재와 역할은 경험하기 전에 알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한계를 안는다. 한 사람의, 혹은 공동체의 삶의 궤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예술의 개입과 협력은 다종다양한 분야와 규모로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보건, 복지, 지속가능한 사회 발전에 본격적인 파트너로 위치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2년이 넘는 나날들 뒤엔 그간의 어려움과 그로 인한 여파들을 감당해야 하는 개인들과 사회의 회복이 과제로 남겨졌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전문가들은 코로나19와 전 세계적인 경제침체 여파로 인한 사회의 심리방역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유럽지부는 코로나19 시기 이전부터 건강과 웰빙에 예술의 역할에 대한 정책 지원의 기반을 마련하려고 했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영국, 캐나다, 핀란드, 노르웨이 등 국가마다 적극적인 정책 프로그램을 구축하고 나섰다.
예술적 활동에는 감각을 작동시키고, 상상을 촉매하고 감정과 인지를 자극하는 심미적 경험은 물론, 사회적 상호작용과 신체적 활동 등 그 폭과 방식이 풍요롭게 잠재돼 있다. 이를 사람들의 문제와 건강, 웰빙에 조력적 방식으로 접목하는 예술가들의 시민으로서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열릴 수 있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건강와 웰빙에 있어서 방역과 치유를 위한 사회적 질의를 예술가들에게 훨씬 적극적으로 던지며 머리를 맞대기 시작하길 바란다.
서지혜 인컬쳐컨설팅 대표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는 예술경영과 예술교육, 문화정책 분야에서 연구와 사업 기획, 컨설팅, 인재양성 활동을 통해 예술과 시민의 삶 사이 간극을 좁히고, 의미 있는 접점과 관련성을 형성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음악가들의 사회에서의 존재에 대한 인식과 실천적 활동을 넓히기 위해 ‘사회참여적음악가네트워크’를 발족했으며, 저서로는 ‘한국형 엘시테마: 아동청소년오케스트라 일궈가기’가 있다.
서지혜 인컬쳐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