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회사 회장의 발언 슬그머니 넘어갔다 ‘출연금지’ 청원 된서리…“존중하는 자세 가져야”
최근 문제가 된 XG는 주린, 치사, 히나타, 하비, 쥬리아, 마야, 코코나 등 일본 국적 멤버 7인으로 구성된 걸그룹으로 2022년 3월 18일 데뷔한 신인이다. 일본의 대형 연예기획사 AVEX(에이벡스)의 회장 마츠우라 마사토가 전액 출자해서 야심차게 만들어낸 걸그룹으로 알려진 XG는 그들의 주력 장르를 ‘X POP’(엑스팝)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의 K POP 프로듀서와 협업을 통해 제작했지만 K POP은 결코 아니고, 그렇다고 통상적으로 J POP이라고 불려온 일본식 정통 대중음악과도 거리가 있기 때문에 X POP이라는 신조어를 스스로 만들어 붙인 것이다.
제작부터 홍보 방식, 심지어 음악의 장르적 특성까지 멤버들이 영어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 외에 K팝과 전혀 다를 바 없음에도 이 같은 영향력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데엔 XG가 소속돼 있는 일본 글로벌 뮤직 프로덕션 레이블 XGALX(엑스갤럭스)의 모회사 AVEX 수뇌부의 혐한 의식이 한몫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XG의 성공에 큰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AVEX의 회장 마츠우라가 2022년 6월 말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언급한 혐한 성향의 발언이 그 중 하나다.
당시 마츠우라는 XG의 정체성을 언급하며 “(멤버들은) 전원 일본인으로 K팝스럽지는 않다. 미국스럽다. 한국 프로듀서와 함께 했지만 그들을 사용(使った·재료, 도구 수단 등으로 쓰다)했을 뿐”, “왜 이렇게 한국에 져야만 하는 거야? 일본도 (해외 진출을) 할 수 있다는 걸(보여주겠다)”, “한국도 처음에 보아 같은 가수가 일본에 와서 일본 흉내를 냈었다. 이쪽(일본)이 지고 있다면 한국 프로듀서랑 팀을 짜서 해보자 하고 철저히 한 것” 등의 발언을 이어갔다. 일본 내에서도 대형 연예기획사 수장의 발언치고는 다소 경솔하다는 비판을 받았던 이 영상은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했는지 곧바로 삭제처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발언이 국내에도 퍼지면서 XG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지자 소속사인 XGALX가 진화에 나섰다. XGALX의 대표는 소셜미디어(SNS)에 “멤버 모두 일본인이지만 정확한 것은 지역, 언어 등에 대한 편견과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보다 많은 전세계 대중들에게 XG의 음악과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싶다”며 “기존의 사례가 없던 팀이다 보니 다소 낯설게 보이실 수도 있다 생각된다. 앞으로 차근차근 저희 XG만의 색깔과 다양성을 보여 드리면서 진정성 있는 본질을 전해드릴 수 있도록 더욱 더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한국에서 활동하며 노래에 한국어 가사를 사용하지 않아 비판 받는 지점에 대해서는 “글로벌 시장에 XG 음악을 선보이고 싶다는 것이 저희의 가장 큰 지향점이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통용되고 있는 언어인 영어를 기반으로 저희 음악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고 밝히면서 “XG는 문화적 다양성과 글로벌한 감성을 바탕으로 무엇보다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아티스트이며 실제로 연습생 시절부터 여러 번 내한했고 현재도 한국에 지내며 한국 음악과 문화를 많이 배우고 사랑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앞서 가장 큰 논란이 됐던 모회사 회장의 혐한 발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이처럼 두루뭉술한 입장문으로 넘겼다는 점에서 XG에 대한 국내 여론은 더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결국 마츠우라 회장의 말대로 한국을 “사용하기 위한” 발판으로 쓰고 있어 이 같은 논란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국내에서는 XG의 활동 중 특히 KBS 2TV 음악프로그램 ‘뮤직뱅크’ 출연을 반대하는 청원도 등장했다. 청원인은 “한국어도 제대로 구사할 줄 모르는 그룹이, 글로벌을 외치며 K팝 시장에서 한국 아이돌을 모방하면서도 K팝이 아니라 우리는 일본인·X팝이라고 외치는 그룹이 공영방송인 KBS에 나오는 것이 맞는 일인가”라며 “‘뮤직뱅크’는 오프닝 멘트로 ‘한류열풍의 중심’을 외친다. 전세계 KBS World를 통해 한국의 K팝을 알리는 훌륭한 프로그램에 한국을 이용만 한다는 그룹이 당당하게 출연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어 “한류의 흐름을 이용하려는 혐한 기업이 공영방송 KBS의 전파를 이용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국민의 수신료로 운용되는 공영방송 KBS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문화 강대국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KBS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그런 영향력이 오용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 청원은 2월 10일 기준 773명이 동참했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 중인 아이돌 그룹에서 일본인 멤버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일본인만으로 구성된 그룹이 국내에서 활동하는 것은 여전히 국민 정서와 배치된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정식 데뷔가 이뤄진 일본인 멤버들의 경우는 철저히 한국어를 공부하고 민감한 이슈에도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소속사 차원의 교육을 거쳐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만, XG와 같은 그룹은 그럴 의향 자체가 전혀 없다는 점을 활동 전부터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는 것이다.
한 국내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일본 아이돌 그룹이 국내 음악방송이나 뮤직 페스티벌 행사 등에 종종 출연하는 일이 있었지만 단발성 이벤트에 그쳤고, 정식 활동 의사를 밝혔던 건 2012년 3인조 그룹 ‘사타안다기’ 이래로 없었던 것으로 안다”라며 “일본 후지TV와 MBC 간의 업무협약에 따라 국내 방송에 진출한 것이라 길게 활동하진 못했으나 당시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고 K팝을 긍정적으로 언급하는 등 한국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 호응을 얻어냈다. K팝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존재 자체를 지우고 있는 XG와 대비되는 부분”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K팝이 하나의 장르로 굳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이미 해외에서는 ‘한국인 없는 K팝 아이돌 그룹’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기도 하고 한국인 프로듀서나 댄스 트레이너를 고용해 그룹 제작을 진행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K팝이 더 이상 국내에만 한정된 음악이 아닌 세계인들이 함께 하는 하나의 장르가 된 것”이라며 “앞으로 이와 비슷한 해외의 K팝 그룹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만큼 XG의 사례를 배제하더라도 장르의 다변화에 대해서는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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