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원 600명 중 현역 빅리거 186명…미국 ‘트라우트’ 일본 ‘오타니’ 베네수엘라 ‘알투베’ 등 포진
코로나19 여파로 2년간 미뤄진 제5회 WBC는 6년 만인 오는 3월 다시 개최된다. 지난 대회 성적을 토대로 결정된 16개국과 각 지역 예선을 통과한 4개국 등 총 20개국이 4개 조로 나뉘어 본선 라운드를 시작한다. 한국은 일본·호주·중국·체코와 B조에 포함됐고, 본선 1라운드 B조 경기는 3월 10일부터 14일까지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다. 한국과 일본이 WBC 무대에서 만나는 건 2009년 제2회 대회 결승전 이후 처음이다. 당시 한국은 연장 10회 승부 끝에 3-5로 져 준우승했다. 이후 2013년과 2017년 WBC에도 참가했지만, 번번이 1라운드에서 탈락해 일본과 더는 맞붙지 못했다.
#WBC에 모이는 MLB 스타들
WBC 조직위원회는 10일(한국시간) MLB 공식 홈페이지 MLB닷컴에 20개국 최종 엔트리 600명을 차례로 공개했다. 조직위 집계에 따르면, 총 600명의 출전 선수 가운데 미국 프로야구 구단에 소속된 선수는 절반이 넘는 332명이다. 그중 40인 로스터에 포함된 현역 빅리거는 186명이고, MLB 올스타 출신도 67명이나 된다.
MLB에서 리그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한 최정상급 스타도 8명이나 된다. 미국 대표팀에 마이크 트라우트(LA 에인절스), 폴 골드슈미트(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무키 베츠, 클레이턴 커쇼(LA 다저스)가 포진했고, 일본 대표팀에는 오타니 쇼헤이(에인절스)가 이름을 올렸다. 베네수엘라 대표팀에 합류한 미겔 카브레라(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호세 알투베(휴스턴 애스트로스)와 캐나다 대표로 나서는 프레디 프리먼(애틀랜타 브레이브스)도 각 팀의 간판이다.
이뿐만 아니다. 2013년과 2017년 대회에서 연속 준우승한 푸에르토리코는 하비에르 바에스(디트로이트), 프란시스코 린도어, 에드윈 디아즈(이상 뉴욕 메츠), 마커스 스트로먼(시카고 컵스) 등 스타 군단을 앞세워 첫 우승에 도전한다. 푸에르토리코 대표팀 감독은 지난 시즌을 끝으로 세인트루이스에서 은퇴한 MLB 레전드 포수 야디에르 몰리나다.
도미니카 공화국은 후안 소토, 매니 마차도(이상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토론토 블루제이스), 라파엘 데버스(보스턴 레드삭스), 훌리오 로드리게스(시애틀 매리너스)가 출격하는 공포의 타선을 꾸린다. 마운드에는 지난해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수상자 샌디 알칸타라(마이애미 말린스)가 앞장서고 크리스티안 하비에르(휴스턴), 조니 쿠에토(마이애미)가 뒤를 받친다. 베네수엘라도 카브레라와 알투베 외에 살라도르 페레스(캔자스시티 로열스), 로널드 아쿠냐 주니어(애틀랜타)가 강력한 타선을 구축했다. 지난 대회 2회 연속 4강팀인 유럽의 강호 네덜란드도 산더르 보하르츠(샌디에이고), 요나탄 스호프(디트로이트), 켄리 얀선(보스턴)을 앞장세웠다. '별들의 잔치'가 따로 없다.
#애런 저지는 없다?
유일한 아쉬움은 이 화려한 WBC 출전 명단 속에 MLB 최고 스타플레이어의 이름이 빠져 있다는 거다. 지난해 홈런 62개를 때려 아메리칸리그 역대 한 시즌 최다 기록을 61년 만에 갈아치운 에런 저지(뉴욕 양키스)다. 저지는 이 기록 덕에 투타를 겸업한 '괴물' 오타니를 제치고 아메리칸리그 MVP에 올랐다. 시즌이 끝난 뒤에는 양키스와 9년 총액 3억 6000만 달러(약 4750억 원)에 FA 계약해 MLB 역대 FA 최대 규모 계약 기록을 경신했다. 지난해 타율 0.311, 131타점, OPS(출루율+장타율) 1.111의 초특급 성적을 올린 저지가 성조기를 달았다면, 안 그래도 타선이 강한 미국 대표팀의 전력은 더 상승했을 거다.
그런데 양키스가 저지의 WBC 출전을 불허하면서 현역 최고 홈런 타자의 활약을 볼 수 없게 됐다. 지난해 양대 리그 MVP 투표 톱 5에 포함된 선수 10명 가운데 이번 WBC에 나서지 않는 선수는 저지가 유일하다. 가장 먼저 WBC 출전을 선언한 내셔널리그 MVP 골드슈미트와는 더욱 대조되는 행보다.
MLB 구단들은 부상 및 수술 이력이 있는 소속 선수에 한해 WBC 출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양키스는 이미 부상이 잦은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투수 루이스 세베리노의 WBC 대표팀 차출을 막은 바 있다. 하지만 저지는 최근 수술 이력이 없고, 현재 정상적인 몸 상태로 시즌을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7월 코로나19 확진으로 열흘간 격리했던 걸 제외하면 최근 2년간 부상 이력도 없다. 그런데도 양키스와 저지 모두 WBC 출전과 관련해선 따로 언급하지 않아 궁금증을 키웠다.
다만 양키스 팬 커뮤니티 '양키스 고 야드'는 "양키스가 세베리노에게 그랬듯, 과거 크고 작은 부상이 있었던 저지가 올 시즌 162경기를 대비하게 하려면 WBC 참가를 막는 게 최선이었을 것"이라며 "저지가 WBC에 관심이 있었는데도 양키스가 차단한 건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저지는 이번 WBC에서 (관중으로) 미국을 응원할 것"이라고 썼다.
실제로 선수 몸값에 돈을 많이 쓰는 양키스는 '스타 군단'의 명성과 어울리지 않게 이번 WBC에 단 3명의 선수만 내보낸다. 선발 네스터 코르테스(미국), 불펜 조나단 로아이시가(니카라과), 2루수 글레이버 토레스(베네수엘라)가 전부다. 뉴욕 포스트는 이와 관련해 "(연고 도시가 같은) 뉴욕 메츠는 메츠는 린도어, 피트 알론소, 제프 맥닐, 에두아르도 에스코바 등 핵심 선수만 무려 12명을 WBC에 내보낸다. 그러나 양키스는 메츠처럼 스프링캠프에 선수가 없어 고민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썼다. 이 매체는 또 "양키스 선수 중 WBC에 참가하는 토레스는 트레이드설이 돌고 있다"고 덧붙였다. 양키스가 토레스를 올 시즌 주요 전력으로 고려하지 않기에 WBC 출전을 허가했다는 해석이다.
물론 구단 반대로 출전하지 못한 선수는 저지 외에도 많다. 프람버 발데스(휴스턴), 루이스 카스티요(시애틀·이상 도미니카공화국), 로날드 아쿠나 주니어(애틀랜타·베네수엘라) 등이 그렇다. 특히 아쿠나 주니어는 2021년 7월 무릎 인대를 다쳐 수술을 받았지만, 지난해 4월 29일 복귀한 뒤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을 모두 소화했음에도 구단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MLB가 WBC를 창설했는데 왜 어떤 선수는 허락을 받고, 어떤 선수는 받을 수 없는 것인가. 내가 그 피해자 중 한 명"이라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들과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푸에르토리코 출신인 MLB 대표 유격수인 카를로스 코레아(미네소타)도 WBC 출전을 강력하게 원하다가 끝내 포기했다. 아내의 둘째 출산 예정일이 3월 11일이기 때문이다. 오른쪽 발목 상태가 썩 좋지 않은 그는 출산 휴가를 다녀온 뒤 극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WBC 경기에 출전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여겨 출전 의사를 철회했다.
#최지만, 피츠버그 반대로 출전 무산
한국인 메이저리거 최지만 역시 소속팀 피츠버그 파이러츠의 반대로 WBC에 출전하지 못하게 됐다. KBO는 지난 6일 "최지만은 소속팀 허가를 얻지 못해 WBC에 출전하는 한국 야구대표팀 합류가 불가능해졌다"며 "대체 선수로 SSG 랜더스 외야수 최지훈을 선발했다"고 밝혔다.
최지만은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전 소속팀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피츠버그로 트레이드 됐다. 이적 2주 뒤 오른쪽 팔꿈치 뼛조각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재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KBO가 WBC 출전 가능 여부를 문의하자 "WBC에 꼭 참가하고 싶다. 대회 전까지 회복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기술위원회는 그 의지를 믿고 1월 4일 발표한 WBC 대표팀 최종 엔트리 30인에 그를 포함했다. MLB 경험이 많은 거포 1루수 최지만이 대표팀 타선에 큰 힘을 실어줄 거라고 기대했다. 최지만은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태극마크를 달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배고픔을 많이 느낀다. 꼭 WBC에 가고 싶다고 구단에 계속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며 "팔 상태는 50% 정도지만 재활을 열심히 하고 있다. 빨리 몸을 만들어 한국 선수들과 함께 뛰고 싶다"고 거듭 의욕을 다졌다.
그러나 피츠버그는 끝내 이 수술을 이유로 들어 WBC 조직위원회에 참가 반대 의사를 전달했고, 조직위는 부상 검토 위원회를 열어 최지만의 WBC 출전 허용 여부를 심의한 뒤 KBO에 '불허' 방침을 전달했다. 유격수 김하성(샌디에이고)과 2루수 토미 현수 에드먼(세인트루이스), 1루수 최지만으로 MLB 내야진을 꾸리려 했던 한국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KBO 관계자는 "그동안 최지만이 대표팀에서 뛰지 못하는 상황을 대비해 여러 대안을 검토해왔다"며 "이강철 대표팀 감독과 조범현 기술위원장 등이 논의 끝에 최지훈을 추가 선발했다"고 설명했다. 대표팀은 최지만 대신 최지훈이 포함된 최종 엔트리를 WBC 조직위에 제출했다.
최지만은 크게 낙담했다. 이례적으로 매니지먼트사를 통해 "WBC 대표팀 명단에 포함됐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만큼 출전 불가 결정에 따른 실망과 좌절감도 매우 크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충분히 WBC에 나설 수 있는 몸 상태였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팔꿈치 수술을 했지만, 미국에 돌아와 재활 과정을 잘 진행했다. 최근엔 라이브 배팅을 할 만큼 타격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며 "WBC 1라운드 일정에 맞춰 몸을 잘 만들어왔는데, 내 의지와 달리 주변 환경 영향으로 꿈이 무산돼 실망스럽고 가슴이 아프다"고 거듭 아쉬움을 토로했다.
최지만과 피츠버그는 이미 올해 연봉을 놓고도 대립각을 세웠다. 최지만은 540만 달러를 요구했지만 피츠버그는 465만 달러를 제시하며 팽팽히 맞섰다. 75만 달러의 금액 차를 좁히지 못해 결국 MLB 사무국에 올 시즌 연봉 조정까지 신청했다. 가뜩이나 껄끄러운 상황에서 피츠버그가 최지만의 WBC 출전까지 막아서자 현지 언론도 양측의 불화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피츠버그 지역 언론 피츠버그 포스트-가제트는 구단의 반대로 최지만의 WBC 출전이 무산된 소식을 전하면서 "양측이 좋은 관계로 시작하기는 힘들어졌다"고 전했다. ESPN은 최근 최지만이 올 시즌을 끝으로 자유계약선수(FA)가 되는 점을 언급하면서 강력한 트레이드 후보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새 팀에 온 지 4개월도 안 됐는데, "최지만이 피츠버그에 오래 머물 것 같지 않다"고 이적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이와 별개로 일본 언론은 최지만의 WBC 출전 무산 소식을 내심 반겼다. 스포츠호치는 "MLB 통산 61홈런을 터뜨린 거포가 한국 대표팀에서 이탈했다. 빅리거 3명 중 한 명이 전력에서 빠져 타선이 약화됐다"고 썼다. 풀카운트는 양국 전력을 분석한 야구 전문가의 발언을 인용해 "한국 대표팀에는 최지만의 불참이 뼈아픈 일이다. (같은 조에 속한) 일본이 한결 유리해졌다"며 "이 결과가 한일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고 전했다.
배영은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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