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의지 부족과 재판부 소극적 지휘 논란…정가 일각 이재명에 유리하게 작용 시선도
2월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이준철)는 곽상도 전 의원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곽 전 의원 아들 곽병채 씨는 2021년 4월 화천대유자산관리에서 근무하다가 퇴사할 때 퇴직금과 상여금 명목으로 50억 원(세금 등 제외 25억 원)을 받았다. 검찰은 50억 원 중 소득세와 고용보험, 불법으로 볼 수 없는 실질적 퇴직금 등을 제외한 25억 원을 뇌물로 보고 곽 전 의원을 기소했다. 대장동 일당이 곽 전 의원에게 대가를 바라고 아들에게 거액을 지급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곽상도 피고인의 아들 병채 씨에게 화천대유가 지급한 50억 원은 사회 통념상 이례적으로 과다하다”면서도 “50억 원이 알선과 연결되거나 무엇인가의 대가로 건넨 돈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곽상도 피고인이 아들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뇌물을 받은 것으로 의심이 드는 사정도 있지만, 결혼해 독립적 생계를 유지한 병채 씨가 화천대유에서 받은 이익을 곽상도 피고인이 받은 것과 같이 평가하는 것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다만 법원은 곽 전 의원이 제20대 총선을 앞둔 2016년 3월 민간업자 남욱 변호사에게서 현금 5000만 원을 받아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국회의원 선거 예비후보자로서 기부금을 한도액까지 받은 상태에서 정치자금법이 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현금을 받았고 수수한 금액이 적지 않아 죄책이 가볍지 않다”며 “피고인이 주장하는 법률 상담에 따른 대가로서는 지나치게 과다해 정당한 변호사 보수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곽 전 의원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벌금 800만 원을 선고하고 5000만 원을 추징하라고 명령했다.
곽 전 의원이 뇌물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뇌물공여와 횡령 혐의로 함께 기소된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도 함께 무죄가 선고됐다. 남욱 변호사의 경우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벌금 400만 원을 선고 받았다.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이 불거진 이래 핵심 관련자에 대한 사실상 첫 판결이다.
곽상도 전 의원은 1심에서 뇌물 혐의 무죄가 나온 데 대해 취재진에 “1년 이상 법정에서 나와 관련된 어떤 얘기도 안 나왔기에 어느 정도 결과를 예상했다”며 “무죄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정치보복’이었다고 주장했다. 곽 전 의원은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큰 검찰 수사만 5번을 받았다”며 “없는 걸 만들어서 치졸하게 보복하는데, 정치보복도 어느 정도껏 해야 하지 않겠나. 더는 날조해서 사람 괴롭히는 일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유감을 표했다.
또한 재판부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유죄 판단 내린 것에 대해서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도 무죄가 나오리라 생각했는데 유감”이라며 항소해 다툴 뜻을 내비쳤다.
검찰은 1심 선고 직후 입장문을 통해 “객관적 증거 등에 의해 확인된 사실관계에 비춰 볼 때 재판부의 무죄 판단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판결문을 상세히 분석한 뒤 적극 항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심 판결을 두고 여론은 들끓고 있다. 법원 판단대로라면 20대 직장인이 6년간 일한 회사를 그만두면서 퇴직금과 상여금 명목으로 50억 원의 수령한 것이 되는데,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느냐는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30대그룹 전문경영인 퇴직금 상위 20위’ 목록에 50억 원을 수령한 곽병채 씨가 삼성 현대차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부회장 사장들을 제치고 4위에 이름을 올린 게시물이 공유되며 조롱을 받고 있다.
또 50억 원은 화천대유 전 직원 16명의 5년 임금에 맞먹고, 월 300만 원을 받는 노동자가 50억 원을 퇴직금으로 받으려면 1000년 넘게 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증권사에 다니는 윤 아무개 씨는 “6년 차 직원이 얼마나 큰 성과를 내야 회사를 그만두면서 50억 원을 받을 수 있느냐. 판사들은 어떻게 이게 대가성 뇌물이 아닌 정상적인 퇴직금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사법부의 법 감정은 일반 국민들과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는 것 같다”고 허탈해했다.
더불어민주당 한 관계자도 “법원의 이번 판결로 대한민국에는 너무나 쉽게 뇌물을 주는 방법이 열렸다. 본인한테 안 주고 독립생계를 이루고 있는 자녀를 찾아서 주면 50억 원이든, 100억 원이든 아무런 탈이 안 난다. 이게 윤석열 대통령이 말한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1심 재판부가 왜 이렇게 국민 정서와는 ‘동떨어진’ 판결을 했는지에 대한 분석이 쏟아진다. 우선 검찰이 곽상도 전 의원에 대해 부실 수사를 했고, 공소유지 의지도 부족했던 것은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재판부도 판결 이유를 설명하면서 “아들(병채 씨) 계좌로 입금된 성과급 중 일부라도 피고인(곽 전 의원)에게 지급되는 등의 사정이 없는 점을 감안하면 검찰 증거만으로는 아들에게 지급된 돈을 피고인에게 지급된 것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검찰이 수사를 느슨하게 했을 뿐 아니라 혐의 적용도 소극적으로 해 곽상도 전 의원이 무죄로 빠져나갈 구멍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검사의 법리구성도 취약하고, 적용해야 할 혐의의 상당 부분을 빠뜨렸다. 보통 기소할 때 주의적 공소사실이 있으면, 예비적 공소사실도 가능한 건 다 넣는다. 조국 전 장관 사건에서도 장학금 600만 원의 경우 주는 뇌물 혐의였고, 청탁금지법 위반은 예비적 공소사실이었다”며 “유죄가 나온 정치자금법 위반도 곽 전 의원이 민정수석이던 2013년부터 남 변호사와 관계를 고려하면 뇌물 혐의를 적용해야 했다. 범죄수익 은닉 혐의는 기소조차 안 했다. 검찰이 입증 책임을 일부러 다하지 않았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재판부 역시 재판을 소극적으로 진행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판사 출신 민주당 한 의원은 “판사 스스로 화천대유가 곽병채 씨에게 50억 원을 왜 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검찰에 더 입증을 하라고 촉구할 수 있다. 또한 검사에게 제3자 뇌물죄를 적용해 공소장 변경을 검토하라고 재판 지휘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제출된 근거를 중심으로 판단,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판결을 내린 것은 재판부가 소극적이었다”고 아쉬워했다.
이번 재판 과정에는 대장동 사건 ‘스모킹건’으로 꼽히는 정영학 회계사 녹음파일 일부가 증거로 제출됐다. 2020년 4월 4일 녹음된 파일에는 김만배 씨가 정영학 회계사에게 “병채 아버지(곽 전 의원)는 돈 달라 하지, 병채 통해서. 며칠 전에도 2000만 원”이라며 “그래서 ‘뭘, 아버지가 뭘 달라냐’ 그러니까 ‘아버지에게 주기로 했던 돈 어떻게 하실 건지’ 그래서 ‘야 인마, 한꺼번에 주면 어떻게 해. 그러면 양 전무보다 많으니까 한 서너 차례 잘라서 너를 통해서 줘야지 그렇게 주면 되냐’”라고 말했다. 김 씨가 병채 씨와 나눈 대화를 정 회계사에 전한 것으로, 이 대화 내용이 사실이라면 곽 전 의원이 아들을 통해 김 씨에게 수상한 돈을 요구했다는 결정적 증가가 된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뇌물 혐의 뒷받침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전달된 ‘전문 진술’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법리에 따른 것. 앞서의 법조계 관계자는 “‘전문 진술’은 증거로 채택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지만, 녹음파일 내용처럼 실제 돈이 움직였다. 그럼 재판부가 신빙성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판단했어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결국 2심에선 검찰과 재판부가 혐의 입증에 얼마나 의지를 갖느냐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번 선고에 대해 검찰의 ‘봐주기 수사’ 역풍이 일자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은 2월 10일 1심 판결을 뒤집기 위해 공소유지 인력을 확충하라고 지시했다.
민주당은 1심 판결에 대해 “방탄 판결”이라며 맹공을 쏟아 부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2월 9일 정책조정회의에서 “민정수석, 국회의원까지 한 유력인사 곽 전 의원 아들을 화천대유가 어떤 전문성도 묻지 않고 채용하고 6년 근무 대가로 퇴직금 명목의 50억 원을 지급했는데, 재판부는 이를 적법하다고 선고했다”며 “검찰은 ‘50억 클럽’의 구체적 진술을 확보해 놓고 수사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들만의 리그’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방탄 판결”이라고 수위를 높였다.
김의겸 민주당 대변인은 “며칠 전 조국 전 장관 딸의 ‘장학금 600만 원’은 철퇴를 가한 사법부가 ‘퇴직금 50억 원’에 대해선 솜방망이다. 아니, 솜방망이로도 때리지 않은 꼴”이라며 “국민의 눈높이나 정서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곽상도 전 의원과 화천대유 측은 병채 씨가 받은 50억 원에 대해 퇴직금뿐 아니라 이명과 어지럼증에 대한 산재위로금의 성격도 있다고 해명한 바 있다. 하지만 산재위로금은 세금이 부과되지 않아 이러한 주장은 바로 깨졌다.
국민의힘은 말을 아끼고 있다. 당 차원의 공식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2월 9일 열린 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도 비대위 참석자들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비판만 반복했을 뿐, 곽상도 전 의원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회의가 끝나고 정진석 비대위원장도 본인이 준비한 말만 한 뒤 “대변인도 얘기할 게 있어야 할 것 아니냐”며 질문을 받지 않고 자리를 피했다. 양금희 수석대변인은 ‘곽상도 전 의원 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을 묻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오늘 브리핑하는 내용으로는 적절하지 않다. 나중에 따로 말하겠다”고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여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는 나왔다. 변호사 출신 이언주 전 의원은 병채 씨가 결혼해 독립적인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무죄 판결이 나온 것에 대해 “장래의 상속인 아들한테 미리 준 건데, 상속세까지 면탈한 것 아니냐”며 “정유라 건, 조민 건하고 비교해도 현저히 형평을 잃었다”고 꼬집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당 내부에서도 곽 전 의원에 대한 이번 판결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깔려있다”며 “최근 조국 전 장관의 1심 판결과 맞물려 사법부와 검찰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불만은 결국 검찰의 수장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에게 불똥이 튈 수 있다. 그러다보니 쉽사리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 분위기”라고 전했다.
곽상도 전 의원이 1심에서 무죄를 받으면서 이른바 ‘대장동 50억 클럽’ 나머지 인물들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전망이 나온다. 50억 클럽에는 곽 전 의원을 비롯해 권순일 전 대법관, 박영수 전 특별검사, 최재경 전 청와대 민정수석, 김수남 전 검찰총장, 홍선근 머니투데이 미디어그룹 회장 등이 거론된다. 야권에서는 검찰이 대가성 입증을 하지 못한 데 대해 ‘봐주기 수사’가 의심된다며 특검 추진에 불을 붙이고 있다.
정가 일각에선 이번 판결이 이재명 대표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검찰이 이 대표의 혐의를 입증하기 더욱 어려워졌다는 이유다. 검사 출신 조응천 의원은 2월 9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 인터뷰에서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 속 관련자들의 발언을 법원이 인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 “(검찰이) 정영학 녹취록을 근거로 해서 이재명 측근들에게 준 것은 결국 이재명 대표에게 준 것이라는 논리로 접근해왔다”며 “아들에게 준 것도 아버지한테 준 게 아니라고 하는 건데 (이재명 대표와 측근들은) 완전히 남이다. 그게 어떻게 공동체가 되나. (곽 전 의원과 아들 관계보다 유죄를 입증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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