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 진술 알려진 후 뽀요이스·도보다리 USB 논란 재소환…“쌍방울 송금 이면에 ‘거시적 연결고리’ 가능성”
스마트팜은 정보기술을 이용한 자동화 농장이다. 농장을 제어하는 에너지는 전기다. 북한은 고질적인 전력 수급난에 시달리고 있다. 전기가 없으면 무용지물인 스마트팜 사업비용을 북한에 건네 수사를 받고 있는 인물이 있다. ‘이재명 사법리스크’ 핵심 인물 중 하나로 꼽히는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다. 대북 소식통들 사이에선 김 전 회장 진술이 ‘큰 그림’을 유추할 중요한 퍼즐조각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북한에 800만 달러를 송금한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 전 회장은 800만 달러 용도에 대해 “500만 달러는 경기도 북한 스마트팜 지원사업 비용이고, 300만 달러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방북 비용”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500만 달러로 알려졌던 쌍방울의 대북송금 금액은 800만 달러 규모로 늘어났다. 김 전 회장 진술로 경기도 대북사업 ‘플레이어’로 쌍방울 측이 활동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검찰은 쌍방울 대북송금이 이재명 대표와 연결됐을 것으로 의심한다. 이 대표는 “검찰 신작 소설”이라며 의혹을 일축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8년부터 2019년까지 경기도 대북사업 책임자로 활동했던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2월 6일 변호인을 통해 ‘최근 언론보도에 대한 이화영의 입장’이라는 편지를 공개했다. 이 전 부지사는 “김성태와 쌍방울 대북송금 관련 이화영, 이재명 대표, 경기도에 대한 모든 보도는 가짜뉴스”라면서 “쌍방울 대북송금이 이뤄진 것을 전혀 알지 못했을 뿐 아니라, 경기도를 위해 쌍방울이 북한에 금전을 제공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했다.
김성태 전 회장 진술에 따르면 이재명 대표 방북 비용보다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한 항목이 있다. 스마트팜 지원사업이다. 2019년 1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전달한 500만 달러는 ‘경기도 북한 스마트팜 지원’ 취지라는 게 김 전 회장 주장이다.
북한 스마트팜 지원사업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2018년 10월 방북을 한 이후로 본격 논의되기 시작했다. 2019년 2월 경기도는 업무보고를 통해 ‘북한 스마트팜 사업비로 2019~2020년 2년 동안 총 34억 3000만 원이 필요하며 예산은 100% 기금에서 조달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2019년 8월 업무보고에선 북한 스마트팜 사업비 규모가 50억 원으로 증액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경기도의회는 사업 현실성과 적합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도의회 지적을 비롯해 유엔 대북제재 위반 소지가 있었기 때문에 스마트팜 사업비 예산은 집행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김 전 회장은 2018년 12월 중국 단둥에서 김성혜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아태위) 실장을 만나 대북사업 관련 협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김성혜 실장이 김 전 회장에게 ‘경기도가 예전부터 북한 낙후 협동농장을 농림복합형 농장(스마트팜)으로 개선하도록 지원해준다고 했는데 아직 지원이 없다’면서 ‘쌍방울이 경기도 대신 비용 50억 원을 지원해 달라’는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은 제안을 수락하고 스마트팜 사업비용을 건넨 것으로 전해진다.
스마트팜은 농작물 재배 시설 온도·습도·햇빛·이산화탄소·토양 등을 측정 분석해 그 결과에 따라 제어장치를 구동하는 농장이다. 모바일 기기 등을 통해 원격 관리도 가능하다. 재래식 농장 대비 생산 효율성이 높다. 스마트팜 업계 관계자는 “사업성을 갖춘 스마트팜을 조성하려면 20억~30억 원 정도가 투입돼야 한다”면서 “스마트팜은 초기 비용이 비싸 진입 장벽이 높다. 국내에선 주로 고부가가치 작물을 재배하는 용도로 활용된다”고 했다.
스마트팜 운용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는 전력이다. 국내에서 스마트팜 농장을 운용할 시 월 100~1000kw 범위 안에서 전력이 소비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날씨가 추울수록 전력 소비량은 늘어난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북한에서 스마트팜을 운용할 경우 국내보다 전력 사용량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1월 5일 평양에선 ‘전원회의 결정 관철을 위한 평양시 궐기대회’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전광판이었다. 전광판엔 북한 당국이 꼽은 경제분야 12개 고지가 나열됐다. 북한은 1번 고지로 알곡(식량), 2번 고지로 전력을 나열했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이 현 시점 경제적으로 가장 필요로 하는 요소 우선순위를 엿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식량과 전력이 모두 부족한 북한 인프라를 고려했을 때 스마트팜 도입은 시기상조란 지적이다. 복수 대북 소식통은 북한이 자체적으로 스마트팜을 운용할 능력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 소식통은 “북한에서 가장 큰 발전소는 2012년 준공된 희천발전소로 1호기~12호기 총 출력이 42만kw”라면서 “희천발전소 완공 시기에 수명이 끝난 월성원전 1호기 1대 출력이 67만kw인 점을 감안하면 북한 내부 전력 사정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2012년 한국 예비전력량이 500만kw 밑으로 떨어져 블랙아웃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면서 “북한 전력공급량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라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정부는 과거 개성공단이 운영되던 시절 3만~4만kw 정도 전력을 평화변전소를 통해 북한에 공유했었다”면서 “이 전력이 북한 내부에선 가뭄의 단비 같은 역할을 해줬다”고 했다. 그는 “당시 북한에서 이 전기를 개성 상수도를 돌리는 데 활용하기도 했었다”고 했다.
그는 “한국과 북한은 전력 소비량 단위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스마트팜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북한에 정상적으로 안착하기 쉽지 않다”면서 “북한 당국 특성상 스마트팜 지원사업으로 스마트팜을 건립하면 해당 스마트팜에 공급할 전기를 직접 받아오든, 발전 인프라 건설을 약속받든 그 다음 조치가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식통은 “스마트팜 사업 관련 비용을 송금한 이면엔 중요한 행간이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기가 부족한 북한이 스마트팜을 직접 운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김성태 전 회장이 ‘스마트팜 사업 비용’ 대납을 한 것으로 전해진 시기는 2019년 초다. 남북화해무드가 거의 막바지였던 시기다. 스마트팜 사업비용을 받을 정도면 그 외적인 인프라 시설 건립 및 제공 등에 대한 암묵적 합의가 끝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합의 주체가 정부인지 지자체인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이번 쌍방울 스마트팜 사업비용 대납 의혹은 문재인 정부 당시 몇 가지 의미심장했던 이슈가 이번 사건과 맞닿아 있을 수 있다.”
이 소식통은 ‘뽀요이스 논란’과 ‘도보다리 USB 논란’ 등을 거론했다. 뽀요이스 논란은 월성원전1호기 경제성평가 조작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사무실 컴퓨터에서 삭제된 파일을 둘러싼 논란이었다. 60pohjois(뽀요이스) 폴더 안엔 ‘북한 지역 원전 건설 추진방안’, ‘에너지분야 남북경협 전문가 원자력’, ‘북한 전력 인프라 구축을 위한 단계적 협력 관계’, ‘북한 전력산업 현황 및 독일 통합사례’ 등의 파일이 존재했다.
다양한 파일이 들어있던 폴더 이름 ‘뽀요이스’는 핀란드어로 북쪽을 일컫는 단어다. 뽀요이스 폴더 속 하위폴더 중엔 ‘북원추’라는 폴더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원전 추진 방안 줄임말로 추정됐다.
2018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보다리 산책길 단독회담을 가진 바 있다. 이 자리에서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한반도 신경제구상 관련 자료가 담긴 USB를 건넨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대북 소식통은 “김성태 전 회장 진술이 알려진 뒤 탈북민 커뮤니티나 정보계통 인사들 사이에선 문재인 정부 당시 화제가 됐다가 잊힌 이슈들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면서 “김 전 회장 진술은 남북화해무드 당시 한국 정부와 북한 당국이 어떤 조건들을 주고받았는지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파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김 전 회장이 스마트팜 지원사업 명목으로 500만 달러를 송금한 사건은 팩트를 체크 중이고, 북한이 전력 공급난을 겪고 있다는 것과 문재인 정부 차원에서 남북 에너지 경협을 추진했던 이력은 팩트”라면서 “개별적인 몇 가지 사건 속엔 김 전 회장이 북한에 스마트팜 사업비용 취지로 500만 달러를 건넨 단편적 사실보다 더 거시적인 연결고리가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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